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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시네마 <고추말리기>
2001-02-22

여성 삼대 그 매운 애증 연대기

◆<고추 말리기> 주인공들이 말하는 ‘가족시네마’ 만들기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너무 좋았지. 니 아빠는 영화 보면서 웃지 말라고 그러더만은, 할머니는 눈물이 절로 나왔지. 옛날에 살려면 다 그렇잖아. 그걸 똑같이 만들었으니까,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도 몰래 눈물이 줄줄…. 날더러 소감을 이야기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할말이 뭐가 있어. 여러분들 왔으니까 감사하다고 그러구,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를 이런 영광의 자리에 불러줘서 고맙다 그랬지 뭐.” “그럼, 할머니는 완전히 출세한 거여. 딸이 인제 출세해야지.”

세상에 누구나 ‘책 한권’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품은 사람 사이가 가족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여군이 되고팠던 엄마, 시인이 되고팠던 할머니에게서 나고 자란 장희선(28) 감독은 스물여섯 ‘과년’한 나이에 술술 그 책 한권을 써내고야 말았다. 엄마와 딸이 있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손녀딸과 그녀를 엄마 대신 키워준 할머니가 있는 집. 어느 관계 하나 수월하지 않은 가족이야기를, 평소 뒹굴던 광명 ‘집구석’에서 장희선 감독이 엄마, 할머니와 함께 뒹굴거리며 영화로 찍은 건 ‘등잔 밑’을 밝히는, 매우 현명한 일이었다.

장희선 감독은 백일이 갓 되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맡겨져 대학 졸업할 무렵까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희선씨를 낳은 지 열달 만에 바로 동생이 태어났고, 식당을 하며 시할머니를 모시던 엄마는 희선씨까지 함께 기르기에는 힘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한 동네에 살면서 매일 보다시피 하긴 했지만, 다 자라 집에 들어와도 되었을 때도 장희선 감독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할머니네 있기를 고집했다고 한다. 가슴이 부풀기 시작하고 첫 생리를 맞을 때 곁에 있었던 할머니는 장희선 감독에겐 또다른 엄마나 마찬가지였나보다.

늦여름, 집안 가득했던 매운 고추내음

갓난아기 때 떠나 스물이 넘어 돌아온 엄마네 집. 어느 늦여름날 할머니는 아들네 집 한가득 매운 고추내를 풍기고 있었다. 홀로 고추를 널어 말리는 그 뒷모습이 눈에 밟혔을 때, 그때 장희선 감독은 20대의 한창나이였다. 잠자고 밥먹고 박차고 나가 넓은 세상 싸돌아다니기 바쁜, ‘미운’ 스물여섯 말이다. “전에는 할아버지랑 같이 하던 일인데….” 홀로 된 할머니가 그제서야 한명의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왠지 코끝이 싸해진 장희선씨는 영화‘한답시고’ 어울리던 친구들 열댓명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범상치 않은 자신의 가족, 할머니와 어머니의 발가벗은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는 꾹꾹 눌러놓았던 그들의 속내를 기민하게 담아냈다. 출연료를 지불하기는커녕, 스탭들 밥해먹이느라고 배우들을 ‘골병’들게 만들며 찍은 가히 ‘인류학적’인 영화 <고추말리기>는 그렇게 혈연관계를 십분 이용한 것이었다. 1999년 8월, 실한 고추들이 햇살을 받으며, 빗줄기를 피해가며 바짝 말라가는 동안에 촬영이 진행된 영화 <고추말리기>는 54분의 상영시간 동안 스물여섯 한 여자의 눅진한 가족사를 매운 손놀림으로 펼쳐놓는다. 영화 속, 살살 꼬셔가며 일광욕시켜서 낸 이 가족에게서 나는 단내는 가족과 부대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우리집 냄새’에 다름 아니다.

“밥해준다고 죄 깍두기하고 김치하고 다 해놨는데, 밥들 자시고 왔어? 너도 먹었어?”

“내가 그랬잖아, 영화만 뜨면 저 뒤에 가서 파티해 준다고. 아유, 손님들 먹으라고 한 건데 쟤가 다 먹네. 넌 그만 먹어.”

