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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카일리 블루스’, 이정표 없이 가속하는 영화, 불안정한 기착지는 사실 내가 떠나온 곳
이보라 2023-05-24

<지구 최후의 밤>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젊은 감독 비간의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가 극장을 찾는다. 국내에서는 꽤 늦은 개봉이다.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필름메이커 경쟁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우리는 많은 시네아스트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데이비드 린치, 허우샤오시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의 그림자가 아른거렸고, 이는 이 오묘해 보이는 영화의 독창성을 다소간 의심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카일리라는 도시에 사는 남자 천성(진영충)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작은 진료소에서 일하는 그는 계속해서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꾼다. 어머니가 신던 푸른 신발, 루성(갈대로 만든 생황) 소리,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먀오인들…. 잠에서 깬 후에도 맴도는 이미지들에 기분이 께름칙하다. 게다가 삼촌인 자신을 형이라 부를 정도로 가까웠던 어린 조카 웨이웨이가 시골 마을 전위안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조카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연로한 동료 의사가 옛 연인에게 전해 달라며 맡긴 선물도 품은 채.

<카일리 블루스>의 줄거리는 매끄럽게 정돈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기차와 자동차, 오토바이를 타며 이곳저곳을 오가는 인물의 동선을 따라 기이한 시간의 맥락을 구성한다. 온통 밤중에 진행되던 <지구 최후의 밤>과 달리 <카일리 블루스>는 주로 낮 시간대를 주요 배경으로 삼아 달린다. 대신 짙은 안개와 우거진 산림의 풍경이 이 서사의 지대에 무거운 비밀을 드리운다. 이곳은 아무리 이동해도 끝이 없어 보이는 동시에 자꾸 어디선가 본 듯한 양극의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곳곳에서 원시인의 존재가 언급되면서 스산한 미스터리가 생성되고, 주된 모티브인 시계는 자주 앞서 드러나 차라리 동화적이다. 여기에 문학을 전공한 비간 감독이 실제로 직접 지은 시들이 사이사이 낭송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도 강화된다. ‘둘로 잘린 영화’라 일컬을 만한 형식을 갖춘 <카일리 블루스>의 1부는 뜻 모를 인서트숏과 나른한 대화들로 인해 서사로의 몰입을 저해하지만, 여기에 흔쾌히 합승한다면 2부에서 발견되는 드라마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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