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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전직 스트리퍼의 할리우드 침공
안현진(LA 통신원) 2008-02-19

<주노>의 시나리오 작가, 디아블로 코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은? 2007년 12월에 개봉해 두달이 넘도록 전미 극장가를 점령한 <주노>의 작가, 디아블로 코디다. 키 작은 열여섯 소녀가 임신 뒤 입양가정을 찾는 과정을 통해 열뼘쯤 자라나는 감동적인 코미디가 제작비의 40배에 가까운 수익을 거두게 한 주역이며, 혹자는 타란티노 뒤로 이토록 신선한 이야기꾼은 없었다고도 한다. 깜찍하고 털털하게 주노를 연기한 엘렌 페이지에 반했다면 이제는 생애 첫 시나리오로 오스카 각본상까지 노리는 그녀를 만날 때다.

1. 디아블로 코디

디아블로 코디

“전직 스트리퍼”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디아블로 코디’는 ‘Pussy Ranch’(http://diablocody.blogspot.com)라는 외설적인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지은 필명이다. 본명은 브룩 비지-헌트로, 눈썹 위로 자른 앞머리와 검정 매니큐어, 레오파드 패턴 등 범상치 않은 스타일이 1978년 시카고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의 태생보다는 록산느, 봉봉, 체리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스트리퍼로서의 1년과 더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필명을 놓고 악마숭배라는 등 말이 많지만 104% 우연히 만들어진 이름이다. 2007년 이혼한 남편 존 헌트와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하고 와이오밍의 도시 ‘코디’를 거쳐서 돌아오던 길에 함께 들었던 노래가 <엘 디아블로>였던 것. 암살당하지 않기 위해 신분위장이 필요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사회적 실험이자 섹스산업을 비추던 미디어의 편향된 시선을 조롱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페르소나로 태어난 것이 ‘디아블로 코디’의 시작이었다.

2. <캔디 걸>과 <주노>

디아블로 코디가 빚어낸 이야기는 ‘Pussy Ranch’를 책으로 엮은 <캔디 걸>(Candy Girl: A Year in the Life of an Unlikely Stripper)과 <주노> 2편이다. 블로그 1일 방문자 수가 5천명을 넘기자 당시 출판업자였던 매니저 메이슨 노빅이 눈여겨보고 출판했는데, 섹스산업의 여성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처우를 말해 명성과 안티팬을 동시에 얻었다. <주노>의 시나리오도 노빅의 권유로 쓰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주노>가 자전적 이야기인지 궁금해했는데, 답은 예스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코디는 임신한 적이 없다는 것. 섹시한 치어리더와 절친한 친구였고 밤새워 햄버거 전화기로 수다를 떨었으며, 고등학생 시절의 연인은 블리커처럼 심성이 여렸다. <주노>는 그 시절의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90분짜리 사과편지다. “스트리퍼일 때보다 더 벌거벗은 느낌이다. 영화 안에 사적인 내가 너무 많아 손가락 사이로 힐끔거릴 뿐이었다.” 당연히 한국영화 <제니, 주노>와는 관련이 없다.

3.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여자

<주노>

코디의 성공을 시샘하는 사람들은 충격적인 전직과 아름다운 외모가 유명세의 전부라고 단정하지만, 그것으로 <주노>에 쏟아진 갈채를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나는 실패한 스트리퍼였다. 인기가 없어서 돈도 많이 못 벌었다.” 대중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달리 없다. 이미지와 실체가 일치하는 진정성,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목소리다. 성기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털어놓거나 갑자기 유명인이 된 것에 대한 불만을 적은 글들은 당혹스러워도 진솔하다. 언론은 전직 스트리퍼의 할리우드 침공을 반갑게 맞았다. <플레이보이>는 그녀의 성공을 두고, “좋은 일은 옷을 벗을 때 시작된다”고 했고, <에스콰이어>는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들” 특집호에 소개했다. 2007년 12월부터 스티븐 킹, 달튼 로스와 돌아가며 칼럼을 연재하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할리우드의 영리한 사람들 50”의 38위에 코디를 선정했는데, 존 휴스 이래로 이토록 명쾌하게 청춘을 표현한 사람은 없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4. 러시러시! 코디와 함께라면

글쓸 틈이 없다고 불평하는 코디의 행보가 지금보다 바빠질 것은 분명하다. 제이슨 라이트먼 제작으로 3월 촬영에 들어가는 <제니퍼의 몸>은 장르의 열혈팬인 그녀의 첫 공포영화로 인육을 먹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일찌감치 코디를 점찍어놓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TV시리즈 파일럿의 각본을 맡겼고, <슈퍼배드>를 본 뒤 흥분해 여학생 버전으로 쓴 <걸 스타일>은 유니버설에서 판권을 샀다. 할리우드 입성 뒤 그녀의 삶은 달라졌다. 블로그에 적은 자기소개가 “TV 강박증에 걸린 섹스중독자, 머리 스타일 바꾸는 것과 구강성교를 좋아함”에서 “미디어 창녀”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에 불과했다.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이 집중된 그녀의 이혼은 <주노>의 성공과 맞물려 타블로이드와 인터넷을 달궜다. “우리는 브란젤리나가 아니다. 라이트먼과의 격의없는 포옹도 멋대로 부풀려진다.” 노출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가 노출을 꺼리게 됐지만 그럼에도 코디의 할리우드 사랑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바닥이 좁고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세계는 맞지만, 영화라는 꿈속에서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멍청한 금발미녀도 없고, 똑똑한 여자가 이상형의 품에 안기기 위해 계단에서 구르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디아블로 코디는, 지금 할리우드의 젊은 여배우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작가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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