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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불쾌한 정의
김영하(소설가) 2006-01-13

작가가 된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사실, 왜 경영학과를 나왔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효도하려고요.” 부모님들은 이상하게 경영학과 같은 데를 좋아하신다. 좀 집요한 사람은 “대학원까지 졸업하셨잖아요?”라고 캐묻는다. 그쯤 되면 답이 길어진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있었다. 6개월만 복무하면 그만인,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제도가 있었나 싶은데, 하여간 있었다. 졸업할 무렵이 되자 나는 잔머리를 굴려 가장 족보를 구하기 쉬운 우리 과의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는데 하필 내가 입학하던 해 석사장교 제도가 폐지돼 버렸다. 한 마디로 신기루 같은 이상한 병역제도였다. 어찌어찌 졸업을 한 후에 입대를 했는데 경기도 화성군에 본부가 있는 모 향토사단 헌병대 수사과에 배치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병대 수사과가 나 같은 예비 작가에게는 훨씬 잘 맞았다.

나는 거기에서 하루 종일 수사 서류들을 타이핑하고 탈영한 병사들에게 귀대를 호소하는 편지를 쓰고 군검찰과 법원을 오가고 뭐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탈영병, 폭행범, 강간범 심지어 살인범까지 만났다. 헌병대라는 곳은 피의자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곳이다. 수사관들이 때린다거나 무슨 가혹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병사들은, 설령 죄를 짓지 않은 병사들조차도, 일단 헌병대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잔뜩 주눅이 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수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사건이 없는 날이면 수사관들의 수사지침서를 읽었고 증거를 다루는 법, 조서 꾸미는 방식, 수사 서류의 종류, 사건 처리의 절차를 익혔다. 물론 큰 사건이 터지면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가끔은 영창에 내려가 미결수들과 잡담도 하고 놀았다. 영창에서 미결수들은 보통 2열 횡대로 앉아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거기에도 나름의 서열이 있어 일찍 들어온 순서대로 뒷줄 구석에, 새로 들어온 미결수들이 앞쪽에 앉았다. 시커먼 잡범들 사이에 가끔 평생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어린 병사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군법상의 ‘항명’죄를 범한 미결수들이었는데 매달 두세 명씩 꾸준히 들어왔다. 이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이들은 총기 수여식에서 총을 잡기를 거부하고 바로 헌병대로 직행했다. 매달 겪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마치 통조림 공장처럼 착착 진행되었다. 총기 수여식장에서 “여호와의 중인 손들어”라고 말하면 그들은 손을 들었다. “집총 거부하지?” “예.” “따라와.” 우리는 그들을 인계받아 조서를 꾸몄는데 내용은 언제나 똑같았다. “너는 이사야서 몇 장 몇 절의 이러이러한 구절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지?”라고 물으면 그들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했다. 조서 작성이 끝나면 그들은 영창에 입감되어 맨 앞줄에 앉았다. 그런데 영창에 있는 잡범들은 이상하게 이 항명자들을 싫어했다. 폭력이나 강간, 탈영 따위로 들어온 주제에 그들은 근무자 몰래 여호와의 증인들을 쥐어박고 모욕하곤 했다.

“야!” 한번은 내가 그러고 있는 녀석 하나를 불렀다.

“예, 47번 아무개 강간입니다.” 사단 영창에는 언제나 자기 이름 뒤에 범한 죄를 붙여서 복창하는 특이한 관등성명 문화가 있었다.

“앞에 항명은 왜 때리나?”

“이 자식들, 적이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도망갈 놈들입니다.”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그를 불렀다. “어이!”

“예, 47번 아무개 강간입니다.”

“너나 잘해, 인마.”

“예, 47번 아무개 강간,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버티면 항명자들은 재판에서 통상 3년형을 선고받고 수원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얼마 전 인권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라는 권고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을 강간이나 폭행, 절도 같은 잡범들과 섞어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의에 대한 우리의 감각, 그 미묘하고 고급한 정신적 쾌감을 훼손한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모두를 가혹하고 무도한 자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그들을 감옥에 넣어 처벌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정의와 그들의 정의를 만족시킬 그 어떤 접점이 어딘가엔 반드시 존재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