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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에 대한 3가지 보고서 [3]

이미지 2 : 브랜드 ‘전지현’의 힘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

1997년의 어느 날 싸이더스HQ(당시 EBM) 정훈탁 대표는 강남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맞은편에는 한 잡지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묘한 매력의 소녀 대신 선머슴 같은 16살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었던 것. 그 아이는 연예계 운운하는 정훈탁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몸을 배배 꼬며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질문에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번뜩 쳐드는 소녀의 눈빛이 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그의 머릿속에는 <레옹>의 마틸다가 떠올랐다. 어린데도 성숙한 여인 같은 느낌이 있고, 소년의 분위기까지 풍기는 복잡한 매력이 매니저로서 정훈탁의 본능을 자극했다.

아무리 극적으로 묘사한다한들 전지현의 발탁 과정은 여느 틴에이저 스타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겉으로만 본다면, 그 이후 얼마 동안에 벌어진 일 또한 ‘보통 10대 스타’의 정규 코스와 비슷하다. 1주일에 몇번씩 연기수업을 받으며 데뷔를 준비해 1년 뒤 TV드라마에 출연했고, 쇼 프로그램 MC, CF 출연 등으로 이어지는 예정된 수순을 밟았으니까.

<엽기적인 그녀>가 탄생하기까지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지현은 처음부터 자기만의 코스를 세워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갈림길에서 그녀는 평범한 아이돌의 노선 대신 연기자, 그것도 대형 연기자로 향하는 이정표를 택했다. 물론 당시 선택은 대부분 매니지먼트사의 장기 전략 속에서 세워졌다. 조연이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캐릭터인 <내 마음을 뺏어봐>의 가영 역할로 드라마에 데뷔한 것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하는 전지현의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 의 MC를 맡았다가 ‘너무 오래 하면 성격이 되바라질까봐’ 수개월 만에 도중하차한 것, 스타로서의 신비감을 키우기 위해 TV출연과 매체 노출을 최소화한 것 모두가 ‘될성부른 나무’에 대한 배양수였다. 하지만 정훈탁 대표의 말대로 “만약 전지현이 그런 가능성을 안 보여줬거나 스타가 되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초기전략을 통해 나름의 입지를 굳힌 전지현이 발걸음을 옮긴 쪽은 당연히 영화였다. 분명 1999년의 <화이트 발렌타인>과 2000년의 <시월애>가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당시 전지현의 어린 나이나 미숙한 연기력을 고려할 때 차선책일 수는 있었다. 사실, 두편의 영화출연은 확실히 영화 자체보다는 전지현쪽으로 열매를 남겼다. “그 이전까지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뭔지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시작한 뒤 뭔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배우라는 자의식은 그녀 안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프린터 광고로 완벽히 스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녀 자신은 “일개 CF모델로 안주할 생각이 없고 배우이기 때문에 ‘테크노의 여왕’이라는 칭호로부터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했다. CF계에선 최고 스타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지만, 배우로서의 전지현은 “미모? 너무 예쁘지. 연기? 아직은…” 식의 반응을 얻는 정도였다. ‘배우 전지현’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건 2001년 <엽기적인 그녀>였다. 물론 신씨네의 시의적절한 기획, 곽재용 감독의 노련한 연출, 차태현의 발랄한 연기가 없었다면 <엽기…>의 500만 신화도 불가능했겠지만, 전지현이 가담하지 않았다면 <엽기…> 자체가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차례 설문조사가 전지현이 적역이라는 결론이었다. 전지현이 아니라면 영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당시 신씨네 마케팅 책임자 최수영 프로듀서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지현은 외모와 내면 모든 면에서 <엽기…>의 ‘엽기녀’를 빼다박은 존재였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그녀가 이 영화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녔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

