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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춘영화의 계보학] <거침없이 하이킥>의 정일우
정재혁 2007-09-20

키우고 싶은 내 사랑 완소남

<거침없이 하이킥> <조용한 세상> <내 사랑>의 정일우

송승헌, 권상우가 대표하는 몸짱, 장동건, 원빈으로 이어지는 꽃미남을 지나 2007년 남자 스타를 수식하는 키워드는 완소남이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도, 화려한 이목구비의 외모도 강조하지 않아 다소 무개성적으로 들리는 이 표현은 2007년 스타를 향한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다. ‘완전 소중하다’는 의미의 줄임말로 스타가 가진 특정 매력보다는 그 스타에 대한 대중의 호감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미인의 시대를 지나 개성적인 여자 스타들이 떠올랐던 90년대 중반처럼 지금의 대중은 틀에 넣어진 스타보다 자신의 틀에 맞는 스타를 찾아 완소남의 딱지를 붙인다. 연하남, 터프함, 곱상한 외모, 근육질 등의 특징은 이제 완소남을 구성하는 유동적인 요소일 뿐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조용한 세상>

2007년 완소남의 가장 큰 스타로 등장한 이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 정일우다. 그는 인터넷 사용자 측정 리서치 기관인 코리안클릭에서 실시한 2007년 상반기 히트 검색어 순위에서 14위에 오르며 인물 검색어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방영되는 동안에는 연일 화제의 인물로 검색됐고, 극중 서민정 선생과의 키스, 유미와의 키스장면 등이 방송을 탄 날에도 여지없이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출연작이라곤 영화 <조용한 세상>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밖에 없기에 그는 윤호의 이미지로 단단하게 포장될 수 있었다. 완소남 윤호의 정일우는 2006년 공길의 이준기 이후 스타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가장 잘 체현한 이미지다.

정일우가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영화 <조용한 세상>이다. 아픈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남자 정호(김상경)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그는 일견 하얀 얼굴의 주지훈처럼 보였다. 대사없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무언가 지난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한 표정. 웃음을 지운 그의 얼굴은 강동원, 주지훈의 무표정처럼 낯설지만 매혹적인 고독을 그렸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윤호였다. <조용한 세상>의 개봉과 맞물려 시청률이 오른 <거침없이 하이킥>은 정일우를 윤호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다소 무뚝뚝하고 냉소적이지만 엉성하게 남자다운 고등학생. 서민정 선생을 혼자 사랑하는 설정 덕에 연하남의 로맨스도 추가됐다. 완소남 정일우는 무게를 덜어낸 터프함과 웃음을 가미한 반항, 허점이 뚫린 ‘싸움짱’이 반죽된 캐릭터다. 그는 지현우, 이민기, 김범을 비롯한 연하남과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단순히 귀엽다는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여백을 가졌다. 다소 백치미로 보이기도 하는 그 여백은 아기처럼 하얀 피부와 단조로운 이목구비 때문이고 이는 한편으로 미소가 커버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드러낸다.

조각미남도 근육질의 남성미도 아닌 완소남의 정일우는 꽃미남과 강동원 이후 한국 남성 스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트렌드를 대체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21세기의 청춘스타는 그 시대의 전형성을 만드는 대신 자신의 캐릭터를 복제한다. 그리고 이는 방송과 신문 등 공적 미디어로만 자신을 표현했던 기존의 스타들과 달리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사적 영역을 공개하는 오늘의 스타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겹친다. 이제는 UCC 동영상에 담긴 스타들의 모습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가 놓친 청춘의 요소를 대신한다. 정일우가 미니홈피를 통해 공개했던 ‘목욕탕 셀카 사진’, 영화 <내 사랑>을 찍기 위해 자른 머리를 담은 사진 등은 윤호 이후 비어 있던 정일우의 캐릭터를 채웠다. 이른바 ‘사이버 청춘’의 등장이다. 대중은 윤호의 이미지로 정일우를 시험하고 그 해답을 미니홈피에서 확인한다. 청춘은 나이를 시간으로 먹지만 사이버 청춘은 이미지로 먹는다. 예전보다 살이 찐 최근 정일우의 모습은 ‘후덥일우’란 별칭을 얻었다. 그만큼 완소남은 확고하지만 애매한 셈이다. 정일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이미지는 미니홈피를 오가는 수많은 방문자들에 의해 24시간 생중계된다. 완소냐, 아니냐. 이 역시 찰나의 문제다. 윤호 다음이 물음표라면 정일우의 미래도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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