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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청
2001-08-21

■ STORY 경극 배우 ‘브러더 청’을 좋아하는 할머니 덕택에 ‘리틀 청’이라는 애칭을 갖게 된 아홉살짜리 꼬마(유유에밍)는 자신이 일찌감치 세상 이치에 눈을 떴다고 자부한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니느라 홍콩 서민들의 거리인 몽콕지역에서 다양한 삶을 엿보게 된 덕분이다. 또래의 소녀 팡(막웨이판)이 중국에서 건너온 불법체류자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리틀 청은, 일자리를 갖고 싶어하는 팡에게 배달일을 동업하자고 제안한다. 이로써 가슴아픈 이별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우정이 시작된다.

■ Review

TV를 통해 본 구룡반도의 화려한 대도시 이미지, 춤추는 듯 우아하게 총을 난사하는 남성영화, 그도 아니면 왕가위의 탐미적인 허무주의를 통해서 홍콩이라는 도시국가를 상상하던 우리에게, 프루트 챈 감독은 어느날 불쑥 전혀 다른 홍콩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스타일로 들려주기 시작했다. ‘홍콩 반환 3부작’이라고 이름 붙은 <메이드 인 홍콩>(Made in Hongkong, 1997),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The Longest Summer, 1998), <리틀 청>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령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되는 1997년을 배경으로 직설적인 정치적 코멘트를 숨긴 채 홍콩 서민의 삶을 정밀하게 훑어가는 프루트 챈 감독의 작업은 이른바 ‘리얼리즘영화’의 이상에 가깝다. 사회로부터 한번도 우호적인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에 정열적인 사람들의 안쓰러운 희망과 좌절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모자이크해나간다.

연작의 첫 번째 영화에서는 가족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채업자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스무살 청년의 시선이 절망적으로 홍콩의 거리를 헤집고다녔다. 저능아 친구와 시한부 인생의 소녀를 지켜주는 것에 온 삶의 희망을 걸고 있는 주인공 차우의 이야기는 그해 <해피 투게더>의 떠들썩한 명성을 따돌리면서 홍콩 금마장상을 수상하고 로카르노영화제 3개 부문을 석권하는 등, 국제영화계에 강단있는 감독의 출현을 알렸다. 두 번째 연작에서도 감독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초저예산 전략과 주류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받는 주인공이라는 내용과 작업 스타일을 거듭함으로써 홍콩을 대표하는 독립영화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리틀 청>은 독립영화들이 흔히 드러내는 도덕적 판단이나 사회의식의 과잉 대신, 동시대인들의 삶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는 방식을 취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성숙한 정신을 가진 감독의 자아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는 단순하게 순수하기보다는 인간의 내면, 일상생활, 사회문제 등 서로 다른 세 층위를 지그재그로 오간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의 내면이란 어린이의 내면이다. 영화든 TV든 어린이영화를 전혀 만들지 않을뿐더러, 본 것이라곤 어른의 구미에 맞춰 순진 떠는 디즈니만화 속의 아이들뿐인 우리에게는, 어린이가 어른에 비해 급수가 낮은 미성숙한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청과 팡이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땀과 비애로 얼룩진 채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아이들의 얼굴이라니. 너무나 쉽게 훈계당하고 남용당하고 모욕당하고 심지어 매질당하는 리틀 청이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할머니와 필리핀 보모, 심지어 팡마저 잃었을 때 프루트 챈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리틀 청의 모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던 기형도 시 속의 유년을 상기시킨다. (기형도, ‘엄마 걱정’,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영화는 또한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역사적 대사건이 실제 홍콩 사람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중국에서 온 소녀 팡은 1997년 7월이 되면 “홍콩은 우리 것”이 되고 불법 체류자인 가족들의 처지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오성홍기’에 대해 중국식으로 경례하는 법을 배우는 일과, 불법 체류자들이 경찰차에 실려 본국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이식하려는 노력 이외에는 아직 사회통합을 위한 기초 작업조차도 착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종다양한 생존의 고투가 벌어지는 홍콩의 한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팡과 망 자매의 모습 등, 아마추어 배우들로부터 끌어낸 디테일들이 곰살맞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려는 에피소드가 눈에 거슬릴 정도. 특히 리틀 청과 팡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프루트 챈 감독이 마음만 먹으면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다. 외국인 관객으로서 <리틀 청> 안에 묘사된 홍콩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저것이 홍콩의 폭넓은 진실일 것이다’라고 공감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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