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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 <아타나주아>
권은주 2003-12-16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영도로의 귀환을 꿈꾸며 질주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 <아타나주아>는 픽션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신화를 재현하려 드는 대신 카메라 자체를 바로 그 신화적 시간으로 가져가 촬영할 것, 흡사 <마태복음>을 찍을 때의 파졸리니를 연상케 하는 이 무모한 기획이 결국 ‘기적’을 만든다.

완전히 벌거벗은 채 눈덮인 설원을 질주하는 아타나주아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순수로의 회귀. 어처구니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디지털영화 <아타나주아>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영도(零度)로의 귀환을 꿈꾸며 질주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다. 도대체 이제 와서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아타나주아>는 스펙터클한 디지털 이미지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사막과도 같은 영토에 단순소박하기 그지없는 신화적 세계를 구축하고 운명, 사랑, 음모, 그리고 복수라고 하는 닳고 닳은 테마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니 우리는 100년이 넘는 영화사가 쌓아올린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하고, 초기영화의 관객처럼 그저 저 이미지들이 주는 매력에 흠뻑 몸을 내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오래전, 한 에스키모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우리는 악령의 힘을 빌려 족장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가 부족 내에 끌어들인 악의 힘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이는 종국에 부족의 균열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편 사우리의 라이벌이었던 툴리막은 사우리가 족장이 된 뒤 부족 내에서 천대받으며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툴리막의 두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부족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 그리고 질투를 한몸에 받는 인물들이 된다. 바로 아마크주아(강한 자)와 아타나주아(빠른 자) 형제. 아타나주아는 족장의 아들이자 그들 형제를 시기하는 인물인 오키와의 결투에서 승리해 오키의 정혼녀 아투아를 차지하게 되고, 심지어 오키의 누이인 푸야마저도 아타나주아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그리고 오래전 부족에 흘러들어왔던 악의 힘은 서서히 다시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아타나주아>는 디지털로 촬영된 에스키모 버전의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세르게이 파라자노프, 1964) 혹은 <도마적>(티엔주앙주앙, 1986)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인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은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찍어냈다. 영화에 담긴 광활한 설원의 풍경이 아무런 특수효과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그 자체로 장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디지털카메라 고유의 질감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옛날 옛적’의 인물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대신 모든 풍경과 인물을 지나칠 만큼 ‘동시대적’이고 ‘현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니까 <아타나주아>는 로버트 플래어티의 <북극의 나누크>(1922)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플래어티의 영화가 사실상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픽션이라면 자카리아스 쿠눅의 <아타나주아>는 픽션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신화를 재현하려 드는 대신 카메라 자체를 바로 그 신화적 시간으로 가져가 촬영할 것, 흡사 <마태복음>(1964)을 찍을 때의 파졸리니를 연상케 하는 이 무모한 기획이 결국 ‘기적’을 만든다.

<아타나주아>가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고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받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에스키모에 의해 직접 제작된 최초의 에스키모어(語)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엑조티즘과 인류학적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감독은 흔히 서구 제국주의가 타자를 재현하는 기술로 간주되곤 하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이 작품이 내부자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재현적 민속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타나주아>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결코 인색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에스키모 고유의 생활방식과 관습, 그리고 규율과 의식(儀式)에 관한 풍성한 묘사는 누구에게나 흥미롭게 여겨질 법한 것들이다.

이 영화에서 매우 두드러진 몇 가지 것들, 즉 철저하게 기교를 배제한 촬영방식, 사실적인 것과 어색함 사이를 오가는 배우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연기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 연기,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플롯 등은 쉽사리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타나주아>의 흡인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불현듯 우리는 그 아무런 장식도 없는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주술들마저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놀라게 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마법에 홀리기라도 한 듯, 2001년 칸영화제는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에게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안겨주었다.

::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

감독이 누구라고?

“수천년 동안 살아남았던 우리 에스키모들만의 문화는 지난 50년 동안 완전히 변형되어버렸다.” 디지털로 만든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여러 평자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얻어낸 <아타나주아>의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의 말이다. 그의 부모는 에스키모 원주민들이었으며 에스키모 공동체에서 태어난(1958)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몸에 익히며 자랄 수 있었다. 그는 9살에 캐나다 정부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이때 교실에서는 원주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토요일마다 학교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입장료를 벌기 위해 작은 조각품을 만들어 내다 팔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조각품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포타팩(porta-pack) 비디오카메라와 26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VCR을 구입했다. 이후 그는 지역방송에서 일하면서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에스키모족 연장자들과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다. 결국 그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를 품게 되었고, 이는 1991년에 에스키모 출신으로 구성된 최초의 독립영화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누나부트: 우리의 땅>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용 시리즈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1940년대 에스키모들의 삶에 관한 반 시간짜리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대를 가로질러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이야기”이자 “(에스키모인들이) 자라나면서 들었던 베드타임 스토리”를 영화화한 <아타나주아>는 자카리아스 쿠눅이 어렵사리 재정지원을 따내 완성한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뿐 아니라 에든버러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숱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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