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속편은 개봉 전부터 하나의 사건처럼 소비됐다. 흥행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레거시 시퀄(Legacy Sequel)이라는 형식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흥미로운 실패 사례다.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것은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리프)와 앤디 삭스(앤 해서웨이)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긴 시간을 통과한 인물들과 그들이 몸담은 업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어떤 욕망은 닳았을 것이고 어떤 권력은 이동했을 것이며 어떤 감각은 새롭게 변했으리라는 기대. 문제는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어야 할 재료인 ‘20년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영화화하지 못했다는 데서 발생한다.
레거시 시퀄은 일반적인 속편과 다르다. 이 형식은 2010년대 이후 할리우드 산업구조와 함께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제작비는 커지고 글로벌 시장 의존도는 높아지며 극장산업은 더 안정적인 브랜드가 필요해졌다. 이미 인정받은 세계와 사랑받은 캐릭터를 다시 꺼내오는 방식은 투자 위험을 줄이는 가장 안전한 전략이 됐고 1980~2000년대 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가 경제력을 가진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한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 형식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시간이다. 실제로 노화한 배우, 관객이 지나온 세월, 산업과 문화 환경 변화 등이 영화 내부 요소로 변환될 때 레거시 시퀄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2010년대 이후 이 형식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로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SNS는 과거 이미지를 끊임없이 현재로 불러낸다. 오래된 영화는 각종 밈과 짧은 영상,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계속 재유통된다. 과거는 언제든 다시 호출 가능한 데이터가 되었고 오늘의 대중문화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이미 사랑받은 과거를 재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레거시 시퀄은 이런 바탕에서 등장한 안정지향형 형식이지만 여기엔 함정도 있다. 과거 이미지를 반복 재현하는 데 몰두하는 순간 영화는 생명력을 잃고 박제된 기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레거시 시퀄은 시간을 어떻게 다룰까. 무려 36년 만에 귀환한 <탑건: 매버릭>은 냉전시대에 황금기를 보낸 파일럿이 디지털 전쟁 시스템을 통과하며 어떤 위치로 밀려나는지를 다뤘고, 35년 만에 돌아온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미 낡아버린 미래의 풍경 자체를 영화 고유의 질감으로 사용함은 물론 과거에 행한 릭의 선택이 현재까지 이어지도록 만든다. 두 영화 모두 과거의 영광을 반복하기보다 시간이 남긴 흔적을 영화의 중심 재료로 끌어들인 예다. 그에 비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시간을 서사의 동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감각을 재현하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쓴다.
1편의 힘은 패션산업의 시간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다는 데서 나왔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세룰리안블루 스웨터 장면이다. 미란다는 앤디가 무심하게 입고 온 파란 스웨터조차 패션 생태계의 시간 흐름 속에서 선택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럭셔리 브랜드와 컬렉션, 패션잡지와 백화점, 대중 브랜드와 할인 매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철저히 미래를 선점하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 실제 패션 캘린더는 현재 계절의 옷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을·겨울 컬렉션은 봄에 공개되고, 봄·여름 컬렉션은 전년도 가을부터 등장한다. 최근에는 프리 컬렉션(Pre-Collection)과 리조트 컬렉션(Resort/Cruise Collection)까지 포함해 연간 네번 이상 시즌을 앞당겨 선점한다. 패션산업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먼저 유통하는 세계다. 미란다와 앤디가 일하는 ‘런웨이’라는 공간이 미래의 감각을 승인하는 기관이며 미란다가 시간을 통제하고 결정하는 신과 같은 인물로 등장하는 이유다.
1편에서 앤디가 겪는 변화도 외모 변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옷차림과 말투, 걷는 속도까지 변화하며 런웨이만의 시간 체계에 적응해가는 앤디의 과정을 매우 가파른 기울기로 그려낸다. 앤디는 상승하고, 동시에 자신의 소중한 관계와 가치관을 조금씩 잃는다. 이미 정점에 도달한 미란다 역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 사람들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런웨이의 세계를 몸으로 살아내는 인물이다. 욕망에 솔직하고 얄미울 만큼 경쟁적이지만 동시에 업계의 규칙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 속물이라기보다 몸담은 세계의 생존 논리를 치열하게 체득한 인물이다. 나이젤(스탠리 투치)은 오랜 시간 패션산업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피로와 애정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과 목표대로 뚜렷하게 행동한다. 서로 다른 색면들이 전체를 위해 공간을 채우는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인물마다 분명한 위치와 기능이 존재했다.
아쉽게도 2편은 그 명확하고 조화로운 운동성을 잃어버렸다. 미란다와 앤디는 무려 20년 만에 재회해 다시 일하는데도 서사의 가파른 기울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두 인물은 상승도 하강도 없이 수평에 가까운 평평한 구간을 바쁘게 오갈 뿐이다. 무릇 레거시 시퀄이라면 시간이 인물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 변화의 흔적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고 과거 캐릭터의 제스처를 재현하는 수준에 그친다. 관객이 기억하는 인물의 외피만 남기고 내면에서 생동하던 생존 감각은 희미해졌다. ‘여전해야 할 것’과 ‘여전하면 안되는 것’이 뒤바뀐 것이다. 여전해야 할 것은 인물간의 긴장과 서사의 경사도며 여전하면 안되는 것은 분위기와 텍스처다. 영화는 20년 전의 색감과 분위기, 인물간의 호흡을 그대로 복제하면서 정작 현재를 반영하는 방식은 피상적으로 다룬다. 인물들은 휴대폰과 태블릿으로 관련 기사와 실시간 반응을 확인하고 미란다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을 조심하지만 이것은 시대 변화에 대한 정보에 불과할 뿐 시대 감각이라 할 수 없다. 휴대폰과 태블릿, SNS와 실시간 반응, 미디어 산업의 변화 같은 요소를 상기시키며 종이 잡지의 쇠락과 디지털플랫폼의 부상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오긴 해도 오늘을 설명하는 정보에 그칠 뿐 오늘을 살아가는 감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용물은 같은데 포장과 제조일만 새로 바꾼 상품이랄까.
기울기 없이 빠르기만 한 이들의 평평한 서사는 초대형 스마트폰 화면을 두 시간 동안 스크롤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사건은 빠르게 이어지고 중요한 장면은 무게가 실리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짧은 자극을 연속으로 훑고 지나가는 방식, 서사의 숏폼화다.
관객이 보고 싶었던 건 20년을 통과한 미란다와 앤디다. 레거시 시퀄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인물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시간의 두께를 보여주는 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오래된 세룰리안블루 스웨터를 다시 꺼내 입고 과거를 소환한다. 결국 질문 하나가 남는다. 왜 2편으로 돌아왔는가. 단지 과거의 영광을 다시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면 관객은 이미 20년 전에 나온 더 좋은 버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