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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강호라는 메타포, ‘거미집’ 송강호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3-09-27

<거미집>은 송강호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시네아스트들과 송강호가 동행한 궤적이 곧 21세기 한국영화의 개념과 성격을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그가 아예 70년대 영화감독 역할로 분한 <거미집>은 단지 그가 연기한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스승 신 감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평론가들에게 싸구려 치정극이나 찍는다고 악평을 받던 김열 감독은 이틀만 시간을 내서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분명 걸작이 될 것이라는 광적인 믿음에 사로잡힌다.

- 김지운 감독과 인연을 맺은 지도 무려 25년이 흘렀다. 그는 어떤 연출자로 각인되어 있나.

= 장르의 변주를 통해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해온 감독이다. 코미디든 공포든 드라마든 호쾌한 액션 활극이든 기존 장르를 새롭게 비틀며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김지운 감독과 다섯 번째 작품을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경로를 거쳐 어디로 도달하게 될까, 궁금하고 설렜다.

- 장르 변주라는 측면에서는 초기작 <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코미디가 생각났고,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캐릭터들이 엮이다 하나의 결말로 나아가는 구성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떠올랐다.

= 영화 촬영 현장이 본무대가 된 작품은 한국영화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감독, 제작자, 배우 등 개인의 욕망이 충돌해서 파멸에 이르고 어떤 결말에 이른다. 결국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과정은 유쾌한 소동극으로 묘사돼 있지만 메타포가 강한 작품이다.

- <거미집>과 영화 속 영화 ‘거미집’ 자체가 무척 닮았다. 각자의 욕망을 숨긴 자들이 결국 어떤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 비슷하게 묘사돼 있다. <거미집>은 영화와 영화 만들기, 그리고 우리의 삶이 유사하다고 말하는 작품인 것일까. 배우 송강호는 영화 만들기가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배우로서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연기에 임하는 모습은 닮았지만, 나는 배우 이전에 자연인이다. (웃음)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이 무척 어렵고 힘들다는 점은 상이하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한국영화가 있나. <거미집>을 준비하면서 다시 찾아봤다거나 곱씹게 된 작품이 있다면.

= 얼마 전에 <오발탄>을 다시 봤는데 50년대 말에 저런 걸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했다. 한국의 리얼리즘 감독들은 <오발탄>이라는 걸작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60~7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당시 스타들이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지금은 있을 수 없는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그게 참 재밌다. <거미집>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특정 감독과 영화를 오마주하지는 않았다.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모든 한국영화와 감독, 배우들을 두루 오마주했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를 떠올렸다. 동시녹음이 되지 않았던 시절의 독특한 대사법과 연기 스타일을 많이 참조했다.

- 김지운 감독은 “강호씨가 현장에 있을 때면 또 한명의 감독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배우가 가진 감독으로서의 속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막상 <거미집>의 김열 감독을 연기하면서 새삼 느끼게 된 감독의 고충도 있겠다. 새롭게 알게 된 감독들의 사정이 있나.

= 역할을 통해 새롭게 느끼기보다는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실감했다. 감독 자체가 참 외로운 직업이다. 본인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지만 이를 내색하지 못한다. 사실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모든 예술가들이 다 그렇다. <거미집>을 찍으면서 감독은 실제로 할 만한 직업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웃음)

- 감독의 눈으로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보니 어땠나.

= 사실 <거미집>을 통해 처음 만난 배우들이다. 임수정씨와 오정세씨는 개인적으로 팬이었다. 쉬는 시간에 세트장 밖에서 배우들과 두런두런 앉아 대화를 하다가 “배우들의 앙상블이라는 측면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와 <살인의 추억> 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현장의 에너지와 설렘, 배우들이 주고받는 호흡이 장면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비슷했다.

- 직접적인 속마음을 보여주는 내레이션은 현대 한국영화에서 거의 쓰지 않는 기법이다. 또한 ‘거미집’은 흑백으로 사후 컨버팅을 한 게 아니라 흑백영화의 촬영, 조명 방식을 가져와 완성됐다.

= 흑백으로 촬영할 땐 “아, 나도 흑백으로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봤다. 중간에 한 장면 찍기는 했지만 수염 붙이고 선글라스를 껴서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웃음) 특히 클라이맥스 신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참 멋졌다. 문어체적인 대사로 내레이션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시대 예술가들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봤다. 덕분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연기했다.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에게 재촬영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도 무척 원칙적인 느낌을 주는데, 김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같은 요소들이 궁극적으로는 당시 예술가들이 지닌 숭고한 태도를 보여준다. 70년대 예술가들의 스타일리시한 의상이 주는 멋스러움, 나선형 계단 세트가 보여주는 회화성 역시 <거미집>이 지닌 또 다른 힘이다. (핸드폰 사진첩을 뒤지면서) 색감부터 구도까지, <거미집> 첫 촬영 때 찍은 스틸이 너무 근사해서 봉준호 감독에게 보여주며 함께 감탄했다.

- 당시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영화인들은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광기를 갖고 치열하게 영화 만들기에 임했다.

=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찍을 때는 공포탄이 아닌 실탄을 썼다고 하지 않나. CG도 없던 시절에 실제 총을 쏘며 전투 장면을 찍었다. 당시 감독들이 보여준 원초적인 에너지와 숭고한 태도를 떠올리며 깊은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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