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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할리우드 작가조합, 배우조합 파업 무엇이 쟁점인가 - WGA와 SAG-AFTRA의 파업을 둘러싼 7가지 질문들
정재현 2023-08-18

할리우드가 멈췄다. 촬영 중이던 영화와 TV시리즈는 모두 제작을 중단했고, 하반기에 있을 영화제 레드 카펫에 배우들은 서지 않을 예정이다. 지난 5월2일 미국작가조합(WGA)이 무기한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7월14일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 또한 미국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을 상대로 파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양 노조가 동반 파업을 한 것은 1960년 이후 처음이다. 아직까지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지금 양 노조의 파업이 대립 중인 쟁점은 무엇이며 할리우드에 미칠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해보았다. 지난 6월14일 미국작가조합 파업을 지지하는 공동성명 및 연대시위를 기획한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를 만나 한국 시나리오작가의 근무 환경과 파업이 창작자에게 던지는 쟁점에 관해서도 물었다.

미국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은 어떤 단체인가?

AMPTP(Alliance of Motion Picture TV Producers)는 미국영화·TV제작자연맹(이하 제작자연맹)이다. 이 연맹에는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등의 영화 스튜디오와 <FOX> 등의 미국 지상파 방송국 그리고 넷플릭스, Apple TV+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사가 소속돼 있다. 제작자연맹은 미국 노동법에 따라 3년마다 미국작가조합(WGA, 이하 작가조합),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 이하 배우조합), 미국감독조합(DGA, 이하 감독조합) 등과 노사 협상을 한다. 이들은 기본 합의서를 조율, 갱신하고 각 노조의 근무 환경과 급여 문제를 개선하며 양자간 계약은 다음 계약 갱신 전까지 미국 미디어 업계의 표준근로계약서 기능을 한다. 올해 2023년은 세 단체가 2020년 체결한 합의서를 갱신하는 시점인데,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두 조합은 왜 파업을 선언했나?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은 제작자연맹에 다음 사항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우선 두 조합은 최저임금의 인상을 제시했다. 작가조합 통계에 의하면 2023년 현재 조합원의 49%가 최저임금을 받고 있고, 인기 작가들의 평균 연봉 또한 10년 전보다 약 4% 감소했다. 배우조합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제작자연맹은 두 집단에 그만큼의 인상은 어렵다며 반대했다.

작가조합은 라이터스 룸(Writer’s Room, 할리우드의 여러 작가가 아이디어를 협의하는 회의실)에 투입될 최소 인력 기준의 재정비를 촉구했다. 작가조합은 작품의 기획 단계와 제작 단계 중 라이터스 룸에 안정된 고용 기간 보장과 보조 인력의 보장을 제안했으나 제작자연맹은 이를 거부했다. 넷플릭스가 라이터스 룸을 최소화한 미니 룸(Mini Room)을 도입한 것 또한 쟁점의 중심에 있다. 넷플릭스는 최적화된 업무 환경을 명목으로 라이터스 룸을 미니 룸으로 재편해 이름 그대로 작가 수를 줄였다. 하지만 미니 룸은 정식 작가의 방이 아니다. 따라서 임금이 적고 신인 작가들이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줄었다.

배우조합은 셀프 비디오 오디션이 지양되길 바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많은 제작사들이 배우가 오디션 영상을 촬영해 제작사로 보내는 비대면 오디션을 선호한다. 하지만 배우들은 영상 오디션의 불관행이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제작사는 영상 오디션 체제로 전환하며 배우들에게 급박한 마감 기한과 과도한 양의 대사 등을 요청하는 등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고, 오디션에 소요되는 모든 기초 비용을 무명 배우들에게 전부 전가한다는 것이 배우들의 입장이다.

생성 AI 이슈는 무엇인가?

