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인터뷰] “불편함이 나를 확장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또 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작가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3-09-29

도톰한 양말과 앞코가 둥근 귀여운 단화. 은희경 작가의 등장은 <새의 선물> 속 진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은 한달 대여비가 10만원 남짓인 노트북과 함께였다. 삶의 모든 것이 고착되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30대 중반, 그는 불현듯 소설가가 되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의 문장처럼 은희경은 자기 앞을 가로막는 알을 문학의 언어로 깨고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또 못 버린 물건들>은 은희경의 또 다른 알이다. 자신을 ‘수필 초보자’로 여기는 만큼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수필가의 눈은 소설가의 눈과 어떻게 다를까. 어서 질문을 건네고 싶어 마음이 다급해졌던, 그래서 손꼽아 기다린 은희경 작가와의 시간이 여기 있다.

-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은 코로나19를 관통하며 나올 수 있었던 책 같습니다.

= 코로나19는 다들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속도가 느려진 시기였잖아요. 많은 것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고요. 저 또한 속도를 늦추고 기능적으로만 보던 집을 나만의 공간으로 바라봤어요. 그러니 그 옆의 사물들에 시선을 오래 두게 되더라고요. 때마침 물건을 정리하는데 그 안에 담긴 여러 사연이 보였어요. 그즈음 소설 말고 산문집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요. 그런데 왠지 산문집은 나중에 더 여유가 생길 때 쓰고 싶은 거예요. 나의 본령은 소설이니까 소설에 매진하자고 결정한 거죠.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생기니 또 다른 종류의 감정, 다른 종류의 정제된 생각들이 차오르더라고요. 그때 산문집을 내기로 결정했어요.

- 그래서 물건 정리를 많이 하셨나요? 책을 보면 맥시멀리스트의 기운이 느껴지던데.

= 하는 척만 했어요. (웃음) <또 못 버린 물건들>은 저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물건만 골라서 쓴 거예요. 나의 삶에 담겨 있는 편린들을 모은 거죠. 그래서 원고를 쓸 때, 집에 앉아 둘러보다가 “그래, 오늘은 너다!” 하면서 썼어요. 어떤 면에서는 물건 선정보다 사연 선정에 더 가깝죠. 저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소설가의 눈, 산문가의 눈

- 소설가의 눈과 산문가의 눈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 소설을 쓸 때는 엄격한 기준을 둬요. 그런데 소설에 비하면 산문은 문장이든 어휘든 훨씬 유연하게 쓰죠. 요즘 사람들이 즐겨 쓰는 유행어를 쓰기도 하고요. 소설이었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것들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요. 그런 유연성과 자유로움이 산문만이 가진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 소설을 자신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것일까요.

=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소설은 더 정제된 형태로 내보내게 되고 산문은 그 글을 쓰는 과정을 독자에게 모두 보여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물건을 만들 때 가공 과정을 거치잖아요. 그 과정에서 어떤 부스러기조차 안 보이도록 하려고 애쓰는 게 저에게는 소설이에요. 하지만 산문은 그 부스러기가 소재가 될 수 있죠. 제가 좀 들춰져도 괜찮아요.

- 붓이 흘러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隨筆)은 자기 감정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중심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 저도 산문은 초보예요. (웃음) 산문집은 두 번째이긴 하지만 첫 번째 산문집은 여러 조각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필을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소설을 오래 써오면서 왜 이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한지 그 이유를 항상 의식해왔어요. 글을 쓰면서도 목적을 잃지 않으려 한 거죠. 그래서인지 제가 소설처럼 수필에도 무게를 넣으려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인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는 섬세한 연결고리가 중요해요. 사적인 에피소드임에도 모두가 공감하고 그 감정을 동조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필가는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해 보여요.

=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웃음) 다들 자기를 잘 모르지 않나? 그래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아야겠죠. 익숙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관습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도 초보 수필가지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 쓰면서 글을 써요. 일종의 논리가 필요하니까요.

- 하지만 첫 번째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을 보면 한뼘이 넘는 긴 분량의 자기소개가 담겨 있어요.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소개글인데요.