집안에 들어서니 자작자작 부침개 부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영화제작소 청년이 있는 서울 합정동에서 장희선 감독, 인츠닷컴 기획팀의 정유정씨와 합류한 <씨네21>팀이 막 경기도 광명시의 장 감독 집을 찾은 참이다. 그런데, 이 집은 영화에 나온 철산동의 그 아파트가 아니다. 영화를 찍은 직후 아파트를 팔고서 뒷동산이 있는, 고추말리기가 한결 수월할 듯한 하안동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장 감독이 설명을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먹고들 하자구요.” 어머니(설정원·50)가 김치굴전과 딸기, 방울토마토를 한상 가득 차려낸다. “나는 우리 희선이가 살 빼서 시집가는 게 소원이야.” 바쁜 젓가락질 새로 예의 잔소리가 파닥파닥 튄다. 딱,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다.

어쩜, 나랑 똑 같네

장희선 감독이 스물여섯에 찍은 16mm 중편 <고추말리기>는 이제야 개봉을 하지만 이미 국내외 영화제에서는 잘 알려진 작품이었다. 할머니, 엄마, 딸 세 여자의 사는 이야기를 사실적이고도 가슴 시리게 담아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여성영화제, 부산영화제,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등에서 상영, 여러 상을 받았고, 베를린 인터내셔널 포럼 NETPAC에서는 ‘특별언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에 있는 엄마, 할머니에게 그런 것들은 먼 일. 서울서 시사회가 열리고, 극장개봉을 하게 된 요즘에야 영화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고추말리기>를 찍은 게 햇수로 3년 전. 영화 만들 때만 해도 가족과 함께 살던 장희선 감독은 집을 나가 영화제작소 청년 사무실에서 기거하고 있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한달에 한번 집에 올까말까 한다고), 건축자재 판매업을 하던 어머니는 아파트를 판 값으로 아버지와 함께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최천수·75)만이 여전하다.

“극장에만 걸리면 감독인가?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와서 영화가 크게 돼야 감독이지.” 엄마는 아직 욕심이 많지만, 할머니에게는 가족 얘기를 영화로 찍은 손녀딸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옛날에 우리 살 때 복잡했잖아. 희선아, 할머니는 공부를 많이 했으면 시를 한편 썼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다구. 근데 얘가 원풀이를 해줬잖아. 영화가 얼마나 가정영화야? 내 그걸 보구서 감동했다구, 진짜.” 맘에 쏙 드는 ‘가정영화’를 찍어준 손녀딸 등허리를 어루만지던 할머니는 ‘이주의 개봉작’에 <고추말리기>가 난 <씨네21>을 보고는 감회가 또 새로운가보다.(옥상에서 고추 말리는 자신의 사진을 가리키며) “어쩜, 나랑 똑같네.” 깔깔깔 웃으며 손녀딸이 맞장구친다. “똑같은 게 아니고 할머니 사진이잖아.” “다리 한짝 뻗고 있는 이 사진을 썼대, 왜….” 어머니도 그참에 한마디. “맞아, 포스터도 야. 왜 허구 많은 사진 놨두고 머리도 대충대충 올리고 찍은 그 사진을 썼다니?” 가족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고, 살다보니 이제 한참 돼버린, 영화찍던 ‘그때’로 눈길이 거슬러간다. 벌써 상 위의 딸기는 몸뚱이보다 꼭지가 많다.

“나는, 그게 이렇게 극장에 걸리게 될 줄은 몰랐지. 얘가 용인대학교 대학원 다닐 때, 장난으로 그냥 하는 작품인 줄 알고, 딸이 영상학과니까 거기에 필요한 거 뭐 하나보다 하고 찍어준 거라구. 진짜 영화를 찍는다구 하구 마음을 먹고 했으면 아마 조금 더 잘했을 거야. 말이 그렇지 허구한날 열댓명이 들끓고 들락날락하고 해먹이고, 열두시, 한시, 두시까지 하고 그러니까는, 눈곱만 떼고 찍은 거야, 그게 다. 밥하다 연기하고, 연기하다 밥하구. 해서 짊어지고 관악산엘 가질 않나. 스탭들도 집에 안 갔어. 먹고 자구 먹고 자구. 무슨 장면에선가 화장한 게 겨우 처음 나오더라구.”

