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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고의 메소드 배우 알 파치노와 <인썸니아> [3]

70년대 알 파치노와 함께 <형사 서피코>와 <뜨거운 오후>를 찍은 감독 시드니 루멧은 “알 파치노는 자기 연기의 진실성에 완전히 빠져 있기 때문에 일종의 척도가 된다. 감독을 포함해 촬영장의 모든 사람들의 진실성에 관한 척도다”라고 말했다. <형사 서피코>를 찍을 때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트럭 운전사를 체포하려 했다는 일화는 알 파치노가 메소드 연기자들의 전통에 충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비교적 최근 <애니 기븐 선데이>를 찍은 올리버 스톤 역시 시드니 루멧과 비슷한 말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일종의 필터다. 알 파치노는 자신의 연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 자기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알려줄 수 없다 해도,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알려줄 수 있다.” 한마디로 알 파치노의 연기는 자로 잰 듯 정확하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이 원하는 감정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전달하는 그 능력이야말로 80년대 알코올중독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했던 알 파치노가 부활할 수 있었던 힘이다. <인썸니아>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를 농구계의 마이클 조던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훌륭한 배우다.”

<메멘토>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점 때문에 <인썸니아>는 어느 정도 부당한 오해를 받은 측면이 있다. <인썸니아>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로 평가받기 전에 알 파치노의 영화로 감상될 필요가 있다. 알 파치노가 지난 30년간 축적한 영화 속 이미지를 하나둘 떠올린다면 <인썸니아>의 엔딩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피할 길은 없다. 감독은 갱스터와 필름누아르의 어두운 세계를 알래스카의 백야에 펼쳐놓고 윌 도머의 죽음으로 알 파치노의 속죄의식을 장엄하게 만들어낸다. 엘리가 버리려던 탄피를 쥐어주며 “이 느낌을 잊지 말라”고 부탁하는 윌 도머의 유언은, 비극의 영웅 알 파치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알 파치노의 이력서

파란만장한 삶,우여곡절 필모그래피

1940년 4월25일 뉴욕 이스트할렘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알프레도 제임스 파치노. 시실리 출신 아버지 살바토레와 어머니 로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와 둘이 브롱크스의 단칸방에서 살았다. 얼마 뒤 조부모와 숙모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생계를 이어야 했던 어머니가 일을 나가 있는 동안 알 파치노는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나면 집에서 혼자 연기하는 걸 흉내내곤 했다”는 그는 1년간 청각장애를 가진 두 숙모와 지내면서 대화를 위해 말 대신 몸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연기를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쫓겨난 알 파치노는 그때부터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했다. 구두닦이, 슈퍼마켓 점원, 경비원 등을 전전하며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잠깐씩 출연했던 그에게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제시한 곳은 말론 브랜도와 더스틴 호프먼을 키웠던 연기학교 액터스 스튜디오였다. 26살 때 액터스 스튜디오의 연출가 리 스트라스버그의 눈에 띈 알 파치노는 차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중요한 역을 맡으면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1968년 <인디언들은 브롱크스를 원한다>로 오비상을 받았고 다음해 <타이거는 넥타이를 하는가?>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알 파치노의 영화 데뷔작은 제리 샤츠버그 감독의 <백색의 공포>(1971). 그는 2년 뒤 제리 샤츠버그 감독과 <허수아비>(1973)에서 다시 만나는데 진 해크먼과 함께 출연한 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하지만 알 파치노에게 진정한 영화인생을 터준 것은 역시 <대부>(1972)였다. 라이언 오닐, 워런 비티, 잭 니콜슨, 알랭 들롱 등 쟁쟁한 후보들이 마이클 콜레오네 역의 후보로 등장했지만 코폴라는 알 파치노를 고집했다. 당시 그는 스크린 테스트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 실수를 연발했지만 코폴라는 스튜디오 간부들의 반대를 묵살하며 알 파치노를 캐스팅했다.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알 파치노는 “누군가 내게 <대부>는 당신이 아니었어도 훌륭한 영화였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다. 난 그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은인인 코폴라지만 알 파치노는 코폴라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지옥의 묵시록>의 출연제안을 거절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코폴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지만 그와 함께 전쟁에 가고 싶지는 않다.” 알 파치노는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루멧, 브라이언 드 팔마, 윌리엄 프리드킨 같은 뉴할리우드의 작가들과 보냈지만 술과 담배, 신경안정제에 탐닉하면서 경력은 내리막을 향했다. 1985년 출연한 시대극 <혁명>이 실패하면서 4년간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렌 바킨과 공연한 형사물 <사랑의 파도>(1989). 뒤이어 <딕 트레이시>(1990)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였고 <프랭키와 쟈니>(1991)에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알 파치노의 재기는 <여인의 향기>(1992)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사후추인됐지만 영화사적으로 좀더 중요한 작품은 <칼리토>(1993)이다. <칼리토>는 <대부>에서 시작된 알 파치노의 갱스터 연대기에서 하나의 정점이었다. 1996년작 <뉴욕광시곡>은 알 파치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작품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작품. 그리고 <히트>(1995) <씨티홀>(1996) <도니 브래스코>(1997) <데블스 애드버킷>(1997) <인사이더>(1999) <애니 기븐 선데이>(1999) 등이 <인썸니아>(2002)까지 이르는 여정이다.

자연인 알 파치노는 한번도 결혼한 적 없는 남자로도 유명하다. 연기교사 얀 타란트와 사이에 12살된 딸이 있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여배우 비벌리 안젤로가 최근 쌍둥이를 낳았지만 그가 결혼계획을 발표한 적은 없다. 올해 개봉예정인 그의 다음 영화는 <가타카>의 앤드루 니콜이 연출한 <사이몬>, 킴 베이싱어, 라이언 오닐 등이 함께 출연하는 <내가 아는 사람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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