<엽기…> 신드롬은 전지현을 ‘최정상급 스타’에서 ‘유일무이한 여신’급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충무로는 전지현이라는 여신을 맹목적으로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엽기…> 이후 그녀에겐 “대한민국 시나리오의 80%가 들어왔”(싸이더스HQ 김상영 팀장)고, 아예 ‘전지현 아니면 안 됨’이라는 조항이 달린 시나리오도 상당수 접수됐다. CF계에서의 파워는 더욱 높아져 탄탄한 9개 업체와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지오다노의 광고를 대행하는 화이트커뮤니케이션과 ‘2% 부족할 때’의 광고대행사 대홍기획 관계자는 “특정 모델과 매출간의 연관은 파악이 어렵지만, 브랜드의 선호도, 호감도, 인지도 등에서는 ‘전지현 효과’가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이 광고 수입인 지난해 그녀의 매출은 50억원 선이었을 정도. <전지현 따라잡기>를 만드는 튜브픽쳐스가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PPL에서 조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전지현의 존재 덕분이다.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는 “영화 속 전지현의 광고 모습을 이용해 PPL을 유치할 계획이다. 전지현이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이런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엽기…> 이후 전지현의 변화는 외형적 가치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전지현을 신인 시절부터 지켜봤던 나비픽처스 조민환 대표는 배우로서의 역량 또한 한껏 강화됐다고 평가한다. “지오다노 광고를 김성수 감독이 촬영해 스튜디오에 함께 갔었는데, 깜짝 놀랐다. 몸의 표현력 하며, 얼굴의 감정 하며 카메라 앞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라. 한마디로 몸에 자신감이 가득하더라. <엽기…> 때보다 배우로서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게 틀림없다.” 의 제작자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2% 부족할때 CF

마이젯 프린터 CF

전지현의 현재를 평가함할 때도 물론이고 ‘미래가치’를 예측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해외시장이다. 해외시장이 전지현에게 주목하게 된 전환점은 당연히 <엽기…>였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25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바람을 일으켰고, 타이에서 30만달러, 싱가포르에서 27만달러의 수익을 내는 등 대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현재까지도 상영 중인 일본에서는 5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심의문제로 정식 극장 개봉을 못한 중국에서는 7천만장가량의 불법 VCD가 팔렸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러한 돌풍의 핵에 전지현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훈탁 대표는 “<엽기…>를 계기로 최소한 중화권에서는 전지현이 확고한 스타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조민환 대표는 “전지현은 아시아 시장에서 최소 100만달러를 해외 판권 수익으로 벌어들여올 수 있는 배우”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아시아 영화계에 지인이 많은 그는 전지현의 출연작이 미니멈 개런티 기준으로 일본에서 50만달러, 홍콩에서 30만달러, 중국에서 20만달러 정도를 너끈히 벌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런 전망은 에서 들어맞고 있다. 아시아의 10여개 업체가 제작 발표 무렵부터 제작사에 때이른 구매 문의를 해왔고, 영화가 완성될 시점을 얼마 앞둔 현재는 더 많은 업체로부터 문의가 빈번해진 상태다. 의 아시아 지역 배급을 직접 담당할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이미 홍콩에는 프리세일즈 형식으로 판매했고, 나머지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당한 규모로 팔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처럼 전지현이 아시아권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에 대해 정훈탁 대표는 “외국인이 전지현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아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한국 배우로선 드물게도 몸의 선, 움직임, 표정 등이 매우 아름답다는 점이 통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시네마서비스 문혜주 해외마케팅 담당 이사는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소비적이고 패션에 민감하며 트렌드를 앞서가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전지현이 딱 그것을 체현하고 있는 듯하다”고 해석을 내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를 향한 전지현의 본격적인 움직임도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전지현은 올해 들어 중국에서 3개 업체의 CF를 찍었고, 사스 파동이 가라앉는 대로 몇편을 더 찍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홍콩의 영화사와 감독으로부터 20여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중국의 몇몇 방송사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싸이더스HQ가 현재 추진 중인 <바람개비>(가제)는 전지현의 첫 아시아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곽재용 감독과 전지현의 재결합이나 <엽기…>와 비슷한 맥락의 로맨틱코미디 장르라는 것과 함께 홍콩의 프로듀서 빌 콩이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적 프로젝트 <와호장룡>과 <영웅>을 만들어낸 빌 콩이 이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서 그가 갖는 영향력으로 미뤄볼 때, 해외시장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대접을 받을 게 분명하다. 최수영 프로듀서는 “빌 콩이 먼저 전지현에게 러브콜을 했다고 알고 있으며, 불법복제 CD 방지 차원에서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지갯빛 미래는 전지현에게조차 항상 열쇠를 건네주지 않는다. 은 당장에 전지현이 뛰어넘어야 할 큰 벽이다. 관객에게 주로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그녀가 호러영화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마도 장르를 바꿔갈 때마다, 세계시장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딛 때마다, 자신에게 고착된 이미지를 털어낼 때마다, 전지현은 어려운 시험에 빠져들 것이다. 때때로 자신감과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을 터. 이제 누구보다 전지현 자신의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나 밝은 어제보다 더 환한 미래의 여신이 끝내 가지 못할 길이 어디 있으랴.

