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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의 향연
2001-06-14

코믹CF 두 편, `700-5782`와 `히야`

제작연도 2001 광고주 야호커뮤니케이션 제품명 700-5782 대행사 팝콘커뮤니케이션 제작사

피디하우스 (감독 백범기)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의 ‘구상유취’(口尙乳臭)란 말이 결코 좋은 뉘앙스를 풍기진 않는다. 그런데 ‘구상유취가 무슨 문제냐?’라고 고개를

빳빳이 드는 광고가 있다. 되도록 유치찬란하고 가능하면 엽기발랄하게 승부를 걸겠다고 작정한 광고들이다. 시쳇말로 ‘오버(over)광고’라 불리는

노골적인 코믹CF가 광고계에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해당 광고엔 섭섭한 소리겠지만 이들에게 산고의 고통을 거친 농축된 아이디어랄지, 예상의

허를 찌르는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여과장치를 통과한 정제된 알갱이보다는 있는 것을 과장해 오버액션하는 호들갑스러움이 더 두드러진다.

비록 경박하다는 눈총을 살지라도 소비자의 언어와 문화에 부담없이 안착하겠다는 목표만이 엿보인다.

휴대폰 벨소리 서비스업체인 700-5782 광고와 롯데칠성의 주스브랜드 히야 광고가 ‘오버광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700-5782 광고의

주인공은 코믹CF의 모델로 최적의 발랄함과 연기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차태현이다. 그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배경에서 “야∼호”라는 환호성을 지르며

스쿠터를 몰고 있다. 그의 목에 걸린 휴대폰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의 입에선 개그맨 심형래가 부른 캐롤송 <징글벨>을

개사한 듯한 ‘벨소리, 벨소리, 벨소리 울려, 울릴까? 말까?’란 가사의 노래가 흥겹게 울려퍼진다. 이때 카메라는 차태현의 겨드랑이 사이로

누군가의 손을 비추며 스쿠터의 뒷자리에 누군가 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차태현은 뒤에 탄 사람에게 ‘내 벨소리는

최신곡이지’라며 자랑한다. 갑자기 앵글 안으로 고개를 내민 주인공은 개구쟁이 같은 개성으로 똘똘 뭉친 한공주란 이름의 못난이 모델. 그는 ‘오빠,

벨소리 짱이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차태현은 ‘오∼칠팔이’를 질펀하게 외친 뒤 ‘신곡으로 고쳐 빨리’라고 ‘5782’라는 번호의 연유를 전한다.

이것으로 끝내는가 싶더니 막판에 양념을 추가했다. 차태현이 뒤를 돌아보며 ‘너도 고쳐, 빨리’라고 말한다. 뒷좌석의 한공주는 얼굴을 고치라는

소리인가 싶어 흠칫 놀라고, 차태현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쳐의 목적어가 ‘벨소리’임을 부연설명한다.

이 CF의 핵심 타깃은 휴대폰 벨소리 변경에 관심이 높은 10대 초중반의 중학생.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의 사용을 유도하는 데 필수 정보인 번호

알리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차태현의 목소리를 타고 5782라는 번호만은 뚜렷이 남기고 있으니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이 광고의 관심 밖 대상인 중장년층은 만화적인 발상에 뿌리를 둔 참을 수 없는 발랄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얼굴 생김새를

갖고 장난을 치다니 어이없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짱이야’ 같은 10대의 언어, 무례와 재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들만의

대화방식 등을 액면 그대로 흡수한 이 광고는 뻔하지만 가식없는 전략으로 목표 소비자에게 친밀도를 발휘하고 있다.

제작연도 2001 광고주 롯데칠성 제품명 히야 대행사 대홍기획 제작사

동진프로덕션 (감독 조봉찬)

이 광고에 비해 히야 CF는 나름의 아이디어를 소화하고 있다. 이 광고의 특징은 예뻐지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특히 미용성형이 암묵적 비밀의 경계를 넘어 경제적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로운 행위로 자리잡고 있는 달라진 풍속도를 보여준다.

배경은 성형외과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개그우먼 정선희가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는 거울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다가 ‘난 한고은처럼 고쳐야겠다’고

다짐한다. 순간 정선희의 시야에 선망의 미모를 소유한 한고은이 출현한다. 이 대목에서도 유치한 발상이 들어 있다. 나타날 때 ‘히야 히야’라는

바람소리를 내는 것이다. 은연중에 브랜드를 기억에 남기겠다는 애교섞인 장치인 셈. 정선희는 한고은을 향해 ‘어머, 고은아, 여기 웬일이야’라고

과장스럽게 외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한고은이 입을 열자 난데없이 아줌마 전원주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나 원주야, 전원주. 예뻐지고 싶니? 과일이랑

친해봐, 롯데 히야’라고 대답한다.

결국 정선희가 한고은으로 오인한 사람은 한고은의 탈을 쓴 전원주였다. 히야 주스를 마시면서 정선희는 마지막으로 야심에 찬 한마디를 던진다.

‘오빠들, 기다려’라고.

이 광고를 기억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전원주의 목소리를 가진 미녀 한고은이라니. 얼마나 황당하고 충격적인 설정인가? 저칼로리에 상쾌한 뒷맛을

자랑하는, 그래서 여성의 미모관리에 도움을 준다는 광고의 메시지도 쉽게 다가온다.이 CF는 얼굴 예쁜 게 전부가 아니고 정작 중요한 매력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있다라는 가치가 이제 쉰내 나는 얘기에 지나지 않다고 조롱하는 것 같다. 맛에서 건강으로, 이제는 아름다움으로 주스 음용의

목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자극한다.

주책맞을 만큼 ‘오버’의 연속인 이들 광고의 표현방식에 이렇게 꼭 억척스럽게 소비자의 시선을 잡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광고계의 크리에이티브가

뒷걸음치고 있다고 못마땅해 하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도의 의무 이전에 반영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마련인 광고가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작정한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 차원높다거나 수준있다라는 품격의 가치는 ‘멋대로 내 갈 길을 가겠다’라는

자유분방함 앞에서는 제대로 맥을 못 추는 것 같다.조재원|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