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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옥' 연상호 작가가 부담감에 탈피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취미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3-03-13

<괴이>. 사진제공 티빙

- 가볍게 둘러보기만 해도 작업실에 쌓인 작가님의 시간들이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이 작업실에서 진행하나요.

= 아무래도 그렇죠. 외부 스케줄이 없을 때는 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곧바로 작업실로 옵니다.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정도까지 여기서 보내는데, 내내 글만 쓰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잘 안되더라고요. 고민만 하다 시간 맞춰 집에 가는 경우도 많고. 사실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중 80~90%는 그냥 괴로워하는 게 일인 것 같아요. 내내 고민하다 마감이 다다랐을 때 열심히 쓰기 시작하고. (건담 박스들을 가리키며) 그 부담감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건담만 몇십개를 만들었어요. 1년 전부턴 <나 혼자 기타 친다>라는 기타 독학 책을 사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피규어의 머리, 몸, 의상 등을 각기 따로 사서 조립하는 피규어 커스텀에 빠져 있어요. 다 시나리오에 대한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것들인데 너무 몰입했죠. (웃음)

- 최규석 작가님과 부천만화정보센터 옆 만화카페에서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들었어요. 그 밖에 또 영감이 떠오르는 작가님만의 장소가 있나요.

= 요즘엔 프리프로덕션 때 헌팅 다니면서 많이 써요. 헌팅을 다닐 때 새벽 6시부터 봉고차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거든요. 그럼 이동하면서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 시간이 아까워서 핸드폰 메모장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신들을 써둬요. 그래서 제 핸드폰 메모장엔 별 내용이 다 있습니다.

피드백이야말로 즐거움

- 글쓸 때 필요한 소재는 평소에 어떻게 수집하는지 궁금합니다.

= 주로 회의하면서 많이 얻는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옥>을 쓸 때도 최규석 작가와 거의 난상토론하듯 여러 상황들에 관해 한참 이야기했었어요. 기타를 치면서 느낀 건데 음악은 결국 코드의 조합 같거든요. 이야기도 비슷해요. 여러 이야기의 조각들을 나열한 뒤 이리저리 붙여보고 잘 붙으면 대본이 되고, 안 붙으면 폐기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러다 이 정도면 쓸 수 있겠다는 감이 올 때, 그때 글을 쓰기 시작해요. 최근엔 소재를 고를 때부터 산업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합니다. 시나리오가 시나리오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선 투자라는 큰 허들을 넘어야 하잖아요.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니 이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소재인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두루 생각해봅니다. 또 실사 영화와 드라마를 하면서는 대중성을 고려한 판타지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최규석 작가와 판타지가 가미되지 않은 <계시록>이란 만화를 연재했어요. 마찬가지로 판타지 요소가 없는 <돼지의 왕>을 드라마화하기도 했는데요. 갈등 구조로만 형성된 드라마가 어느 정도까지 어필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균형을 맞춰나가려 하고 있어요.

- 그런 과정을 거쳐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시시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냥 ‘일’입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러고 싶진 않아요. 마감 기한에 맞춰 글을 쓰고, 재밌게 잘 쓰려다보니 몇 가지 법칙들이 생겨나고, 완성될 글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니 그에 맞춰 제대로 일해야 할 의무가 따르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는 거죠. 물론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또 사람들의 피드백이 오면 기쁘기 때문에 나름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요. 그런 것마저 없으면 아마 나만 재밌는 일만 하지 않았을까요. 최근 관심 가진 피규어 만들기처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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