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랑데부>(Le Rendez-vous de l'été)
감독 발렌틴 카디크 | 출연 블랑딘 마덱, 인디아 에어, 아르카디 라데프 | 78분 | 15세이상관람가
2024년 파리올림픽이 한창인 여름, 노르망디에 사는 블랑딘(블랑딘 마덱)은 동경하던 수영 국가대표를 보기 위해 파리를 찾는다. 숙소난으로 연락이 끊겼던 이복자매 집에서 신세를 진다. 꿈에 부풀어 찾은 올림픽은 블랑딘의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경기 관람은 매끄럽지 않고, 숙소에선 이복자매 가족의 갈등을 바라보며 함부로 끼어들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거리감을 감지한다. <여름의 랑데뷰>는 파리올림픽이 마무리된 지 2년이 지난 현재 자국민의 시점으로 이를 회고한다. 엔데믹 이후 정상화된 첫 축제 앞에 모두가 들뜨지만 이면도 존재했다. 일부 이주민, 노숙자들은 올림픽 기간 동안 파리에서 쫓겨났으며 그로 인한 시위가 일기도 했다. 블랑딘과 이복자매, 지방과 수도 거주인의 시선으로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명암과 개인의 삶에 끼친 영향, 블랑딘이 느낀 묘한 소외감과 일상을 벗어나 겪은 변화까지 다채롭게 묘사한다. /조현나
<환송대, 다섯 번째 샷>(Le Cinquième Plan de La Jetée)
감독 도미니크 카브레라 | 출연 도미니크 카브레라 | 98분 | 전체관람가
고독한 작가 크리스 마커의 작품이자 누벨바그 시대의 SF, 한 장면을 제외하곤 전부 사진으로만 이뤄진 영화 <환송대>(1962).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은 이 작품의 다섯 번째 장면을 보고선 위화감에 휩싸였다. 의도치 않게 찍힌 일반 군중의 이미지도 포함된 작품에서 부부와 아이의 뒷모습을 담은 문제의 사진 속 주인공이 아무래도 자신의 사촌인 듯해서다. 묘한 호기심은 집요함으로 번져 작품은 가족 찾기에서 출발한 후 사진과 영화의 존재론으로까지 나아간다. 과거 흑백사진이 품은 수수께끼의 힘은 최첨단의 다양한 시각 장치들로 넘쳐흐르는 현재도 해결하지 못할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 비밀 해제에 참여하는 사람이 감독의 사촌뿐 아니라 과거 <환송대>의 제작진과 주변 인물로까지 늘어나면서 작품은 뜻하지 않게 인물 연구, 이민자 인류학, 역사 탐구의 면모도 갖춘다. 1962년작 <환송대>가 지닌 시간과 기억, 사진과 영화의 역학이 작품 안팎을 통과하며 더욱 증폭되고 마침내 드러난 진실은 감동을 선사한다. /김성찬
<그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Que ma volonté soit faite)
감독 쥘리아 코발스키 | 출연 마리아 브루벨, 록산 메스키다 | 99분 | 청소년관람불가
폴란드 출신의 10대 나보이카(마리아 브루벨)는 작은 마을에서 가족들과 소를 키우며 지낸다. 죽은 엄마에게 깃들었던 악령이 자신의 안에도 있다 믿어 괴로워하는 그는 아빠의 과보호와 형제들의 무시에 순응한다. 한편 마을을 떠나 있던 산드라(록산 메스키다)가 돌아온다. 이웃들이 꺼리는 그에게 이끌리기 시작하며 나보이카는 밤마다 발작을 일으킨다. 그리고 소들이 연이어 괴사한다. 배타적 공동체와 억눌린 여성, 욕망을 계기로 증폭되는 ‘괴물성’. 드문 설정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의 고유성은- 분비물과 진흙의 점성, 불의 온도를 연상하게 하는- 촉각적 이미지나 화면과 음악을 충돌시키는 편집 등을 한 흐름으로 엮어 복합적 기괴함을 구현해내는 데 있다. 불은 지정된 악(이물)을 삭제하는 수단으로 등장하지만, 치솟는 열기에 데이며 나보이카는 스스로의 마녀성을 더 선명히 의식하게 된다. /김연우
<아르토의 땅에서>(Le Pays d’Arto)
감독 타마라 스테파냔 | 출연 카미유 코탱,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 104분 | 15세이상관람가
프랑스인 셀린(카미유 코탱)은 6개월 전 사망한 남편 아르토(호브나탄 아베디키안)의 고국 아르메니아로 향한다. 남겨진 두 아이에게 아버지의 국적이라도 물려주고 싶어서다. 그러나 아르토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관공서에서 셀린은 적잖이 당황한다. 아르토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성만 다른 인물이 아르토가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주변을 수소문하던 참에 남편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아르토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중 분대원의 죽음을 뒤로하고 달아난 탈영병으로 알려졌으니 당연한 태도다. 그에게 단 한번도 그같은 얘기를 들은 적 없는 셀린은 황망한 채로 알 수 없는 오기에 이끌려 전장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작품은 셀린과 아르토의 사연을 경유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이 낳은 살풍경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부족한 사회 인프라를 배경으로 지진과 전쟁 탓에 아르메니아에는 셀린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모두가 애도를 필요로 하는 나라에서 아르토의 신분 확인을 위한 여정은 애도를 향한 발걸음으로 바뀌고, 감시와 긴장의 연속인 전장에서 셀린은 드디어 아르토의 심정과 공명하며 진혼을 완성한다. 셀린과 아르토의 관계에 반영되었듯 영화는 아르메니아에 기운 프랑스의 특수한 관점을 숨기지 못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대하는 보편적 감정으로 승화하기 위해 애쓴다. /김성찬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La Petite Dernière)