광고 속의 전지현그녀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뜬 전지현,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 타고난 뽀얀 피부를 지키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정성들여 바르고 외출준비를 한다.(‘폰즈 더블화이트’) 외출 직전의 전지현은 신세대의 필수품인 멤버십카드를 지갑에 챙긴다. 커피전문점에서 패밀리레스토랑까지 빼놓지 않고 할인받기 위해서다.(‘LG텔레콤’) 전지현은 압구정동에서 남자친구 지진희와 만나 내일 친구들과의 모임에 입고 나갈 지진희의 옷을 사주다 싸움을 벌이게 된다. 돈이 없는 지진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게 창피하느냐’고 화를 내고 전지현은 ‘그럼 그 차림으로 입고 나올 거냐’며 맞받아친다. 남산계단에서 ‘가난하지만 이수일의 따뜻한 가슴이 사랑’이라는 지진희에게 ‘여자에겐 김중배의 다이아반지도 사랑’이라고 반박한 뒤 헤어진다.(‘2%부족할 때’) 지진희와 싸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전지현은 요즘 유행하는 복싱(‘지오다노’)과 검도(‘엘라스틴 샴푸’)로 땀을 뺀다. 취침 전 다시 나이트용 미백 화장품으로 피부를 손질한 뒤(‘나드리’) 잠자리에 든다. 주말로 예정된 다른 남자친구와의 그림 같은 제주도여행(‘LG카드’)을 미리 꿈꾸면서.”

이것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떠돌고 있는 ‘전지현의 하루’라는 글이다. 한때 ‘이영애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유포되던 유머글이 ‘전지현의 하루’로 바뀌어져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대중적 선호도가 냉정하게 어디로 기울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빅모델을 내세우는 광고는 기존 모델을 전지현으로 교체하면서 좀더 ‘젊은 전략’으로 나아가고, 새롭게 런칭하는 제품들은 전지현을 업고 이미지를 붐업시킨다. 부동의 CF스타와 전지현을 ‘투톱’으로 등장시키던 광고는 어느덧 전세가 역전되어 전지현의 독무대가 되어버린다. 그는 CF 속에서 뛰고 달리고 소리지르고 울먹인다. 때론 총을 쏘고, 때론 춤을 추며, 때론 강력한 어퍼컷을 날린다. 그렇게 그는 청순함이면 청순함, 섹시함이면 섹시함 등 보통 한 가지 이미지만으로 승부했던 기존의 CF스타들과는 달리 각 제품에 따라 청순함(‘프렌’)과 건강함(‘지오다노’), 우아함(‘엘라스틴’), 섹시함(‘삼성 마이젯’)을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정작 본인은 “CF는 연기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전지현은 본인이 가진 기존 이미지를 광고에 가장 소모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모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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