생성 AI(Generative AI)란 인공신경망을 이용하여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해내는 기술로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인공지능이다. 2023년을 여전히 뜨겁게 달구는 중인 챗지피티(ChatGPT)를 생성 AI의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미국의 제작자들은 생성 AI를 통해 시나리오의 초고를 작성한 후 작가들에게 대본의 수정을 요구했고, 생성 AI가 보유한 데이터베이스에 작가들의 수많은 저작물을 보상 지급 없이 무단으로 도용하였다. 또한 생성 AI를 통해 배우의 얼굴을 스캔한 후 복제한 신체를 자사 영화에 무한정 등장시킬 초상권을 제작사에 귀속할 것을 강권했다. 이때 복제된 배우의 신체 초상권은 제작사에 있으므로 스캔 당일을 제외하곤 배우에게 금전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작가조합은 다음 세 조항을 제작자연맹측에 요구했다. 첫째, 생성 AI 프로그램 데이터 구축에 어문 저작물을 활용할 때는 원저작자의 허가를 받을 것. 둘째, 생성 AI 프로그램 개발에 저작물을 사용했거나 사용할 예정일 때는 원저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 셋째, 위와 같은 제작자의 만행이 훗날 위헌으로 판결된대도 작가의 저작물 활용에 관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할 것. 배우조합 또한 다음 두 조항을 요구했다. 첫째, 작품의 어느 지점까지 생성 AI를 사용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할 것. 둘째, 생성 AI를 통한 복제물이 작품에 사용될 때 사용량에 비례한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할 것. 메릴 스트리프, 제니퍼 로런스 등의 배우들은 생성 AI 사태에 대해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임금, 예술, 창작의 자유, 조합의 힘 모두가 훼손됐다. 여태까지의 궤적을 뒤집어야 한다”는 공식 서신을 발표했다.

재상영분배금 이슈는 무엇인가?

재상영분배금은 영화, 드라마, TV 프로그램 등이 동일 매체나 타 매체에서 재상영 혹은 재사용될 때 창작자와 실연자가 제작자로부터 수령하는 금액이며, 이 지급금은 노동조합간의 협상으로 구성된다(<영화 창작자의 재상영분배금(Residuals)에 관한 해외사례 기초연구>, 유진호 지음, 영화진흥위원회 펴냄, 2018년). 재상영분배금은 1960년 배우조합과 제작자연맹간의 계약으로부터 처음 등장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업계 종사자들에게 지급됐다. 극장 상영 혹은 TV 방영 이후 신디케이션 오프 네트워크(지상파 네트워크에서 방송된 후 지역 독립방송사나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판매되는 2차 시장), DVD나 블루레이 등 2차 판권으로 인한 수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8년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시장 진출 선언 이후 OTT SVOD에 따른 재상영분배금 또한 작가나 배우에게 지급돼왔다. 하지만 OTT가 직접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재상영분배금 수급에 어려움이 생겼다. 동량의 노동을 통해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해당 작품이 끊임없이 플랫폼에서 상영되어도 특정 플랫폼에서만 무한정 스트리밍되기 때문에 재판매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은 감독조합과 함께 2020년 제작자연맹과 OTT 플랫폼에서의 무한 스트리밍에 관한 재상영분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협상했다.

이번 파업의 쟁점은 ‘전세계적’ OTT 사용량에 비례하는 재상영분배금 수령에 있다. 작가조합은 가입자 수와 콘텐츠 조회수에 비례한 해외 스트리밍 재상영분배금의 인상을 요구했다. 배우조합은 배우 일만으로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배우들의 생계 보장을 위해 재상영분배금의 인상을 요구했다. 또한 OTT 업계에 조회수에 비례한 재상영분배금 지급을 위해 해외 사용량을 포함한 콘텐츠 사용량의 투명한 집계와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제작자연맹은 조회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배우들은 자신들이 받은 재상영분배금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폭로 중이다. 넷플릭스를 있게 한 일등 공신인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배우 키미코 글렌은 자신이 출연한 에피소드가 45회나 됨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받은 재상영분배금이 27.3달러뿐이라 밝혔고 에미상을 휩쓴 시리즈 <디스 이즈 어스>의 주연 맨디 무어는 드라마의 인기와 별개로 자신이 받은 재상영분배금은 81센트뿐이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장기파업에 따른 제작자연맹의 반응은 어떠한가?

