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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DNA 필터링, 다운로드 혁명 부를까?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9-05-19

영화제작가협회와 웹하드 업체 연합 손잡고 불법 영상파일 원천봉쇄 노력키로

지난 1월15일, 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웹하드 업체의 연합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가 손을 맞잡았다. 그들은 “이제 공생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인 지난 5월13일, 제협과 DCNA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불법 영상물을 걸러낼 공동모니터링센터를 설립하고 세계최고 수준의 필터링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필터링 기술의 최첨단적인 면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불법 업로더와 다운로더들이 기가 질릴 만큼의 대응책이냐는 게 중요하다.

합의 당시 제협과 DCNA의 합의서에는 “제협과 DCNA가 협의하여 장래 채택하는 추가적인 저작권침해방지기술을 성실히 이행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제협과 DCNA는 월요일마다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제협의 이준동 부회장과 조광희 감사, DCNA의 양원호 회장과 유근형 이사가 참여하고, 양자가 공동으로 지정한 변호사 1인으로 구성된 협력위원회가 마련됐다. 협력위는 불법 영상물 유통 근절 및 저작권 보호를 위한 3단계 대응 계획을 만들었다. 공동모니터링센터와 필터링 시스템 도입은 이 3단계 계획안에 있는 내용이다.

P2P 나 웹하드 업체들에 장착 의무화

언제는 감시하지 않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이미 저작권자들은 웹하드 업체들에 파일 삭제를 요구해왔다. 요구받은 웹하드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에 대해 유근형 DCNA이사는 이번에 마련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지금까지 각 웹하드 업체에서 추진해온 모니터링 역량과 노하우를 한데 집약시킨 형태”라고 말했다. DNA 필터링이라고 불리는 필터링 기술은 파일명으로 필터링을 하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동영상 파일 자체를 분석해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DNA 필터링 시스템의 성능이 시연되기도 했다. 필터링 프로그램은 파일명이 몇개의 숫자로 적힌 파일을 검색한 뒤, 파일 정보와 함께 파일이 담고 있는 영화의 정보까지 드러냈다. 제목, 감독, 배우, 제작사, 개봉연도, 등급 등의 정보다. 영파라치 제도를 운영하는 시네티즌이 지난 5월13일 발표한 불법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마린보이>를 예로 들어보자. ‘마린보이’란 제목은 물론이고 ‘마ㄹㅣㄴ ㅂ ㅗ 이’나 ‘마약을 발견한 어부’라거나, 심지어 ‘박태환의 마약밀매현장’ 같은 변종 제목으로 업로드되는 파일도 이 필터링 기술을 통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동영상 파일을 압축해서 올린 파일의 경우에는, 압축을 해제한 뒤 다시 필터링한다. 업로드되는 파일뿐만 아니라 다운로드되는 파일도 필터링 대상이다. 협력위는 DCNA의 소속사 가운데 제협과의 합의에 참여한 38개 P2P 혹은 웹하드 업체들에 DNA 필터링 기술 장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불법파일 발견 땐 1~2주 안에 고소고발

웹하드 업체들이 DNA 필터링 기술을 장착할 때도 조건이 붙는다. 협력위가 마련한 ‘DNA 필터링 기술 가이드라인’의 인증을 받은 필터링 시스템만 장착할 수 있다. 정확성 면에서는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파일의 95% 이상을 인식할 수 있고, 오인식률이 1% 미만일 것, 평균 사양의 PC 및 서버조건에서 파일 1개당 3초 이내에서 필터링할 것 등을 포함한 9개 조건이다. 협력위에 따르면, 현재 인증을 받은 필터링 기술 개발업체는 뮤레카와 앤써즈 2곳이다. 웹하드 업체들은 이들 중 원하는 1곳을 결정해 오는 6월 말까지 필터링 기술을 장착하게 된다. 이준동 부회장은 “우리의 기술적 요구 수준이 높다보니 현재까지 테스트에 응한 업체가 두곳뿐이었지만, 앞으로 언제나 기준을 통과할 자신이 있는 곳은 인증 테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협력위는 합법 다운로드가 정착될 때까지 기술 혁신과 시장상황에 맞춰 6개월마다 인증 가이드라인을 갱신할 예정이며, 이미 인증된 필터링 시스템도 이후 모니터링 결과 가이드라인 이하의 결과가 나오면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인증을 취소하기로 했다.

협력위는 이에 더해 2단계의 대응 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DNA 필터링 시스템에 걸리지 않고 배포된 불법 파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협력위가 구축한 공동모니터링센터는 제휴콘텐츠를 유통하는 웹하드 및 불법 웹하드를 포함한 150여개 사이트를 24시간 동안 모니터링하며, 필터링 기술의 인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불법 파일 발견시 신속한 삭제요청 및 삭제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후에는 웹하드와 P2P뿐만아니라 포털사이트 및 UCC 서비스 업체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만약 공동모니터링센터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불법 영상파일이 발견된 웹하드 업체는 긴급대응팀을 통해 1, 2주 내에 고소고발을 진행한다. 제협의 조광희 감사는 “그동안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 파일을 방치한 이유에 대해 시간적·기술적 여건상 어렵다는 변명을 해왔다”며 “합의에 응하지 않고 이런 시스템을 장착하지도 않은 웹하드 업체들이 재판에 회부될 경우,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죄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으로 업로드되거나 다운로드되는 파일들을 찾아내는 한편, 합법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업체들을 회유하거나 아예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3천억’ 시장의 중대 터닝포인트

이준동 한국제작가협회부회장은 “이 기자회견은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려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러한 대응계획을 통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양원호 DCNA 회장은 “영화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로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확대된다면 오는 2010년에는 3천억원대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합법 다운로드 사업이 시작된 뒤, 2009년 상반기에 이르러 약 300억원대의 시장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기술적인 솔루션이 부합되고 협력위원회의 공동모니터링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올해 연말에는 연 2천억월대 시장까지는 기본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내년이 되어 3천억원대 시장이 된다면 한국 문화산업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남은 숙제들도 있다.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은 웹하드 업체들을 합법시장으로 이끄는 것이 우선이다. 킬러 콘텐츠를 가진 저작권자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준동 부회장은 “이런 시도에도 아직 온라인 다운로드 시장을 의심하는 저작권 주체들이 있다”며 “이들이 가진 킬러 콘텐츠가 시장으로 진입해야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더 확대되고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다운로드로 사라지는 피해액은 문화관광체육부 추산으로 매년 3천억원이다. 잃어버렸거나,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던 시장을 찾기까지는 이견을 좁히는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