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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버스 작전과 JFK 암살의 맥없는 조우, <블라인드 호라이즌>
김용언 2004-04-21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의 문구는 ‘대통령이 암살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 사막투성이의 황량한 뉴멕시코시티다. 이곳에 대통령이 올 일이 없지 않은가.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프랭크라고 부르며 자신이 그의 약혼녀였다고 주장하는 미모의 여인 클로이, 극장과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묘한 시선을 던지는 두명의 낯선 남자, 암호 ‘롬버스’, 삼각형 모양의 암살 구도…. 프랭크는 불분명한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기 시작한다.

마돈나와의 작업으로 유명해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마이클 하우스만은 이미지 중심의 개인기를 펼치기보다는 를 작업한 각본가 F. 폴 벤즈를 기용하여 정연한 내러티브 중심의 정공법적 스릴러를 선택하는 야심을 부린 듯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라인드 호라이즌>은 스릴러로서 합격선을 결코 넘지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자동차 퍼레이드 도중에 암살당할 것이라는 내러티브는 명확하게 존 F. 케네디의 죽음에 기대고 있다. 또한 그 안이한 설정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CIA가 연루되어 있다는 음모설과 결탁하면서(영화 속에서는 FBI가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인간 밀수꾼들과 신문 기자와 목소리 인식 서비스와 FBI 요원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판명되기도 전에 슬그머니 맹목적인 애국심에 의존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핵심은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새롭게 깨닫는 경이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라는 충성의 맹세의 지루한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스릴러의 긴장감이 온데간데없이 증발되면서, 발 킬머니브 캠벨, 샘 셰퍼드와 페이 더너웨이에 이르는 호화 출연진들도 열의없이 대사만 중얼거리는 뻣뻣한 연기로 시종일관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도저히 2004년 영화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퇴행적 수준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니브 캠벨이 분한 팜므파탈 클로이는 뭔가 음모를 꾸미는 것 같지만 한마디 뚜렷한 변명의 기회없이 <쉬리>의 김윤진처럼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고, 에이미 스마트가 분한 간호사 리즈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기억상실증 환자와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도박을 감행하며 억지스런 해피엔딩을 연출해야 하는 어이없는 역할을 떠맡았다. 감독과 각본가는 영화를 만들기에 앞서 내러티브의 개연성과 캐릭터의 설득력에 대해 좀더 연구를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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