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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해리슨 포드의 영화, <파이어월>
김혜리 2006-02-14

뒤집어보면 해리슨 포드는 불길한 아버지다. 그가 대통령이건 CIA 요원이건, 영화 속 포드의 가족은 위협당하기 일쑤다. <파이어월>에서 포드는 시애틀의 은행 보안 전문가 잭 스탠필드로 분한다. 방화벽을 해킹해 은행 VIP계좌로부터 1억달러를 훔치려는 악당 빌 콕스(폴 베타니) 일당은 그의 아내와 아들딸을 인질로 잡고 잭의 봉사를 요구한다. 영화는 바야흐로 얼마나 소중한 가정이 불한당들에 의해 망가지려 하고 있는지 초반에 강조한다. 부부는 “당신은 내게 과분해”라고 속삭이고, 컴퓨터에는 아들딸의 사랑스러운 사진이 스크린 세이버로 흐른다. 아내 베스(버지니아 매드슨)의 직업은 건축가. 스탠필드가(家)는 엄마가 짓고 아빠가 지키는 집인 셈이다. 영화는 잭이 얼마나 자상하고 유능하며 정의로운 시민인지 소개하는 데에, 한두신씩을 소모하고 스릴러의 본론에 진입한다. 콕스 패거리의 야심찬 범죄는 순탄치 않다. 잭의 어린 아들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까지 치밀하게 조사한 그들이 (어이없게도) 은행이 합병 중이라는 소식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문가니까”라는 콕스의 윽박지름에 떠밀린 잭은 고심 끝에 딸의 아이포드를 활용한 편법을 고안한다.

<파이어월>은 정체성 도용의 위험을 안고 사는 현대 관객의 꺼림칙함에 착안한 하이테크 스릴러다. 과연 영화는 고비마다 이메일, 무선 인터넷, 카메라 폰의 힘을 빌려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모니터를 흐르는 수열과 두뇌 게임은 <파이어월>이 원하는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잭은 천신만고 끝에 1억달러를 넘겨주지만 빌은 모략의 덫을 치고 가족을 납치한다. 분노한 잭 라이언/인디아나 존스가 뛰쳐나올 차례다. 63살의 해리슨 포드가 폴 베타니와 벌이는 격투는 볼 만하지만, 과거 포드의 액션을 뛰어넘거나 비트는 재미는 없다. 포드는 연륜에 걸맞은 한층 근사한 ‘싸움의 기술’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는 배우다.

<윔블던>과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의 폴 베타니부터 <사이드웨이>의 버지니아 매드슨, <재키 브라운>의 로버트 포스터, <터미네이터2>의 로버트 패트릭까지, <파이어월>은 매력적인 배우를 다수 캐스팅했지만 모두가 엷은 그림자처럼 보인다. 누구도 매력의 요체를 발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은 <리처드 3세>와 <윔블던>을 연출한 이력이 있는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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