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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을 휘젓고 다닌 `유별난` 게스트들
2001-07-27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누가 이들을 막을쏘냐. 역시 ‘판타스틱’영화제다운 ‘판타스틱’ 게스트들. 턱시도의 가식을 벗고 청바지와 반바지 혹은 스트리킹으로 무장한 이들은 부천의 열광적인 관객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망아지들 같았다.

“누드, 니콜 키드먼과 싸우는 무기”

<네이키드 어게인> 마르텐, 토르켈 너트슨 형제 감독

“팬티 치우지 마세요, 그래야 다 벗었는지 알 거 아니에요?” 스웨덴에서 날아온 유쾌한 형제. <네이키드 어게인>의 형제감독 토르켈과 마르텐 너트슨은 “팬티는 입어도 된다”는 사진기자의 배려를 묵살하고 마지막 한장까지 과감히 벗어던졌다. 이미 자국인 스웨덴 개봉시 TV 모닝쇼에서, 또 올해 칸영화제에서 “니콜 키드먼이나 <반지전쟁> 같은 대형영화와 싸우는 유일한 무기”로 누드를 선택한 ‘전과 2범’의 형제는, 그리 유혹적인 몸매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홍보하기에는 더없이 휼륭한(?) 몸을 부천 관객 앞에 벗어보이면서 새로운 ‘별’을 달았다. <네이키드 어게인>은 결혼식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발가벗은 채 일어나는 상황을 70번이나 반복하는 한 남자를 통해 “결혼을 앞둔 남자들의 두려움과 결혼에 앞서 얼마나 성숙해야 하나”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코미디. 가끔은 “그저 눈길을 끌기 위해 벗은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며 속상해하던 토르켈과 마르텐은 “다음 프로젝트는 자살하려고 지붕에서 떨어진 여자를 우연히 받아내면서 사랑에 빠지는 코미디”라며 “그때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프로모션하겠다”는 말로 자신들의 기행이 철저히 ‘영화의 내용과 연결점이 있음’을 주장했다.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 주연 다니엘 코맥

“우유에서 헤엄치기도 피곤해”

“다음주에는 또 무슨 변고를 당하려나 주말마다 떨었다.”

촬영 직전에야 대사를 던져주는 해리 싱클레어 감독의 연출방식에 공감하면서도 꽤나 고생스러웠던 눈치인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의 여주인공 다니엘 코맥. 우유 수영 정도야 피부미용에 이롭지 않았냐고 되묻자 “그게 실은 물에 탄 분유라 며칠이나 악취에 시달렸다”고 이른다. <뉴질랜드…>로 벌써 출연작이 세 번째 부천에 초청된 코맥은 명예 페스티벌 레이디 후보 1순위. 오지 않은 감독 대신 영화 소개에도 열심이었지만, 평생 보아왔어도 늘 새 매혹을 발하는 자연, 어떤 재난에도 덤덤한 터프한 사람들의 땅 뉴질랜드에 대한 애정표현도 잊지 않는다. 코맥이 들려준 뒷얘기 하나.‘잭슨즈’라는 영화 속 괴짜인물들은 피터 잭슨이 자신의 영화에서 죽은 사람 이름으로 친구인 싱클레어 감독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에 대한 귀여운 복수란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

“한국은 술 권하는 사회”

부천영화제 6일째, 복사골 문화센터 2층의 카페에서 만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은 커다란 풍채만큼이나 호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매우 들떠 있다”고 말한 뒤 인터뷰 전날 저녁식사가 아주 맛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리를 함께 한 페스티벌 레이디가 아주 아름다웠다는 말도 함께. 최근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개최된 임권택 감독 회고전에도 다녀왔다는 그는 여성상이 굉장히 강인한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깃발 없는 기수>가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만다라> 같은 영화를 보니 술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한국사람들이 술을 그렇게 자주 마시나?”라는 질문엔 잠시 웃음이 터지기도. 그는 신작의 믹싱을 막 끝낸 상태인데, 내년쯤 이 신작을 들고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톡시 김진호

감쪽같이 속았지, 으하하하하

악의적인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자원활동가 김진호(26)씨는 본의 아니게 <라이어 라이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영화제 첫날 도착한 로이드 카우프만과 한몸처럼 붙어다니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묻는 말에 척척 대답하고, 걸음걸이 역시 영화 속의 톡시를 쏙 빼다박은 그를 의심할 자는 없었으니까. 비록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하더라도 배우는 배우, 뒤늦게나마 그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에 의해 드러난 톡시, 아니 톡시의 가면을 빌린 자의 정체는, 그러나 서강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며 부천영화제 초청팀 자원활동가로 활약중인 김진호씨였다. 순간 허탈해진 기자들.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말을 빌리자면 “벗으나 안 벗으나 그게 그 얼굴”인 진호씨는 “톡시 역을 맡아줄 한국의 봉사자를 구한다”는 카우프만의 메일요청에 응답하면서 9박10일간 ‘유사 톡시’가 된 것이라고. 영화제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된다는 말에 입이 근지러워 혼났단다.

