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자체검열 촉발시킨 이질적 갱스터

<스카페이스> Scarface, 하워드 혹스, 1932

1927년 <재즈 싱어> 이후, 사운드의 도입은 할리우드의 지형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소리’, 이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코미디, 웨스턴, 그리고 멜로드라마 위주로 제작되던 할리우드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로 뮤지컬과 갱스터의 유행이다. 스크린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총소리가 난무했다. 뮤지컬이 여성들을 목표로 했다면, 공항 시절 남성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갱스터였다. 이른바 3대 갱스터라는 <리틀 시저>(1930), <공공의 적>(1931), 그리고 <스카페이스>(1932)가 연이어 발표됐다. 서부의 무법자에 이어 관객은 또 다른 스크린 영웅을 갖게 됐는데, 폭력 하나로 도시를 점령하는 무자비한 갱스터가 바로 그들이다.

탕 탕 탕, 사운드가 선물한 긴장감

그런 갱스터들 가운데 실제 인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객에게 실감나는 ‘어둠의 세계’를 보여준 작품이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이다. ‘스카페이스’는 시카고의 갱스터 세계를 압도하던 알 카포네의 별명이다. 그의 얼굴에 흉터(Scarface)가 있었다. 주로 이탈리아 이주민의 아들들인 갱스터들은 법을 무시하며 일확천금을 벌곤 했는데, 이들의 활약이 입소문을 타고 남자들 사이에서 신화가 되어갈 때 갱스터는 흥행까지 성공했던 것이다.

알 카포네도 이탈리아의 이민 2세다. 금주 시대에 밀주로 떼돈을 벌었는데, 그런 가운데 다른 갱스터들과 잔인한 전쟁을 벌여 악명을 떨쳤다. 지금도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를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제일 먼저 거론될 만큼 알 카포네는 살아생전에 전설이 됐다. 알 카포네를 연기한 배우는 폴 무니다. 이름과 외모를 봐선 영락없이 이탈리아계 남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하던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유대인의 아들이다. 영화 속 이름은 토니 카몬테인데, 토니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이름인 안토니오의 애칭이다.

영화는 롱테이크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갱스터들의 밤샘 파티가 끝날 무렵, 그 파티를 열었던 어떤 보스가 홀로 남아 전화박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고, 복도 저 뒤에서 휘파람을 부는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그 보스를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이다. “탕, 탕, 탕.” 도입부는 사운드라는 테크닉이 공포감을 주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단숨에 보여줬고, 또 이 장면은 한번의 컷도 없이 연속으로 찍혀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팽팽한 긴장감을 전달했다.

토니의 오른팔이 리틀 보이(조지 래프트)다. 늘 동전을 손에서 튕기는 인물이다. 두목을 위해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의 캐릭터는 말없이 동전을 튕기는 동작으로 각인됐다. 조지 래프트의 연기가 얼마나 인상적인지, 동전을 튕기는 갱스터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2)에서 다시 등장했고, 또 <뜨거운 것이 좋아>(1959)에선 조지 래프트가 직접 갱스터로 나와 동전을 튕기기도 한다. 두 남자는 거칠 게 없다는 듯 시카고의 밤을 점령해간다.

오, 근친상간의 혼돈에 빠지다

그런데 토니에겐 체스카라는 10대의 여동생이 있다. 40년대에 등장하는 누아르 필름의 요부에 딱 어울리는 여성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고, 남자들과의 관계에 거침없다. 토니는 여동생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지나치다. 여동생에게 다른 남자라도 나타나면 죽일 듯 그를 쫓아낸다. 하워드 혹스는 갱스터들이 어린애와 같다고 봤다. 아무런 성찰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퇴행을 강조하기 위해 혹스는 토니의 성격을 어머니에게 헌신하고(사랑하고), 여동생을 사랑하는 모호한 캐릭터로 설정했다. 말하자면 토니는 두 여성과 의사가족을 형성하고 있다. 어머니에겐 아들로, 여동생에겐 아버지로 자기의 역할을 이중적으로 부여했다. 그리고는 두 경우 모두에서 금기를 넘어가는 불안한 사랑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토니가 여동생과 함께 경찰들과 결투를 벌일 때다. 두 사람은 마치 동반자살을 감행하는 비극적인 연인들처럼 경찰들과 마지막 격전을 벌이다 죽는다. <스카페이스>가 다른 두 갱스터 고전보다 더욱 위험하게 인식된 것은 바로 이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근친상간적인 남매 관계는 물론이고, 토니의 죽음이 결코 갱스터의 관습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니는 그의 갱스터 경력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장르의 법칙대로 그는 밤의 길거리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지만, 자기의 삶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보여주지 않은 채다. 그러니 토니는 두배로 위험한 갱스터였다. 사회적 금기를 위반하는 성정체성은 물론, 반성과 후회 같은 윤리적 안전장치를 무시하는 말 그대로의 반영웅이었다.

할리우드에 검열에 관련된 규칙들이 발전한 데는 토니 카몬테의 역할이 컸다. 불쌍하게 죽어 동정을 받아야할 갱스터가 죽는 순간까지 영웅적인 행동을 해선 곤란했다. 게다가 근친상간은 더 위험했다. 일명 ‘헤이스 코드’(Hay’s Code) 라는 자체검열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토니 카몬테 같은 ‘이질적인’ 갱스터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엔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이 공동연출한 뮤지컬의 고전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를 보겠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