= 푸하하! 그때 그게 유행이었어요. 자기소개란에 사적인 정보를 넣어 부드럽게 작가를 드러내는 시도들이 많았거든요. 사실 소설을 쓸 때는 차분해지고 건조해지는 편인데 제 원래 성격은 항상 들떠 있고 감성적이에요. 이런 나의 평소 모습들이 자기소개란에 그대로 표출된 것 같아요. 그냥 그게 저예요.

<새의 선물> 100쇄

- 소설과 달리 수필은 실제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 아유, 엄청 조심스럽죠.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저 혼자 어떤 감정을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간극이 생기지 않을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고, 내 안에도 자기 검열이 생겨요. 산문에서 K라고 지칭하는 제 남편이 글을 먼저 봐주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객관적인 시선을 거친다는 게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과정인 거죠. 주변 사람들의 사적인 부분이 드러날까 신경을 많이 써요.

-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책이 마니악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 저도 사람들이 무거운 이야기를 더이상 즐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근데 이야기를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강연을 듣거나 영상을 보는 건 여전히 좋아하니까요. 글이라는 매체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글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것에 더 친근감이 들 수밖에 없죠. 저도 그중 하나예요. 소설을 많이 읽긴 하지만 SNS를 하면서 정보를 얻기도 하거든요.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큰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스스로를 탐색하기 어려워지겠죠. 자기만의 소신을 내놓기보단 대중적인 의견이나 권력, 자본에 끌려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스스로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글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 그렇다면 소설은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건넬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문학보다 실용서 같은 비문학이 세상 사는 데 더 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어떤 책이든 약간의 계몽성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문학은 가리키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써보게 하면서 나를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배치시키거든요. 만나본 적 없는 인물, 겪어보지 않은 상황 등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그렇게 간접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틀에서 빠져나가볼 수도 있어요. 문학작품을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지는 않아요. 우리는 그냥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유리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잖아요. 실용서를 통해 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왜 내가 성공을 해야 하는지, 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짚어주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 <또 못 버린 물건들>의 ‘만화경’에 대한 글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어린이는 정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은희경 작가가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점이 드러나요. <새의 선물>에서도 주인공 진희는 12살 어린 나이에도 자기 생각이 뚜렷한, 하나의 주체로 그려지거든요.

= 우리가 사회화되고 기존의 편견을 주입식으로 이어받으면서 생각이 좁아지기도 하잖아요. 편협한 틀에 갇히죠. 그런데 그런 게 아직 없는 존재인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사회를 교육받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이미 굳어져버린 어른의 시각으로 볼 때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논리를 얻기도 해요.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벗어나게 되죠. 그래서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자유로운 존재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 문득 궁금해졌어요. 고등학교 시절의 어린 은희경은 어떤 아이였나요.

= 저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 안 가요. (웃음) 그때의 내가 너무 싫은데 당시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나로 대해요. 모범적이고 조용했던 저로요. 저 또한 그 역할을 하게 되고요. 어느 날부터 그게 조금 불편해졌어요. 고등학생 때 저는 모범생이었죠. 소심하기도 하고요. 하루는 가정 선생님이 글을 읽어줬어요. 여고생의 하루를 다룬 내용인데, 굉장히 착한 학생의 이야기였어요. 학교에 가서 수업 듣고 집에 와서 손수건을 빨고 주말에는 책을 읽는다는 것인데 저는 그게 그냥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옆자리의 짝은 잠을 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나중에 일어나서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순종을 강요하는 교육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부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냥 선생님들이 원하는 착한 학생으로서 내 위치를 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너무 싫죠. 그때의 내가 나를 그냥 가만히 놔뒀으면 나는 어떻게 자랐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게 바로 <새의 선물>이에요.

-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야 한다거나 편협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늘 유독 많이 나오는데, 고등학생 시절이 영향을 준 건가요.

