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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윤진서

윤진서가 처음으로 관객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올드보이>. 유지태의 죽은 누나로 나왔었죠. 뭐랄까, 매력적인 역할이었지만 그만큼 배우로서 평가하기 어려운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 그것도 정신이 그렇게 온전하다고 할 수 없고 집착이 심한 남자의 회상 속 주인공이었으니 꿈이 도대체 몇겹으로 겹친 건가요. 그 때문에 <올드보이>를 보고 “와, 이 배우가 도대체 누구야?”라며 궁금해 하고 흥분했던 관객이 <파리의 연인>에 카메오 출연했던 같은 배우를 보고 급실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그 뒤로 한동안 윤진서의 배우로서 기능성과 가치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이 사람이 그 이후 <액션배우 정맑음>(TV)이나 <슈퍼스타 감사용>과 같은 작품들에게 보여준 연기엔 <올드보이>의 영화적 매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단점들만 노골적으로 드러났지요. 특히 비음이 강한 윤진서의 독특한 발성은 문제였습니다. 이 배우는 지금 <돌아온 일지매>(TV)로 첫 미니시리즈 주연을 준비하는데, 과연 이 핸디캡을 어떻게 돌파할지 모르겠어요. 영화 관객에겐 이런 것도 슬슬 개인적 매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비전형적인 발성법에 훨씬 민감하지요.

그럼에도 <올드보이> 때 우리가 접했던 윤진서의 가치는 조작된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조작된 환상인 건 맞았어요. 하지만 거기엔 배우의 개성이라는 기반이 있었던 거죠. 단지 그 기반은 일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나타났습니다. 윤진서는 러닝타임이 짧을수록, 작품이 비주류일수록, 대사가 적을수록, 주인공의 개성이 일상성에서 벗어나 있을 때일수록 좋았습니다. <따로 또 같이>나 <나의 새 남자친구>와 같은 허진호 단편들에서도 그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도 그랬지요. 둘 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 배우의 매력을 잘 잡아낸 작품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전 윤진서의 주목할 만한 장점을 하나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건 이 배우가 전형적인 시네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심지어 연기까지 하는 많지 않은 한국 배우 중 한명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이 배우를 바라보다보면 시네마테크의 옛 영화들과 채널링을 하는 게 보여요. 매체의 꿈과 같은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장르적 이해는 종종 기술적 테크닉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 때문에 윤진서는 여전히 기술적인 결함에도 영화 재료로서 좋은 배우입니다. 이게 배우에게 꼭 좋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배우를 캐스팅하려는 감독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최근 몇년 동안 윤진서는 독립적인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했습니다. <두사람이다>와 같은 장르호러물의 주연을 맡기도 했고 <바람 피기 좋은 날>이나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주류영화에 도전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는 앞에 제가 예를 든 영화들보다 평범했지만 그래도 나름 적응의 흔적이 보입니다. 여전히 강한 비음은 남아 있지만 발성은 자기 개성에 맞추어 통제되고 있고, 앙상블도 좋아졌어요. 소문에 따르면 결코 모범적인 팀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었던 성격도 나름 개선되었다던데, 그건 제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아니죠.

장률 감독의 <이리>가 곧 개봉됩니다. 윤진서는 이 영화에서 이리 폭발 사고 때 태어난 지적장애인을 연기했죠. 설정만 봐도 딱 라스 폰 트리에식 성녀학대극이라, 이런 종류의 영화에 민감하신 분들(저 같은 사람 말이죠)에겐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배우 윤진서의 기능성과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라는 점은 밝히고 싶군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박자의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어긋난 리듬감, 비전형적인 캐릭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 그리고 꿈결과도 같은 시적 질감과 같은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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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