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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환 vs 아오이 유우 [3]
정리 이영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2-23

류덕환/ 정말 맘에 안 드는데 감독님이 됐다고 하실 때는 정말 스트레스 쌓인다. 다른 선배들 같으면 한번 더 테이크를 갔으면 좋겠다, 뭐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어리고 경험이 없다보니 그렇게는 못하겠고. 촬영 때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앨리스처럼 비 맞고 춤추나.

아오이 유우/ 하하. 아니다. 스트레스가 왜 없겠나. 그렇지만 일단 난 그냥 안고 간다. 그게 내 동력인 것 같다.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여기서 굽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것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런 것 때문에 남들 눈에 약해 보이는 것도 싫다.

류덕환/ 악바리 같은 면이 있다.

아오이 유우/ 누구나 그렇지 않나. 촬영 때 배우가 힘들면 스탭도 힘들다. 배우는 그냥 있어도 스탭들에겐 신경 쓰이는 존재다. 힘들어하는 티를 내면 스탭들에게는 두배의 부담이 돌아가니까. 그런 부담주기 싫다.

류덕환/ <훌라 걸>의 기미코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선택했나. 내 경우에는 오동구라는 인물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함께 지니고 있는 점이 좋았다. 대개 남자 역할, 여자 역할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동구는 그런 식의 분류를 넘어서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오디션 때 “이 역할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감독님들 앞에서 큰소리치기까지 했다.

아오이 유우/ 역할만 놓고서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는 식으로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대본을 읽을 때도 사적인 감정은 모두 버리려고 노력한다. 큰 걸 놓칠 것 같아서다.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이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출연을 결정했다.

류덕환/ 어제 이상일 감독님이 아오이상은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더라. <천하장사 마돈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갈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감독님들과 시나리오 넘겨가면서 손동작 하나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재밌긴 했지만 부담이 적지 않다.

아오이 유우/ 나도 아직 내가 영화 속에서 기미코인지 잘 판단이 안 선다. 어설픈 소녀 기미코가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고, 실제 나 또한 이번 영화를 통해서 좀 컸으면 좋겠다 싶어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3년 전부터는 오디션에 가는 일이 없어졌다. 오디션없이 출연 제의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 따로 오디션을 보지는 않지만 이제부터 언제나 모든 상황이 오디션이겠구나, 모두 나라는 사람을 항상 지켜보고 있구나, 그러다보니 매번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영화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매번 임한다. 좋은 점도 있다. 집중력이 전보다는 훨씬 강해진 것 같다.

류덕환/ 설마 마지막이겠나. (웃음) 선택한 역할이 살을 찌워야 하는 것이라도 선뜻 응할 건가.

아오이 유우/ 할거다. 너무 빨리 재촉하는 건 좀 싫고. 충분한 기간을 준다면.

류덕환/ 이상일 감독과 작업하기 전에 이와이 슌지 감독과 두 작품을 했다. 아직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가 아니라 보지는 못했겠지만, 나도 <내 나이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박광현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다. 두 번째 할 때는 아무래도 편하더라. 감독님도 내 호흡이나 상황을 많이 배려해주시고.

아오이 유우/ <하나와 앨리스> 때는 친정집에 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 연기를 처음 본 감독님이고, 그러다보니 쑥스럽고 또 부끄럽고. 심정이 좀 복잡했다.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런 감정을 갖고 카메라 앞에 섰기 때문일까.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류덕환/ <천하장사 마돈나>는 감독이 이해영, 이해준 두분이서 공동연출한다. 촬영에 들어가서 두 감독의 의견이 다르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 걱정이다. 언젠가 감독님들에게 전반부랑 후반부 이렇게 장면을 나눠서 연출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자신들도 주인공을 한명 더 캐스팅하겠다고 하더라.

아오이 유우/ 이상일 감독님과의 관계는 서로에게 경의(敬意)를 갖고 있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 의사소통이 잘된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감독과 배우 사이의 긴박감 같은 것도 존재한다. 그냥 편한 관계보다는 그런 복합적인 관계가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류덕환/ <훌라 걸>에서는 대사 중에 후쿠시마 사투리가 많다고 들었다. <웰컴 투 동막골> 연극하면서 나도 강원도 사투리를 쓴 적이 있다. 일본을 잘 아는 한국 영화인이 후쿠시마 사투리와 강원도 사투리가 비슷하다고 하더라.

아오이 유우/ 오오. 정말? 한번 해봐라. (류덕환의 강원도 사투리를 유심히 듣더니) 억양이 비슷한 것 같다(<훌라 걸> 중 기미코의 대사 하나를 읊는다).

류덕환/ 아마도 추운 지역이라 말을 짧게 끊어내는 게 비슷한 것 같다.

아오이 유우/ 그쪽 사투리도 무뚝뚝하지만 정감이 묻어난다. <훌라 걸>에서는 후쿠시마 사투리를 많이 쓰지는 않는다. 너무 많이 쓰면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까.

류덕환/ 예전에는 일본 하면 게임, 애니메이션밖에 몰랐다. 지금까지도 미야자키 하야오를 정말 좋아하고 있고. 그런데 대학입시 준비를 하며 여러 공연 실황을 참조하면서 공부해야 했는데, 일본 마임 공연을 보고 정말 놀라운 세계라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아오이 유우/ 한국에 대한 내 인상도 마찬가지다. 부산영화제만 하더라도 열기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본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한국은 모든 국민이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화 한편 보려면 얼마나 드나.

류덕환/ 7천, 8천원 정도.

아오이 유우/ 싼 편이네. 일본은 1800엔이다. 너무 비싸다.

류덕환/ 올해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대학에 먼저 들어갔으니 조언을 좀 부탁한다.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많은 않을 텐데.

아오이 유우/ 그건 내게 고민거리가 아니다. 전적으로 일이 우선이다. 물론 대학 가기 전엔 꿈도 많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맘껏 배울 수 있겠구나. 그런데 아니었다. 대학교에도 필수과목이란 게 있지 않나. 내가 원치 않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대학교에 가서 별로 배운 게 없다. 반면 현장에서는 실컷 연기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이 훨씬 유익했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웃음)

류덕환/ 아리가토. 나도 대학 가서 그러겠다.(웃음)

아오이 유우/ 아까 보니까 일본어를 좀 하는 것 같다.

류덕환/ 고등학교 때 잠깐 공부했다. 일본에서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 스탭들에게 배운 몇 마디도 있고. 사실 인사말 정도밖에 못한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나. 난 영화도 좋지만 꼽으라면 무대가 더 좋다. 나중에도 그냥 옆집 아저씨나 친구 같은 배우로 남고 싶다. 아오이상도 무대 경험이 있는데. 스크린과 무대, 어떤 게 더 좋나.

아오이 유우/ 딱히 뭐라고 말하긴 그런데. 내가 어떤 점을 더 염두에 두냐면 영화는 어떻게 해야 더 리얼하게 보여질까를 생각한다. 반면 무대에선 어떻게 해야 거짓으로 보이지 않을까 애쓰고 고민한다. 무대와 스크린의 차이는 접근법이 좀 다른 것 같다. 그게 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고.

류덕환/ 기회가 되면 같이 연기해보고 싶다. 다른 문화권 배우들은 같은 감정이라고 해도 끌어내는 방법은 다른 것 같다. 한때 외국에 나가서 연기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아오이 유우/ 시나리오만 좋다면 언제든 좋다. <훌라 걸>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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