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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재하며 영속하는 외로움의 연대기, <토니 타키타니>
김혜리 2005-09-20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랑이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자, 영화 <고백>(L’accompagnatrice)의 주인공 소피는 무심히 대꾸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난 늘 혼자였어.” 만약 토니 타키타니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이치카와 준 감독의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원작에 쓴 첫 문장을 첫 내레이션으로 삼는다. “토니 타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 토니 타키타니였다.” 일본식 성에 미국식 이름을 덧붙인 그 별난 이름은 주인에게 고립의 운명을 점지한다.

영화의 프롤로그는 토니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한 주석이자 아버지 쇼자부로(잇세 오가타) 반생의 요약이다. 재즈 트롬본 주자 쇼자부로는 상하이에서 춤의 스텝을 밟듯 청춘을 보낸다. 포로수용소에서조차 사형을 면하고 귀국한 그는 전쟁이 그를 고아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결혼한다. 그러나 허약한 여인은 아들을 낳고 사흘 뒤 숨진다. 정교한 모래성을 만들며 놀던 외톨이 꼬마 토니는 기계 정밀 묘사에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한다. 예술보다 정치성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다. 근면한 사회구성원이지만 토니(잇세 오가타)는 은둔자다. 신장 165, 사이즈 2의 여자 에이코(미야자와 리에)를 만날 때까지는. “새가 바람을 두르듯” 날렵한 그녀의 옷맵시는 완벽한 이미지의 신봉자 토니를 매혹한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서야 자신의 고독을 인식한다. 그녀가 거절하면 그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토니는 에이코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둘은 결혼한다. 아침이면 그녀가 사라졌을까 겁내던 토니는 점차 안정을 찾는다. 목에 걸리는 유일한 가시는, 값비싼 옷가지를 산처럼 사들이는 에이코의 습벽. 그러나 쇼핑을 자제하면 어떠냐는 토니의 조심스런 제안은 어이없는 비극을 부른다.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다시 하나. 그는 다시 고독해져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더욱 철저히.

단편이지만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정수를 품고 있다. 필멸하는 존재의 운명, 전 우주를 뒤덮은 고독, 그리고 항상 적정 습도 및 온도를 유지하는 고급 리조트 호텔의 공기와도 같은 문장. 이치카와 준 감독은 원작의 주제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문체를 영화적 문채(文彩)로 번역하기 위해 정묘한 형식을 고안했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고독의 시간은, 공간의 왼쪽 벽에서 오른쪽 벽으로, 나아가 한신에서 다음 신으로 느린 수평 트래킹을 이어가는 카메라 움직임과 통주저음처럼 복류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음악에 실려 흘러간다. 하나의 일화는 마치 앞 상황이 발생한 공간의 옆방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런 스타일은 관객에게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배 위에서 기슭을 바라보는 감각, 밀봉된 영화 속 세계를 둘러싸고 객석이 공전하는 느낌을 안겨준다. 또, 원근감과 양감을 억제한 촬영은 사물과 인간의 상을 모두 스크린 저편의 ‘망막’에 맺힌 실루엣처럼 만들어 적막감을 부추긴다. 처마의 낙숫물처럼 똑똑 네댓개의 음정을 왕복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시계 초침을 대신해 그 적막한 시간을 헤아린다. 고립이 깊어질 때 영과 육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법이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사물의 상태는 곧 사물의 본질이며, 이치카와 준은 미니멀한 동시에 나사 하나라도 건드리면 무너질 듯한 형식에 그것을 고이 담아낸다. <토니 타키타니>의 또 다른 장치는 전지적 내레이션의 기이한 쓰임새다. 미지의 화자가 어떤 내레이션을 하다가 멈추면 극중 인물이 문장을 마무리 짓는다. 예컨대 내레이터가 “아이디어는”이라고 서두를 떼면 토니가 “나쁘지 않다”라고 마무리 짓는 식이다. 인칭의 규칙도 흐려진다. 극중 인물은 이따금 옆에 있는 사람을 ‘그’나 ‘그녀’라고 지칭하는 방백으로 내레이터 역을 한다. 그렇게 화면 내부와 외부 사이의 문턱은 무뎌지고 영화는 ‘클라인씨의 병’처럼 안팎이 구별되지 않으면서도 닫힌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타키타니 가문의 고독은 대물림된다. 상하이 감옥 독방에 모로 누웠던 아버지와 똑같은 자세로 토니는 아내의 텅 빈 드레스룸에 웅크린다. 토니는 아내의 옷을 입힐 같은 사이즈의 여자 히사코를 비서로 고용하지만, 그녀는 망자의 옷가지가 그러하듯 그림자에 불과하다. 히사코에게 “모든 일을 잊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청하는 토니의 말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토니 타키타니>의 네 인물은 잇세 오가타와 미야자와 리에가 1인2역으로 연기했다. 서구 평론가들이라면 ‘젠(禪) 스타일의 <현기증>’이라고 부를 법도 하다. 하지만 이치카와 준 감독은 세트까지 ‘1인다역’으로 썼다. 오픈 세트를 장식만 바꿔 재활용한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도그빌>을 유사한 예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모든 요소는 카메라와 음악이 자아내는 무궁동(無窮動)의 감각과 더불어, 편재하며 영속하는 외로움의 연대기를 완성한다. <토니 타키타니>는 사력을 다해 원작을 넘어서지 않는다.

토니 타키타니에게 사랑은 사막의 우기(雨期)처럼 짧고, 그 기억이 소실되는 순서마저 부조리하다. <토니 타키타니>는 정확히 더한 만큼 빼지만 남은 것이 처음보다 작은 기묘한 이야기다. 그 오차는 토니의 일부가 사랑과 함께 죽어 땅에 묻혔기 때문에 생긴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녀로 인하여 처음으로 존재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일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던진 물음을 이치카와 준은 조용히 복창한다. 한 인간의 소멸은 무엇을 가져가버리는가. 남은 자들은 어떻게 그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가. 요컨대 <토니 타키타니>는 순장(殉葬)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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