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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독설] 한국영화의 위기는 영화인 책임이다

투자 의욕 잃게 한 2008 졸작 퍼레이드…원인을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라

한달쯤 전인가, 모 영화인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책에 대해 던진 코멘트를 봤다. ‘말기 암환자에게 항암제가 아니라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만 선사하고 있다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뭔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말기 암환자라면 항암제보다 호스피스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라고. 한국영화가 그냥 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엉뚱한 항암제를 맞고 부작용에 시달리느니 평화로운 죽음이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한국영화가 암에 걸렸다면서, 정작 어떤 암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미 2007년 초부터 위기라고 떠들어댔는데 그동안 영화계에서는 어떤 대응을 한 것일까? 이유도 정확히 모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돈만 퍼부으면 과연 한국영화산업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영화산업에 공공의 돈을 투자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상업영화에 대한 공공지원을 반대함

1997년 금융위기 때 국가에서 은행이나 기업들에 금융지원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과 은행을 지원해주는 이유는 그들을 살리는 것이, 결국은 국가 경제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에서 은행과 자동차 회사에 돈을 주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내 세금이 저 기업을 살리는 데 들어가면 정말 나에게 이익이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기업에 대한 공공 지원을 반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개인의 것인데, 그걸 왜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각각의 개인은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않는 국가가 말이다. 그건 개인의 사회복지제도가 제대로 마련된 국가에서나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산업은 어떨까? 영화가 중요한 문화이고, 산업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영진위 같은 것을 만들어 매년 수백억원(확인중???)이 넘는 엄청난 지원을 했던 것일 테고. 어쨌건 한국의 영화에 대한 지원은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 못지않다. 그런데 지난해 모 영화제에서 만난 한 영화감독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은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세계에서 거의 최고 수준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독립영화는 외국에 비해 관객과 가장 거리가 멀다. 대강 그런 요지였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국가로부터의 독립이 원칙인 인디펜던트 영화지만 굳이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것까지는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독립영화들이 점점 더 관객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영화만 만들어서? 그게 예술가의 특권이기는 하지만, 공공의 돈을 가져다 마스터베이션을 계속 하고 있다면 과연 거기에 세금을 퍼부어야 할까? 나는 반대한다. 하물며 독립영화도 그런데,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상업영화에 지원을 하는 것은 더더욱 반대한다.

나는 지금 한국영화산업의 위기가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들어올 환경을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수익률이 마이너스 40%에서 60%인 회사에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한때 영화산업에 물밀듯 돈이 들어왔던 것은 영화에 투자를 하면 수익이 날 것이라고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코 그들이 영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영화는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숫자다. 숫자에 더해진 통찰력이 영화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다. 9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 역시 그런 통찰력에서 이루어졌다. <쉬리>는 삼성영상사업단의 마지막 작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쉬리>의 성공모델이 이후 한국영화의 중흥을 불러오게 되었다. <쉬리>는 ‘반공’으로만 다루어지던 분단문제를 블록버스터의 내러티브로 원숙하게 변형시킨 수작이었다. 걸작은 아니지만, <쉬리>는 한국영화산업의 물꼬를 튼 작품이 되었다. 관객이 공감하고 열광하는 작품이 탄생했을 때, 영화산업의 흐름이 바뀌어버린다.

