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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배우 김주령, 경험해야만 아는 길이 있다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3-11-09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장건재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이자 배우 김주령이 그와 함께한 세 번째 작품이다. 김주령은 2013년 <잠 못 드는 밤> 이후, 시리즈 <괴이>에 특별 출연한 데 이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로 장 감독과 10여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왔다.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오마주한 이번 작품은 더이상 배우 일을 하지 않는, 중년에 접어든 주희의 시선을 보여준다. 클레오가 젊은 여성배우의 이야기를 대변했다면 주희는 생애 전성기로부터 살짝 멀어진 시점에서 삶을 반추한다. 유방암 가능성을 진단받은 날, 주희는 홀로 대학 연구실에 돌아와 짐을 싼다. 5시부터 7시까지, 연구실에서 만난 사람들 눈동자를 통해 그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짧은 시간 동안 주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지런히 그의 삶을 짚어낸 배우 김주령에게 질문을 건넸다.

- <잠 못 드는 밤> <괴이>에 이어 장건재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했다.

= 첫 번째 작품을 함께했던 기억이 너무 좋았다. 벌써 10년 전이다. 그땐 <잠 못 드는 밤> 시나리오에 중심 뼈대만 정해져 있었다. 반드시 필요한 장면과 대사를 제외하고는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입말을 만들어 자유롭게 연기했다. 사실 촬영하면서도 ‘이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연출과 편집이 훌륭하더라. 그 뒤로 장건재 감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커졌다. 같이 나이 들면서 친구가 되기도 했고. (웃음) 하루는 장건재 감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잠 못 드는 밤>에서 30대 주희가 등장했다면, 이제는 40대 주희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두 세계관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40대 주희가 너무 궁금했다. <오징어 게임>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먼저 촬영했다.

- 한때 배우였던 주희는 현실적인 문제로 더이상 배우 일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무대 중심이 아닌 그 뒤편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의 복잡한 심경을 같은 배우로서 공감했을 것 같다.

= 주희를 보며 나와 같은 지점을 많이 발견했다. 다만 작은 의아함도 들었다. ‘세상에 이런 교수가 어디 있어?’ (웃음) 상황이 어떻든 언제나 아이들을 반겨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주희를 보면서 오히려 주희 같은 어른을 만난 아이들이 부러웠다. 주희는 과거엔 치열한 배우였을 것이다. 넓은 관점으로 보면 주희는 현재 배우가 아닐 뿐, 연기를 떠난 것은 아니다. 연기를 놓는 것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40대 즈음 되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뒤바꾸기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늦었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외면하기도, 없던 척 부정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그럼 뭐 어떡해야겠어. 직진해야지!

- 주희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일까.

=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현실적인 문제로 연기를 그만두고 미국에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주희가 연극 무대가 아닌, 강단에 서는 걸 선택한 것과 비슷하다. 그때 황동혁 감독님으로부터 <오징어 게임> 출연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미국으로 가기 위해 마음 정리를 다 했다고 주변에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연기에 대한 불씨가 여전히 남았던 것 같다. 항상 연기하는 나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은 게 주희와 비슷하다.

-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주희는 자기가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된다. 영화는 타인과의 교집합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 그래서 연구실에서 주희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 연구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당장의 할 일이 있는데도 주희는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지 않고 자리를 내어준다. 나라면 “미안한데…”로 시작하는 거절을 했을 텐데. (웃음) 게다가 유방암 가능성을 알고 있는 상황 아닌가. 속이 말이 아님에도 한결같이 너그러운 주희를 보면서 그게 주희의 본질이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등장해 길을 묻는 짜장면 배달부에게도 이상하리만치 친절하다. 건물이 복잡하면 할 수 있는 만큼만 알려주고 다시 물어서 가라고 해도 되는데, 그 굽이진 공간을 꼼꼼하게 설명해준다. 주희는 그런 태도가 너무 익숙해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지만, 남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되새긴다. “내가?” 하는 물음을 반복하는 이유도 그렇다.

- 그 자리에서 마주친 누드 모델 파트타이머와 짜장면 배달부도 서로에게 길을 묻지만 그 누구도 길을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길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주희다.

=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 길을 오랜 시간 여러 번 지나온 자만이 방향을 안다. 크게 보면 삶의 방향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촬영할 때만 해도 이 장면에 마음을 크게 담지 않고 찍었는데 이제 보니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 이후 <SKY 캐슬>에서 노승혜(윤세아) 언니로 출연한 게 다시 조명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배우가 이 배우였어?” 하며 놀라기도 했는데.

=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극찬이다.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짜릿하다! (웃음)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역할에 녹아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 너무 뿌듯하다. <오징어 게임> 이후 나의 존재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러 작품으로 활동할 기회도 많아졌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으로 대중과 가까워진 그 지점까지가 내게 주어진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 앞으로 많은 작품으로, 더 다채로운 색깔을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박지은 작가의 <눈물의 여왕>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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