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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을 구원해야 한다 <그랜 토리노>
김도훈 2009-03-18

synopsis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 남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포드 자동차에서 일하다 은퇴한 그는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 좀 참회시키라는 죽은 아내의 유언 때문에 어린 신부(크리스토퍼 칼리)가 매일 성가시게 찾아오고 버릇없는 손녀는 월터의 보물인 72년형 ‘그랜 토리노’를 노린다. 이웃들은 슬럼화되는 동네를 못 견디고 교외로 이주했다. 빈집을 채우는 건 시끄럽고 말도 안 통하는 몽족 이민자들이다. 그런데 이웃집 소년 타오(비 방)를 갱단의 협박으로부터 구해준 것을 계기로 몽족 이웃과 월터는 별난 우정을 쌓아간다. 문제는 여전히 타오의 가족과 월터를 노리는 갱단들이다.

그랜 토리노는 1972년도에 포드가 생산한 자동차다. 크다. 시끄럽다. 기름도 많이 든다. 미국의 도로를 점유한 일본과 독일의 날씬한 자동차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랜 토리노는 미국적인 자동차다.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과거의 영화다. 월터 코왈스키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적인 가치를 믿고 살아온 미국 남자다. 그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이다. 하지만 그 시절 이민자들은 지금의 이민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대륙에 완벽하게 스스로를 동화시켰다. 이탈리아인 이발사도, 아일랜드인 건설업자도, 폴란드인 포드 직원도, 모두가 미국인이었다.

월터 코왈스키가 사랑했던 미국적인 가치는 끝났다. 이 남자에게 그건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왜 좋았던 옛날은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는(그리고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의 엔진처럼 낮게 으르릉댄다. 월터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기묘하게도 이웃집 몽족을 만나면서부터다. 영어도 모르는 야만인들에게 경멸을 날리던 그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식들보다 이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어.” 월터는 미국인 아들에게도 가르쳐주지 못한 ‘남자가 되는 법’을 몽족 소년 타오에게 전수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생애 처음으로 변화의 조짐을 받아들인다.

<그랜 토리노>는 이스트우드가 늘 말하듯 “마법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작고 소박하다. 그러나 영화는 실재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라는 스펙터클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뒤뜰에 세워진 그랜 토리노만큼이나 단단하게 굳어 있다. 그가 갱단을 향해 “네 얼굴에 구멍을 뚫어버린 다음 집에 가서 편히 잘 거야”라고 말할 때조차 “한판 해볼까”(Make My Day)라고 하던 해리 캘러한처럼 이글거리지 않는다. 이스트우드의 얼굴은 러시모어산의 조각에 가깝다. 굳건한 기념비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이스트우드는 내일을 은유한다. 인간은 인간을 구원해야 한다. 그 옛날 미국의 이상처럼, 모든 인종은 모든 인종에게 가슴을 열 것이다. 그랜 토리노의 351마력 엔진은 심장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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