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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숙향 작가, "‘주병진쇼’ 10년, 잘나가던 방송 작가에서 드라마로 전향한 이유는..."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3-03-15

드라마란 개연성 있는 상상력의 공간

- 요리를 잘 모르는데도 <파스타>를 밀어붙였던 건 소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 물과 불과 기름, 그리고 칼이 있는 주방이 곧 전쟁터란 생각에 흥분했지요. 작은 전쟁터에서의 로맨틱 코미디를 구상한 거예요. 15명 정도 되는 요리사들에게 마이크를 채워 하루 동안 주방에서 오고 가는 모든 말들을 녹음하고, 한 레스토랑에 보름 정도 거의 살다시피 있기도 했죠. 식당 50곳을 다녔어요. 몇 개월 했더니 이제 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찾아오더군요. 저는 취재에 시간을 많이 들인 후 빨리 써내려가요. 그게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잠시 옛날로 돌아가보죠. 방송 작가로 이미 인정받던 상황에서 왜 드라마로 전향을 결심했나요.

= <주병진쇼>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을 거치면서 일이 많이 들어올 땐 프로그램을 3~4개씩도 했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재밌게 일한 시간이 10년이 훌쩍 넘어요. 수입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방송국 아이템도 결국 유행 따라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라 33살 무렵에 내가 정체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 든 거죠. 방송 일이 불안정한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자극적이고 재밌는 일이 드물어요. 시사·오락 프로그램은 후회 없이 했으니 그 옆에 있는 드라마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습니다. 벌어놓은 돈 다 쓸 때까지만 버텨보자, 그렇게 시작했어요.

- 잘나가던 커리어를 접고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조급함은 없었는지요.

=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작업실부터 구했어요. 월세가 나가야 긴장하고 쓰니까. 교육원 기초반, 연수반, 전문 창작반을 중간에 한번씩 떨어져가면서 쭉 따라갔습니다. 그러다 KBS 공모에 당선된 거죠. 방송 작가에서 드라마 작가가 되기까지 한 6년 걸렸으려나요. 저는 자신감은 없지만 무모한 사람 같아요. 승부사라기엔 이기는 것엔 큰 관심이 없고 지더라도 매번 위험한 쪽에 베팅하는 게 체질에 맞습니다. 사실 제 드라마 성적들만 해도 그렇잖아요? 꾸준히 해왔고 시청자들의 큰 사랑도 받아봤지만, 시청률로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했다거나 대단하게 1등을 했다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그런데도 좋아하니까 계속 하는 거지요.

- 집요한 자료 조사의 노하우는 <주병진쇼> 메인 작가로 오래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근육에 새겨진 걸까요.

= <주병진쇼>, 15년 했죠. 근데 그건 지금 생각하면 운이 컸어요. 방송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방송국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고, 당시 이영돈 PD가 대학 선배였어요. 호스트와 PD가 제각기 성격파라 현장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웃음) 그러니 그 사이에서 둘을 중화해줄 꼼꼼한 메인 작가가 필요했겠죠. 여러 이유로 저를 그 자리에 앉히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운 좋게 기회를 얻었으니 정말이지 제대로 해내고 싶었습니다. 20대 중반이었는데 당시 연인과도 헤어졌어요. 만날 시간이 없어서.

- 드라마 취재의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 전문가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까지 취재하는 것. 거기까지 밀어붙여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해요. 잘 아는 것만 취재하면 누가 물어봐도 상관없는 대답들이 나와요. 드라마란 개연성 있는 상상력의 공간이니까 전문가와 같이 팩트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편이에요. 친밀함을 넘어 집요함까지? (웃음) 저와 보조 작가들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까지 팩트로서 검증될 수 있는지 물어봐요. 어떤 분들은 처음에 화도 내시죠. 말이 안된다, 그럴 일은 없다고. 그러다보면 아직은 없지만 앞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을 취재원과 같이 만들어내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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