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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처럼 보이는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김혜리 2007-08-15

폴카를 추듯, 짝을 바꾸다

두쌍의 젊은 부부가 지인(최재원)이 개업한 바에서 인사를 나눈다.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와 호텔에서 일하는 민재(박용우) 커플은 화목해 보인다. 반면 건설업자 영준(이동건)과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 부부는 노골적으로 냉담하다. 즉석에서 영준은 유나의 고객이 되고, 민재는 소여의 홍콩 출장 숙소를 잡아주기로 한다. 보름달이 기분을 들뜨게 하는 밤, 서울과 홍콩에서 파트너를 바꾼 연애가 동시에 시작된다. 두 로맨스의 진도와 온도는 차이가 난다. 그녀의 이름처럼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여자로 보였던 소여와 온건한 인상의 민재가 다짜고짜 격정에 휘말리는 반면, 불 같은 유나와 냉랭한 영준은 싸우면서 정이 든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스크린을 4등분한 도입부부터 대칭에 집착한다. 형식에서도 감정에서도 잉여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인물들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위치에 놓음으로써 죄의식이나 복수심을 배제한 사랑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끌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결과는, 지나치게 인물들에게 편리해 보이는 상황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사랑과 배반을 한꺼번에 경험한 네 남녀의 마음속 풍경을 관객이 들여다볼 기회는 충분치 않다. 전반부의 계단식 전개에 비해 진실이 드러난 클라이맥스 이후가 부쩍 가파르게 마무리되는 러닝타임의 배분도, 여기에 일조한다. 시들게 마련인 사랑의 생태를 이미 깨우친 그들인 만큼 짝만 바꾸면 만사형통이라고 믿지는 않았을 테지만, 영화는 거기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코디네이터가 맞춰 입힌 모델처럼 보이는 영화다. 멜로드라마와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을 하나씩 대변하는 듯한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의 배치, 그들이 입는 의상과 살아가는 공간까지 일습이다. 캐스팅 역시 네 배우의 기존 이미지와 장기를 별다른 변주없이 활용하고 있다. 이동건은, 본인의 매력을 알고 그것이 얻어내는 관용 범위 안에서 엉뚱한 도발을 감행하는 남자- 시트콤 <세친구>부터 제격으로 판명된 역할- 를 또 한번 연기한다. 네 주역 중 관객에게 가장 바짝 다가서는 인물은 엄정화가 분한 유나. 화려한 외양 밑에서 생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숨차게 사는 그녀는 무던한 남편에게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이 의존하고 있다. 마침내 다른 사람을 사랑하노라 털어놓은 민재와 유나가 침대 위에서 쓸쓸히 주고받는 대화는, 이 영화의 어떤 러브신보다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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