감독 합시아 헤지 | 출연 나디아 멜리티, 박지민 | 107분 | 15세이상관람가
파티마(나디아 멜리티)는 알제리 출신 이민자, 무슬림으로 축구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10대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사이, 카메라는 자주 생각에 잠긴 파티마를 가만히 바라본다. 여자에게 이끌리는 여자인 그는 ‘의심치 않는’ 태도들에 둘러싸여 있다. 화목한 가정은 성역할이 당연시되는 공간이고 활기찬 친구들은 동성애 혐오적 농담을 던지며 다정한 남자 친구는 결혼해 아이를 낳는 미래를 꿈꾼다. 파티마가 감각하는 경계는 집에 달린 발이나 학교 주위의 펜스처럼 늘 거기 있어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그러나 인식한다면 틈새로 밖을 볼 수도 있는 종류의 것들이다. 파티마는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이름의 자신이 되어보고 틈을 넓히기도 해본다. 데이팅 앱에 가명 프로필을 만들어 여자들을 만나고, 대학 진학 후엔 지나(박지민)와 연애를 시작한다. 퀴어 친구들도 생긴다.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은 특별한 계기로 극적 전환점을 맞이해 끝내 어딘가에 도달하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장면들은 완결되지 않는 여정의 일부로서, 파티마가 지나는 계절을 따라 흐른다. 교차하는 정체성들은 때로 엇갈리나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나디아 멜리티를 포함해 대부분 비전문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단역마저 입체적이다. 여성과 이민자 서사에 관심을 둔 합시아 헤지 감독의 네 번째 장편으로, 파티마 다스가 쓴 (원제 기준)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78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과 퀴어종려상 수상작이다. /김연우
<아니말>(Animale)
감독 에마 베네스탕 | 출연 울라야 아맘라, 다미앙 르바텔 | 101분 | 청소년관람불가
네지마(울라야 아맘라)는 프랑스 카마르그 지역 최초의 여성 투우사다. 썩 만족스럽지 않은 첫 경기를 치른 날 그는 남성 동료들과 축하 파티를 연다. 여성이라고 무시하는 일 없이 곁에서 투우사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그들이다. 그 파티의 끝 목장에서 그들이 건네준 사탕을 먹기 전까지는. 영화는 여성의 신체 변형과 동물로 상징되는 자연과의 합일 등의 모티브를 지녀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이나 어맨다 넬 유의 <호랑이 소녀>등의 작품과 동류로 묶일 만하다. 엇비슷한 설정의 반복이 여성 억압을 그리는 표현 수단의 한계처럼 여겨져 피로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신체 변형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조차 억압처럼 보이고 환상 없이는 현실에 맞설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무력감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자연마저 정복의 대상일 뿐인 폭압적인 남성성을 보면 자연과 동일화한 여성은 아직 유효한 개념임을 깨닫는다. 남성들에게 눌린 소를 네지마로 치환하는 장면이 그 증거다. /김성찬
<민들레 오디세이>(Planètes)
감독 모모코 세토 | 출연 - | 75분 | 전체관람가
한 송이 민들레에서 비롯된 씨앗 무리가 핵폭발로 파괴된 지구를 탈출한다. 우주를 떠돌던 최후의 씨앗 넷은 어느 행성에 도착해 뿌리내릴 곳을 찾아 헤맨다. 지구와 흡사한 미지의 땅을 모험하며 씨앗들은 생소한 위협과 뜻밖의 도움을 만난다. 3D애니메이션과 타임랩스 사진을 섞어 작업했다는 <민들레 오디세이>의 중심에는 연주곡과 함께 흐르는 모험 서사가 있다. 효과음과 몸짓 언어로 소통하는 네 씨앗 캐릭터의 움직임은 인간을 닮아 있다. 그 사이로 모모코 세토 감독은 싹의 성장이나 알의 부화, 비 맞은 잎의 떨림, 민달팽이들의 교감 등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의 이야기를 공들여 묘사한다. 식물이 시들고 곰팡이가 자라는 과정을 찍거나 기후변화를 인식하는 SF 이미지를 담았던 감독의 실험 단편들과 연결성이 보인다. 우주 풍경과 민들레를 겹쳐보며 시작하는 <민들레 오디세이>는 무수한 생명들에게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연우
<소년 하나 둘 셋>(Météors)
감독 위베르 샤뤼엘 | 출연 폴 키르셰, 이디르 아줄리, 살리프 시세 | 110분 | 15세이상관람가