심사위원 마리오 도민스키 판타스포르투영화제 집행위원장

“우리 서로 사랑해요!”

그가 가는 곳마다 말과 제스처의 폭포수가 쏟아지고 공감어린 폭소가 터졌다. 풍채좋고 입담좋은, 포르투갈의 판타스틱영화제 판타스포르투의 살림꾼 마리오 도민스키. 히치콕과 누벨바그의 엄숙한 추종자였던 그는 이웃 나라 스페인의 판타스틱영화제 시체스에 구경갔다가 그만 영화의 낯선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물량으로 검열 당국을 제압하는 판타지영화제의 해방구를 건설해 트로마 영화,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의 영화를 소개했다. 민간영화제 판타스포르투를 이끄는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일은 영화 판권을 직접 구입하고 배급해 ‘판타스포르투표 영화’를 브랜드화하는 작업. 올해 시체스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된 15년 지기 친구 앙헬 살라와 나란히 판타스틱영화제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 앉은 도민스키는, 거대 영화제들과 딴판으로 신작 프리미어를 경쟁하기보다 흥미로운 영화를 되도록 많은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협력하는 판타스틱영화제들의 우애를 과시했다.

<악령의 군단> 올라프 이텐바흐 감독

“나의 전직은 치과 기공사”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빼닮은 골격에 오컬트, 코미디, 스플래터, 액션을 버무려 넣은 독일영화 <악령의 군단>의 덩치 큰 감독 올라프 이텐바흐의 전직은 치과 기공사. 13살 때부터 특수분장에 재미를 붙였다는 그가 일한 치과의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위험(?) 앞에 입을 벌렸는지 알고 있었을까? 피터 잭슨, 클라이브 바커의 신실한 신도이면서도 <브레이브 하트>가 좋다는 그에게 “아, 그 잔인한 육박전장면?” 하고 물었더니 “아니, 그 안타까운 러브스토리!” 하면서 뜻밖의 여린 감수성을 내보인다. 이처럼 ‘예민한’ 그를 놀라게 한 것은 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천 개막식의 붉은 카펫. “앗! 내게 뭘 바라는 거지?”라며 잠시 고민했다고. 두 번째 영화가 검열과 마찰을 빚으며 독일 호러팬의 맹주가 되기도 했었다는 그의 새 영화 2편은 중세괴담과 마피아스토리가 합쳐진 고어무비, 그리고 이란 로케로 찍을 좀비호러코미디다. 아마도 그의 부천 방문은 올해로 그치기 힘들듯.

<시체유기 자장가> 클라우스 크래머 감독, 주연 보리스 아리노비치

‘유럽 촌놈’들이 사는 방법

“판타스틱한 포즈를 원한다고요? 아- 이거?” <시체유기 자장가>의 감독 클라우스 크래머와 주인공 보리스 아리노비치는 사진기자의 요구에 온갖 ‘망가진’ 포즈로 익살스럽게 화답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객석에서 스크린 대신 관객의 표정을 지켜봐야 했던 초조함이 수시로 터져나오는 폭소에 누그러졌던 탓일 게다. 아니면 “유럽 대륙 밖으로 처음 나와본” 이들의 들뜬 마음이 ‘오버’를 불러일으켰든가. 감독의 베를린 필름·TV아카데미 졸업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는 자신의 방안에서 여자친구의 시체를 발견한 한 남자와 두 친구의 엽기적인 행각을 블랙코미디식 유머로 그린 작품. 적은 제작비로 힘들게 만들더라도 자국 관객의 싸늘한 반응을 견뎌야 하는 것이 ‘독일에서 영화만들기’라며 크래머 감독은 한국영화의 국가지원제도에 왕성한 관심을 보였다.

▶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결산

▶ 영화배우 크라잉 너트의 부천 기행

▶ 부천을 휘젓고 다닌 `유별난` 게스트들

▶ 트로마 프로덕션과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

▶ PiFan 대담1 - 한국의 단편영화감독 민동현 vs 트로마 프로덕션 대표 로이드 카우프먼

▶ PiFan 대담2 - 무협영화의 신, 호금전의 ‘빅팬’ 피터 리스트 vs 스티븐 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