너무 고상했거나 불친절했거나 정말 한심했거나

그런 점에서 강우석의 말에 공감한다.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건 작품이다. 한국영화계는 언제나 작품으로 판을 일으켰다. 눈먼 돈이 해준 것이 아니다. 관객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외면당하니까 힘든 것 아니냐’ 언젠가부터 한국영화는 이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원칙을 잊어버렸다. 매년 연말이면 <씨네21>에서 그해의 베스트 5편을 꼽는데, 2007년과 2008년은 너무 흉작이어서 정말 힘들었다. 비교우위는 가능하지만, 분명하게 베스트라고 할 영화가 5편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2007년에 <전설의 고향>을 시작으로 <두사람이다>까지 개봉하는 공포영화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땅을 쳤다.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2008년에는 단 한편의 한국 공포영화도 보지 않았고,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만족했다. <고死: 피의 중간고사>부터 <4요일>까지 변함없는 졸작 퍼레이드라는 말을 엄청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2007년과 2008년에는 보고 싶은 한국영화 수도 엄청 줄었고, 보고 난 뒤의 만족도도 거의 바닥이었다. 한국영화의 수익률과 시장점유율이 나빠지는 이유? 그건 단지 한국영화가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한국영화가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그동안 한국영화는 자기만족에 불과한 영화들을 양산해왔다. 인터넷 평점을 결코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 곳에 달린 악플들은 때론 경청해볼 만하다. 그것이야말로 몇 천원의 돈을 내고 영화를 본 관객의 공정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제작자와 영화감독들은 대체로 자화자찬이 심하다. 흥행에서 참패한 영화를 관객이 몰라봤기 때문이라거나 평단에서 무리한 혹평을 했기 때문이라고 책임회피를 한다. 하지만 요즘엔 평론이 그런 역할을 하지도 못한다. 한국영화가 몰락한 것 이상으로 영화평론은 이미 고사 직전이다. 예술영화를 보는 관객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가 진지한 영화평론에 관심이 있고, 약간의 영향을 받는 정도다. 그러니 혹평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피해를 봤다는 생각은 이제 말끔히 버려도 된다. 관객이 몰라봤다면 그건 영화가 지나치게 고상했거나 불친절했거나 정말로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는 마지막의 경우다. 영화 자체는 좋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흥행에서 실패했다 해도 그런 경우에는 대체로 연말 정산에서 구제된다. 외면받은 걸작이나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할 작품으로 이곳저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오게 마련이다.

대공황 시절 할리우드의 호황을 기억하자

어디에나 문제는 내부에 있게 마련이다. 외부의 난제 때문이라면 잠시 고개를 숙이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면 된다. 주변 환경이 열악해졌어도 어딘가에는 돈이 있게 마련이다. 대공황 시절에도 할리우드는 호황이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CJ도 오랜만에 흑자를 냈다. 인원 감축도 있었고, 신중한 투자 결정 때문이라고 자평을 했다. 맞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고질병이 바로 그것이었다. 방만함과 체계없음. 프리 프로덕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촬영현장에서 우왕좌왕하며 예산을 낭비한다든지 완성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일정을 늘리고 필름을 많이 쓰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든지 등등. 투자사도 검증되지 않은 선입견에 의지하여 감독과 배우 그리고 영화의 장르만 고려하여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투자자가 주먹구구식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영화사는 투자자의 취향에 맞춘 기획으로 돈을 받아오면 어쨌건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최근 몇년간 매년 1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거기에 반비례해서 볼 영화는 점점 없어져 갔다. 영화는 예술과 산업의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한국영화는 예술과 도박이 오가잡탕으로 뒤섞인 채로 흘러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문제를 어느 하나라고 꼭 집어 욕할 수는 없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는 아마 양비론이 제일 좋을 것이다. 투자자도, 제작사도, 감독과 배우도, 영진위도, 언론도 다 문제가 있었다고. 세상에 문제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차차 세세하게 이런저런 불만사항을 늘어놓을 생각이다. 이 독설은 새해를 맞아서, 그냥 뭉뚱그려서 한번 시비를 걸어본 것 정도고.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영화산업이 어떻게 되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좋은 영화가 있으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한국영화건 외화건 상관하지 않고. 그러니 제발 재미있는 영화 좀 만들어주면 좋겠다.

*** 반론을 환영합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 <컬쳐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 리뷰 쓰기> 등의 책을 썼다. 독설도 없이, 편도 들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차피 은인자중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떡 하나 더 주는 것도 아닌지라 그냥 ‘독설’을 던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