제작자연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4일 작가조합은 파업을 시작한 이래 제작자연맹과 첫 협상 자리를 가졌지만 별다른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작가조합은 제작자연맹이 만약 감독조합과의 합의 기준에 따른다면 생성 AI 규정을 비롯한 몇 조항을 수정할 용의는 있으나 라이터스 룸과 재상영분배금 이슈에 관해선 여전히 완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작자연맹은 작가조합과의 협상 결렬 후 “이들의 파업은 업계 수천명에게 피해를 입혔다. 우리는 모두가 다시 일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입장을 언론에 공표했고 이후 데드라인에 의해 “조합원들이 거주지를 잃을 때까지 시간을 끌며 기다리겠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한편 미국의 수많은 제작사 중 A24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A24는 배우조합이 요구한 합의안을 모두 수용하여 촬영을 재개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배우조합의 파업이 지속되더라도 조합원들은 A24가 제작하는 영화의 촬영은 이어갈 수 있다.

파업 전야였던 감독조합은 어떻게 협상을 타결했나?

감독조합은 제작자연맹과의 협상에 성공했다. 감독조합과 제작자연맹간 새로운 계약은 감독조합 내 유권자 1만6231명 중 6728명이 참여한 계약 비준 투표에서 87%의 찬성표를 얻어 파업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양 조합이 새로 체결한 합의서는 재상영분배금과 생성 AI에 관해 개정된 규칙을 적용한다. 이들은 해외 스트리밍 재상영분배금에 관해 제작자연맹과 합의했다. 생성 AI에 관한 규정 역시 재정비됐다. 합의서에 따르면 생성 AI는 ‘인간이 아님’이 명시되며, 생성 AI가 감독들의 기본적 업무를 침해할 수 없다. 단 제작사와 감독이 생성 AI에 관한 사항을 프로덕션 단계에서 협의한다면 생성 AI를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생성 AI에 관한 조약은 연 2회마다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는 조항 또한 합의문에 포함했다. 영화 촬영장의 안전 보장 문제도 새로 신설돼 미 전역에 확대될 전망이다. 영화 <러스트> 촬영 도중 발생한 앨릭 볼드윈의 총기 격발 사건 이후, 촬영장 내 사전 총기 관리 교육과 위험 평가 도입의 확대 방침이 이번 합의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현재 파업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어떠한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TWO>와 <블레이드> 등 많은 작품의 촬영 및 제작이 중단됐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5는 포스트 프로덕션이 끝났음에도 촬영에 돌입하지 못했다. 올 9월18일 개최 예정이었던 에미상은 배우와 작가들이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함에 따라 내년 1월로 연기되었다. 배우들은 올 하반기 이어질 베니스, 토론토 등의 국제영화제에 출연작이 초청되어도 참석하지 않는다. 파업의 장기화로 인해 배우들의 홍보 활동에 제약이 걸리면서 제작사는 하반기 개봉예정작들의 공개를 내년으로 미룰 전망이다. 워너브러더스도 <듄: 파트2> <컬러 퍼플> <아쿠아맨2> 등의 공개 시기 연기를 고려 중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PR을 담당하는 퍼블리시스트 역시 배우들의 홍보 활동과 시상식 참석 등이 없어짐에 따라 수입원을 잃었다. 당장 수입이 줄어든 배우 조합원들을 위해 메릴 스트리프,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먼 등의 톱배우들은 배우조합 긴급구제기금에 100만달러 이상을 기부해 파업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동료 배우들을 돕는다. 드웨인 존슨은 역대 배우조합에 모인 기금 중 최고액을 이번 파업에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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