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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지컬: 100’ 장호기 PD, “완벽한 피지컬이란 화두에 스토리를 더했다”
김수영 사진 오계옥 2023-03-30

100명의 도전자들이 생존경쟁을 펼치는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에는 최고의 피지컬을 찾으려는 도전 외에 또 하나의 도전이 숨어 있었다. 전세계인을 사로잡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는 지상파 소속 장호기 PD의 도전이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예능의 공식처럼 활용되던 자막, 음악, 진행 방식 등을 지우고, 시청자로서 자신이 매혹됐던 요소들을 채워넣었다. 넷플릭스로 보낸 뒤 2주 만에 연락이 왔다는 그의 기획서 30여장에는 회별 에피소드 제목부터 퀘스트 예시, 연출 방식, 음악, 이미지까지 채워져 있었다. 38개국에서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기록한 <피지컬: 100>은 결국 플랫폼 내 수많은 콘텐츠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압도적인 화제성, 프로그램을 향한 다양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출연자의 학교 폭력 이슈와 결승전 논란이 이어지면서 <피지컬: 100>은 종영 간담회도 취소한 채 끝맺었다. <피지컬: 100>이 던진 몸에 대한 화두부터 시청자를 사로잡은 연출까지, 논란 속에 묻힌 프로그램 이야기를 듣고자 장호기 PD를 만났다.

- 명함을 보니 ‘OTT&팩추얼프로그램개발팀’ 소속이다. <PD 수첩>을 만들 때부터 사내에서 OTT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고. 왜 OTT였나.

= 우리 집에 TV가 없다. 이제는 사람들이 TV 없이 OTT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한다. 지상파도 다양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납품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역량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이런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당장 어떻게 할 건데, 라는 질문에서 막혀 있던 상황이었다. 애초 <피지컬: 100>은 지상파에서는 어려운 기획이었다. 규모나 제작비 문제뿐 아니라 노출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많고 언어적인 표현 방식에도 제한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하잖나. 그래서 아예 OTT에 걸맞은 기획을 해보자 싶었다. 할 수 있는 곳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상파 플랫폼과 이익을 셰어하는 방식으로 가면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2화 만에 미국 7위, 영국 6위 등 순위권에 들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 평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미국, 유럽쪽에서 잘 소비되던 미드나 자극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의 몸에 대한 관심, 원초적이고 강한 경쟁구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룰 등이 동서양에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OTT 예능이라고 해도 지상파에서 보던 프로그램의 스케일을 키우거나 유사한 형식을 활용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유명인은 대개 우리에게만 유명하고, 예능에서 자막은 중요한 요소지만 외국에서는 허들일 수 있다. 완전히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 스탭이 화려하다. <강철부대> <고등래퍼>의 강숙경, 조근애 작가, 영화 <기생충>의 최세연 의상감독, <오징어 게임>의 김성수 음악감독, 거기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 제작사 루이웍스미디어와 함께했다. 이 드림팀은 어떻게 꾸렸나.

= 예능 베이스가 없다보니 백지에서 시작했다.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의 스탭 스크롤을 뒤졌다. 연출, 작가 파트는 서바이벌 콘텐츠를 안전하게 제작할 수 있는 베테랑이 필요했다. 머릿속으로 음악은 이분, 미술은 이분이 해주면 멋지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검색하고 연락을 돌렸다. 김성수 감독님은 <오징어 게임>의 <핑크 솔저스>라는 곡을 만든 분인데 뮤지컬 장르에서도 유명하다. 그분의 음악적 특색을 더하고 싶었다. 봉준호 감독님을 워낙 좋아해서 이분은 어떤 의상감독님과 일할까 찾아보니 계속 최세연 감독님의 이름이 보였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기획안을 보냈다. 내가 유명한 예능 PD였으면 오히려 거절하지 않으셨을까.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해서 합류하신 것 같다.

- ‘그리스 신전에 모인 전사들이 피지컬 대결을 벌인다’는 컨셉은 처음부터 있었나.

= 처음에는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서 서바이벌 경쟁을 치른다, 정도였다. 이걸 끌고 갈 하나의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했던 유재현 미술감독님, 다른 PD님들과 스토리를 잡아갔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 실패는 곧 죽음이다. 탈락에는 죽음에 준하는 장치가 필요해 참가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걸 빼앗기로 했다. 그게 몸이었다. 몸을 형상화한 토르소를 게임에 들여오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이어졌다. 기획 자체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느낌이 있었다. 당시 조각상이나 그림을 보면 그때도 인체의 아름다움이나 피지컬에 대한 탐구가 있었더라. 접점을 찾아 신화를 녹이기로 했다. 기존에 피지컬을 겨루는 대회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대개 달성한 숫자만 놓고 겨루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토리를 갖추고 신화적인 모티브를 버무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 맨손, 협동, 도구 등 인류의 발달을 떠올리게 하는 단계별 퀘스트나 그리스 신화 속 형벌을 형상화한 종목들이 <피지컬: 100>을 남다른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들었다. 처음 구상한 큰 그림이 궁금하다.

= 최초 기획안에는 ‘한 괴짜 재벌이 100명을 모아놓고 그중 한명을 꼽는 대회를 열었다’는 스토리를 적었다. <오징어 게임>의 프런트맨처럼 <피지컬: 100>에도 그런 인물과 세계관을 만든 거다. 이런 대회를 주최하는 괴짜 재벌의 나이나 재산은 어느 정도일 거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 탐닉한 사람일 거다, 그 사람이라면 갑자기 자동차를 부수거나 세련된 게임은 하지 않을 거다 등등. 중심 캐릭터를 놓고 아이디어를 쳐내거나 더하는 식으로 스탭들과 고민해나갔다. 누가 빠른가, 누가 힘이 센가처럼 논쟁의 여지도 없는 문제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했다. 왜 이 종목을 이 사람과 저 사람이 겨루는가. 왜 저 사람은 저런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는가 등등 과정 전체가 <피지컬: 100>의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일까, 라는 나의 질문이자 주최자의 질문을 통해 몸에 관한 토론과 논쟁, 비판까지도 프로그램 안에 넣고자 했다.

- <오징어 게임>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교양 본부에 기획안을 제출한 건 <오징어 게임> 이전이었다. 원래는 참가자 전부를 그룹화해서 경기를 치르려고 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보고 개인전으로 치러도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반대로 <오징어 게임> 때문에 포기한 부분도 많다. <피지컬: 100>에도 유니폼을 입은 관리자들이 등장하는데 원래는 그분들의 역할이 더 많았다. 옆에서 개입하고 출연자들을 끌고 나가게도 할까 생각했는데 너무 <오징어 게임> 같더라. <오징어 게임>이 잘돼서 기뻤고 저 힘에 좀 얹혀가자 생각했다. 넷플릭스에 제안할 때는 <오징어 게임>의 요소를 강조해서 얘기했다. (웃음) <피지컬: 100>이 ‘근징어 게임’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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