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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폭력의 향연, <아치와 씨팍>
문석 2006-06-27

예전에 <똥이 자원이다>라는 인류학 책이 있었다. 장편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의 배경은 그야말로 똥이 자원인 시대다. 자원이 고갈된 미래의 언젠가, 인간의 대변만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국가는 에너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모든 시민들의 항문 안에 ‘아이디 칩’을 삽입해 철저히 통제하면서, ‘우수 배변자’에겐 ‘하드’라는 마약성분을 지급한다. 그 결과 마약중독자가 양산됐고, 돌연변이가 속출했으며, 하드를 둘러싼 강탈전이 횡행하게 된다. 돌연변이가 주축이 된 대규모 하드 강탈조직 ‘보자기 갱단’과 정부가 만들어낸 강화인간 게코가 살벌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 뒷골목 양아치 아치(류승범)와 씨팍(임창정)도 화장실에서 애써 힘쓰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쳐 사람들로부터 하드를 빼앗는다. 이 좀스러운 듀오에게 찬란한 빛이 다가오니, 그건 똥 한방에 수백개의 하드를 얻어낼 수 있는 이쁜이(현영)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걸어다니는 하드 공장’ 이쁜이를 둘러싼 대모험이 시작된다.

<아치와 씨팍>은 이처럼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더욱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 애초부터 18세 관람가를 작심한 애니메이션답게 영화는 잔인하고 노골적이며 상스럽고 뻔뻔한 묘사를 통해 묘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인디아나 존스> <매드 맥스> <스파이더 맨> <전함 포템킨> 등 잡다한 영화의 패러디도 치기는 엿보일지언정 창의적 수용이 돋보인다. 2D와 3D를 결합한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영상에서는 5년이라는 제작기간이 묻어난다. 액션활극애니메이션으로서 <아치와 씨팍>은 상당한 성취를 이룬 셈. 하지만 드라마 구축이라는 차원에선 약간의 균열도 엿보이는데, 빠른 템포 속에서 쉴새없는 액션이 펼쳐지는데도 큰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주인공 캐릭터인 아치와 씨팍에 감정이 좀처럼 실리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가지 팁. 미래사회가 배경이고, 돌연변이가 등장한다는 점만으로 <아치와 씨팍>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나 급진적 정치관을 보여줄 것이라 지레 짐작하면 안 된다. 이 영화는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지 않은 채 액션과 폭력의 향연에 집중한다. 결국 <아치와 씨팍>은 제작진의 주문처럼 “아무 생각없이” 볼 때 진미가 느껴지는 ‘순수’ 오락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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