집에서 가족과 함께 영화를 찍는 일은, 게다가 가족 그 자신에 대한 영화를 찍는 일은 비단 스탭 밥 해먹이는 일이 아니더라도 무지하게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월 속에 쌓여온 많은 이야기, 풀지 못한 지난한 감정들, 그것을 가두며, 또 때로는 그것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는 굳건한 일상들…. 그 모든 것에 상처를 내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가족시네마’ 만들기. “나는 엄마가 밉다. 그런데 가끔 불쌍하다. 나는 할머니가 좋다. 그런데 가끔 짜증난다.” 장희선 감독이 <고추말리기>를 구상한 이유에 대해 “가족 내에서 가장 이중적이고 힘든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 그 복잡함을 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랑을 주셨지만, 할머니는 계속 엄마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험담을 하셨고, 내가 잘못하면 “엄마 딸 아니랄까봐. 어떻게 니 엄마랑 똑같니?”라고 꾸짖으셨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엄마의 성격이 싫었다. 엄마와 닮은 나의 성격이 싫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와는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밀하지도 않았고, 엄마는 만날 때마다 살빼라는 구박만 했다. 그런데 가끔씩 만나게 되는 한 중년 여자로서의 엄마의 모습, 힘든 일이 있어도 남들처럼 이야기 상대가 되지 못하는 딸인 것이 미안했다.-프로덕션 노트 중에서

조각난 가족사를 엮는 세가지 방식

처음엔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하는 편이었던 장감독은 영화를 다 찍어가면서 점점 엄마를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한다. 엄마 자신은 “영화 하기 전하고 나중하고 변한 거 하나 없어”, 하지만, 이 가족에게 <고추말리기> 작업은 쌓여왔던 무엇인가가 터져나오는 큰 의식이었음에 분명하다. ‘시집살이’에 대해 할머니와 엄마가 각각 ‘엇갈린 증언’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던 긴장은 다시 일상 속으로 꼭 묻혀 버렸지만, 이제 이들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차마 못 하는지, 알고 또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극영화, 인터뷰, 메이킹 필름. 세 가지 다른 양식으로 찍은 부분들이 퀼트 조각을 잇듯 조합돼 있는 <고추말리기>의 구성방식은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장감독이 생각해낸 것이다.

극영화 부분에서 장감독은 화면 안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뮤지컬 배우 박준면씨가 ‘희선’ 역을 맡았다. 영화에는 장감독이 직접 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장면도 삽입돼 있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희선’ 역만은 실제 인물이 연기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부분은 극영화 연출을 하는 장감독이 직접 촬영하기 어려워 단편작업을 하던 이혁래씨에게 촬영을 맡겼다. 이 역시 엄마와 할머니가 인터뷰어에게 존대를 쓰는 말투로 짐작이 된다. 뒷부분에서 장희선 감독은 직접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세 부분의 촬영은 모두 적나라하게 일상의 풍경이 드러난 집안팎에서 진행됐다. 식구들은 침대에 누워있거나, 옥상에서 고추를 널고 있거나, 추석날 전을 부치고 있거나 하며, 한 집 안에 있어도 각자의 공간을 가지고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아이구, 이게 영화야? 좀 멋있는 이야기를 찍어라” 등등 카메라 뒤에서나 할 얘기들 역시 메이킹 필름이 고스란히 담아냈다. 인터뷰 부분 중, “엄마,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 “아니, 안 보고 싶었어” 하는, 장 감독이 엄마를 직접 인터뷰한, <고추말리기>에서 가장 찡한 장면이기도 한 이 장면은 아, 이 영화가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평범하게 흐르던 영화가 잡아낸 클라이맥스다. “그때 얼마나 복잡했니. 엄마가 카메라 안 찍을 때 그때 다 얘기해줄게.” 힘겹게 마무리된 인터뷰의 뒷얘기가 불쑥 궁금해졌다.

“아, 그거? 뭐… 영화니까 그렇게 얘기한 거지. 하긴 뭘 해…. (웃음) 이 다음에 이 영화가 성공해 갖구 본작, 진짜 대작할 때 다 해줄 거야. 그땐 아예 시나리오부터 내가 맡지 뭐, 조감독을 할까?”