오랜 친구인 토니(살리프 시세)는 건설업으로 성공해 자리를 잡은 상태지만 미카엘(폴 키르셰)과 단(이디르 아줄리)은 가난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단으로 인해 미카엘까지 범죄에 휘말리고, 둘은 재판을 받기에 이른다. 미카엘과 단은 토니의 도움으로 핵폐기물 처리 시설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묵묵히 일하는 미카엘과 달리 단은 술과 범죄의 유혹에 또다시 휘말린다.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단이 크게 다치자 토니가 돈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들고 미카엘이 강하게 반발한다.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한 프랑스 청년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한 작품이다. 삶을 개선해보려는 청년들의 의지는 자본에 의해 쉽게 착취당한다. 목숨마저 금전적 가치로 환원하고 부품처럼 사람을 쓰고 버리는 사회 속에서 무력감에 젖은 청년들이 쾌락과 위법 행위에 빠져들고, 관계를 놔버리는 상황이 냉철히 묘사된다. 반복되는 배우 폴 키르셰의 클로즈업신이 이들의 절망감을 대변한다. /조현나
<그랑다르슈의 이름 없는 남자>(L’connu de la Grande Arche)
감독 스테판 데무스티에 | 출연 클라에스 방, 시드 바벳 크누센, 자비에 돌란, 스완 아르라우드 | 107분 | 15세이상관람가
그랑다르슈는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라데팡스에 세워진 기념비다. 198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인권, 평화’를 의미하는 ‘신개선문’ 그랑다르슈 건설을 위해 국제 건축 공모전을 개최한다. 당선자는 무명 건축가였던 53살의 덴마크 건축가 오토 폰 슈프레켈센(클라에스 방)이다. 그는 파리로 건너와 자신의 역작인 그랑다르슈를 건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권 교체로 미테랑 대통령이 그랑다르슈 건설을 처음 계획대로 지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슈프레켈센의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1983~87년 그랑다르슈가 시공될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스테판 데무스티에 감독은 슈프레켈센을 자신의 이상을 최우선으로 둔 건축가로 상정한다. 시공을 도운 폴 앙드루(스완 아르라우드), 실무를 담당한 쉬빌롱(자비에 돌란) 등과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그의 굳건한 태도가 결국 주변의 지지를 얻어내는 상황을 꼼꼼히 그려낸다. 행정적 제약,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구상에 변화를 줘야 했던 한 예술가의 고뇌는 유사한 상황에 놓인 <브루탈리스트> 속 라즐로(에이드리언 브로디)를 연상시킨다. 클라에스 방, <추락의 해부>로 익숙할 스완 아르라드우드가 슈프레켈센와 앙드루 역을 맡아 갈등을 빚다 동료로 거듭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그랑다르슈라는 랜드마크를 기획했으나 조용히 잊힌 건축가 오토 폰 슈프레켈센을 기리며 그의 예술적 성취에 관한 헌사 같은 영화다. /조현나
<사랑의 노래를 불러줘>(Les Reines du drame)
감독 알렉시 랑글루아 | 출연 루이자 아우라, 지오 벤투라, 빌랄 하사니, 알마 요도로브스키 | 115분 | 청소년관람불가
2005년,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에 참가한 미미(루이자 아우라)는 ‘남자냐 여자냐’는 조롱을 받으며 입장한 빌리(지오 벤투라)와 눈이 맞는다. 펑크이자 퀴어 클럽 아이콘인 빌리와 팝스타를 꿈꾸는 미미, 가치관도 음악적 방향도 속한 계층도 달라 늘 다투지만 이들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미미가 오디션에서 우승한 후 성적 지향을 숨긴 채 활동하자 둘 사이는 벌어진다. 10년 후, 곡이 히트하며 유명해진 빌리는 충동적으로 미미를 아우팅한다. 클로짓이었던 미미의 시간은 ‘기만’이라 공격당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성/소셜미디어에 의해 가십으로 소비된다. <사랑의 노래를 불러줘>는 캠피한 미학을 내세워 2000~10년대 팝컬처의 한 줄기를 풍자하고 추억한다. 누군가는 <벨벳 골드마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미미의 극성팬 유튜버 스피디셰이드(빌랄 하사니)의 회고를 통해 라이벌 겸 레즈비언 커플의 파란만장한 연대기가 이어진다. 대중문화의 물결에 휩쓸린 연인의 장면들은 테크노, 이모 펑크, 듀엣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곡에 반영되어 뮤직비디오로 탄생한다. 당시 유행을 옮긴 의상과 음악, 화면 디자인의 향연이 아찔하다. 다채로운 드랙 퍼포먼스는 덤. (이)성애적으로 상품화됐던 걸리팝 스타 미미와 여러모로 클로짓일 수 없었던 빌리, 영화는 이 디바들에게 미디어로부터 놓여나 글리터 가득한 판타지 월드에 머무는 마무리를 선사한다. 원제 ‘드라마의 퀸들’에 풍성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