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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삼총사> -권교정 만화가
2008-03-21

원작 골수팬이 꿈꾼 그 이상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아동용 소설책,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들에서 삼총사라는 이미지는 항상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 달타냥과 세 친구들의 정의로운 모험 이야기, 갈등구조를 일으키는 악당은 추기경인 리셜리외와 그의 부하들. 그리하여 정의는 승리하고 달타냥과 그의 친구들은 결국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승진도 하면서 잘 먹고 잘산다, 라는 이야기라고. 단순한 구조지만 대개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러한 뚜렷한 권선징악의 룰을 따르고 있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왔다. 내가 좀더 나이가 들어 <삼총사>의 완역본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그 제작 소식에 나도 역시 다른 톨킨의 팬들처럼 ‘조금의’ 기대와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고 그 실물을 대했을 때는 그저 ‘아, 이 타이틀에서 이 영화 이상으로 더 무엇을 보여주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원작의 고유의 매력을 전혀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주요 포인트들을 훌륭히 해석해내고 타 매체적 각색을 멋들어지게 해낸 가장 좋은 경우로 보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했을 때 그것이 원작 팬에게도 갈채를 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경우를 솔직히 그다지 본 적이 없었기에 충분히 감탄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삼총사> 원작의 골수팬으로서 말하건대 이 1974년판 <삼총사>(Three Musketeers)라는 영화 또한 원작 소설을 너무도 훌륭히 재현해냄과 동시에 영화적 재미와 장르적 장점을 잘 살려 만든 성공작이다.

원작을 보자. 달타냥과 그의 총사대 친구들은 말이 총사대원이지 아무리 봐도 날건달이며, 작품 전반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그나마) 생각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추기경 리셜리외다. 어라? 내가 기억하던 <삼총사>와 다르다고? 아니,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동안의 많은 각색에서 모든 것을 정의의 편과 악당 두 부류로 나누기 위해 미화와 생략이라는 양념을 좀 과하게 뿌려댔을 뿐. 이 신나는- 그러나 대체적으로 선량한 기질의- 건달패거리들의 행보와 추기경 리셜리외의 왕비와의 신경전과 대영국 정책이 우연히 부딪치면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총사대원들의 활극(?)이 주내용인데, 이 선악이 확실치 않은 갈등구조와 당시 생활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뒤마의 시원스럽게 뻗어나가는 필력, 거기에 풍자와 유머가 더해진 것이 원작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영화 <삼총사>에서는 놀랍게도 그런 주요 포인트를 제대로 살려놓으면서도 영화만의 재미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영화의 달타냥과 삼총사는 원작자 뒤마가 추구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리얼한 인간형이다. 본인들이야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믿고 있거나 말거나 경우에 따라 3자가 보기엔 말도 못할 민폐쟁이들이고, 자나깨나 국내외의 정치문제로 골치가 아픈데다 왕비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에 울화가 치밀어 잠자리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는 추기경에게는 더없이 하찮으면서도 못 말리게 귀찮은 존재다. 이런 캐릭터의 기본 뉘앙스를 정말 고맙게도 잘 살려준 이 영화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심봤다!’였다. 또한 찰턴 헤스턴이 분한 리셜리외 추기경 또한 원작을 보며 꿈꿔왔던 바로 이상적(?)인 추기경의 모습이었다.

나는 청소년 시절부터 <삼총사>의 팬이었다. 왜냐고 물으면 어째서인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멋들어지게 번쩍거리는 레이피어가 좋았을까? 아니면 가볍게 날아올라가는 깃털모자에 반해서? 뭐… 어쨌거나 누구에게든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 동안 반해 있는 로망’ 같은 것이 한둘씩은 있는 법이잖나. 내게는 <삼총사>라는 작품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 속의 그 이야기들을 비주얼과 소리가 있는 세계로 끄집어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준 영화에 고맙기 그지없다. 어릴 적엔 뒤마의 <삼총사>를 만화로 그려내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을 접었다. 요는 ‘대체 이 이상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나요?’라는 거다. 뒤마도 이 영화를 봤다면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권교정/ 만화가·<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피리부는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