몇년이 지나도 힘든 얘기는 여전히 힘든 법인가보다. 장 감독과 엄마 사이에 못다한 얘기는 아직 많고, 나중에 얘기해주겠다던 그 ‘나중’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할머니 역시 “사람 산 얘기를 어떻게 다 하냐”며 영화에서 못다한 얘기가 많다고 했다.“할머니도요, 친척집에서 살았어요.” 스치듯 던지는 장희선 감독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경우야 많이 다르지만, 장 감독의 할머니 역시 친부모의 손에 자라질 못했다 한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엄마가 재가한 뒤 친척집에서 살았던 할머니는 그 몇십년 동안 재가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해 한번도 만나지 않고 지냈다. “더 많이 알았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저도 영화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하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 알게 됐어요.” 가족의 일원이지만, 장희선 감독은 조금은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가족영화 만들기며 인터뷰까지, 모든 상황을 조감하는 눈치였다. “아이구 할 얘기가 이렇게 많으니 시리즈를 만들어야겠네”, 그런 장감독 옆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다시 연기 이야기를 펼친다.

“그거 시나리오 보고 한 거 아니야. 대충대충 했어. 힘들어 죽겠는데, 제발 좀 빨리 하구 갔으면 좋겠는데, 그러구 그냥 즉석에서 한 거야. 애드립이야. 나는 애드립으로 하고, 할머니는 외워갖고 하고. 할머니는 노력파, 나는 연기파.”

“나는 희선 엄마 영화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뭐에 감동했냐면, 희선 엄마가 그 옛날에 할아버지 바람난 얘기를 하거든, 나는 간혹 가다 생각하곤 했는데, 그게 아주 잘 들어갔더라구. 자식이나 어머니나, 다 연기자 해도 되겠다, 그 생각을 했어.”

“할머니는 앞으로 계속하시죠, 뭐.”

“나? 나는 하라면 잘하것지.”

“아이, 내가 감독이 딸이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된 거지, 남이 했으면….”

“그럴까? 내 생각에 영화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좀 볼까? 보면 배울 것도 많은 것 같은데. 이 할머니는, 영화 보니깐 살아가는 게, 그게 가슴에 와닿더라구.”

가슴에 와닿는 살아가는 이야기… 무슨 이야기가 가슴에 저렸는지, 언제부턴가 자리를 종종 뜨던 어머니는 어느새 마루 가득 앨범을 모아놓고 있었다. 아픈 얘길랑은 관두고 사진 보며 ‘옛날 얘기’나 하자는 듯, 음식상이 비워진 자리에 이제 ‘2부’ 순서로 ‘사진 파티’가 차려지고 있었다. <고추말리기>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아버지도 어느새 집에 와 창고에서 앨범 꺼내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전에 가난하게 살았으니깐, 우리 손주딸은 잘생기고, 돈 많고, 그런 사람 만나 시집갔으면, 그런 생각을 했지. 근데 이렇게 감독을 한다니깐, 감독이 됐으니까 인제….”

“영화가 성공을 해야 감독이 되지, 아직은 뭐.”

“아직 안 됐어, 그럼?”

“개봉하는데 이제 손님이 많아야 성공한 거지.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았다고 생각해야지. 정지우 감독, 그 사람도 청년에서 한 거잖아. 근데 됐잖아, <해피엔드> 그걸로. 우리 희선이도 여성계에서 한명 돼야지, 이제. 걱정이다, 떠야 할 텐데. 극장이 미어지고 그래야지. 그래서 독립영화도, 단편영화도, 그리고 여자도 된다고, 그래서 여자세상이 와야 하는데.”

가족,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얘기가 이쯤 되니 동석한 인츠닷컴의 관계자가 귓속말로 불안을 토로한다. “실망하시면 어떡해요, 저희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고추말리기>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에 이어 ‘인츠 인큐베이팅 무비 3호’로 선정된 덕에 독립영화로서는 흔치 않게 개봉관에 걸리게 됐다. 독립영화일 뿐더러 할머니말대로 ‘가정영화’인 <고추말리기>를 극장에 거는 것에 대해 장감독은 수월하지만은 않은 심경이다.

“운전 조심해라”, 신신당부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장희선 감독의 차엔 ‘초보운전’이라는 쪽지가 차 뒤 유리창에서도 꼭 제일 안 보이는 자리에 쑥스럽다는 듯 붙여져 있다. 힘들게 관계맺으며 살아온 "할머니와 엄마와 나", 그 이야기를 역시 힘들게 노출시켜 이제 많은 이들에게 보이려는 장희선 감독.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요즘 ‘노망든 할머니’에 대한 영화를 생각 중인 그에게는 아직도 가족에 관해 하고픈, 그리고 듣고픈 진실이 많은 듯했다.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