= 맞아요. 작가가 되기 전까지 정답을 맞히는 사람으로 살아왔거든요. 자기 힘으로 세상에 질문하고 사건의 이면을 파는 작가가 되려면 스스로 그런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죠.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함이 나를 확장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 지난해 <새의 선물>이 100쇄를 찍었습니다. 출판계에서도 드문 소식인데요, 많은 세대가 <새의 선물>을 접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 사실 쇄를 넘길 때마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기 때문에 곧 100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90쇄를 넘는 순간부터 저도 기다렸죠. (웃음) 정말 100쇄를 넘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 <새의 선물>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국어 강사들의 해설이나 강의가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당사자로서 혹시 이런 것들을 보신 적 있나요.

= 제가 에고서치를 많이 해요. (웃음) 한번은 선생님들을 위한 강연을 한 적 있는데 실제 학교에서 출제된 문제를 보여주셨어요. 근데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문제를 읽는데 벌써 산만해지고. 학생들은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배우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신경림 선생님도 자신의 작품이 담긴 국어 문제를 틀렸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웃음) 소설을 학생들한테 정확히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다만 학교 시스템 안에서 <새의 선물>을 출제하기에 적확하니까 발제되었겠죠. 학생들 시험에 제 작품이 뽑힌 것만으로 영광이에요.

글의 소재를 다루는 법

-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 어떻게 소재를 찾고, 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살을 붙여나가시나요.

= 흥미로운 소재가 있으면 일단 머릿속에 저장해요. 그리고 비슷한 설정이 세 가지 정도 모이면 거기서부터 스토리를 짜내기 시작하죠. 제가 최근에 쓴 단편소설 <우리 동네 미래 용지>를 예시로 말해볼게요. 제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 실제로 미래 용지가 생겨난 것을 봤어요. 축구장 8개 정도 되는 넓은 블록인데 텅 비어 있는 땅이었죠. 그 주변은 모두 고층 아파트 단지거든요. 부동산 시세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할 거예요. 근데 비워놨어요. 그리고 팻말에 이런 말이 써 있었죠. “우리 후손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이 땅을 비워두자. 그래서 이곳이 우리의 미래 용지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은 건 아니에요. 미래 용지를 지금 개발하자는 세력이 있기도 하고요. 그때 이 현상을 보니까 밀레니엄이 떠오르더라고요. 밀레니엄이 오면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라고 믿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죠. 그때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90년대에 밀레니엄을 마주하는 아이가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한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이야기를 완성했어요. 이런 식으로 현재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소재에 비슷한 설정을 연결하면서 살을 붙여나가고 있습니다.

- 소설을 집필한 지 어언 30여년이 되어가요. 지금까지 내가 쓴 작품 중 다시 보이는 것도 있나요?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뀐 만큼 나의 가치관이나 신념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요.

= 제가 지금 첫 번째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개정판을 내기 위해 교정을 보고 있어요. 근데 너무 괴로워요. 그 당시에 제가 보았던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너무 다르거든요. <타인에게 말 걸기>는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말과 행동을 비판하려 쓴 글이에요. 그런데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제가 재밌게 쓰려고 강조한 부분들이 있는데 도저히 못 보겠는 거예요. (웃음) 또 다른 예로 9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결혼 압박이 훨씬 심했고 여성들도 순결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지금에도 진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들더라고요. 물론 지금까지도 가부장적인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태도는 강인하고 독립적으로 변했잖아요. 그래서 그런 디테일이나 수위를 조정하고 있어요.

공통질문

1. 글이 안 써질 때 나를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힘

판을 뒤집어야죠. 일단 안되는데 막 붙잡고 있지는 않아요. 그저 내가 지금 피로도가 높구나, 하고 받아들여요. 그럴 때는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아요. 앉아 있었다면 밖으로 나가버리고, 장소를 바꾸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달리기가 최고예요. 정신이 복잡하면 육체를 혹사시키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앉고 싶어지거든요.

2. 언젠가 내 글을 낭독해주길 바라는 목소리

제로베이스원 성한빈. 청량하고 부드러운 미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3. 내 인생의 책

(정말 긴 고민 끝에) 줄리언 반스의 <10과 2분의 1장으로 쓴 세계 역사>. 밀도가 굉장히 높은 책이에요. 오랜 여행길에 딱 한권을 가지고 가야 한다면 이 책을 선택하고 싶어요. 일당백을 하거든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