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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직접 듣는 포토 코멘터리
글·사진 홍경표(촬영감독) 2009-06-04

촬영감독인 내가 왜 스틸을 찍게 됐냐고? 사실 처음 스틸을 찍게 된 건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앵글도 보고, 화면 안의 구성요소를 확인하자는 차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유는 정서적인 것에 자리를 내줬다. 물론 현실적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젠 ‘기억’과 ‘추억’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한 작품 끝날 때마다 꼭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들을 사진을 통해 떠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스탭들이나 촬영 막간의 장면을 더 열심히 찍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말재주는 없어도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게 ‘찍는’ 것이 아닌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표현하는 방법 또한 찍는 것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 늘 현장에서 그들을 고생만 시키는 사람이잖나. 촬영이 끝난 뒤 사진이라도 한장씩 나눠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애정표현이리라.

1. 진구, 머리를 자르다

2008년 9월27일 전북 익산 여산삼거리_첫 촬영날

드디어 대망의 촬영 시작이다. 첫 장면은 원빈과 진구가 출연하는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 쓸 때부터 진태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구는 감독과의 미팅이 끝난 뒤에도 그게 오디션인 줄 알았단다. 뒤늦게서야 자신이 애초부터 낙점된 진태였음을 안 구. 급반전의 한마디를 날린다. “감독님, 잘 생각하신 거예요.” 의견도 많고 할 말도 많고 그만큼 열심이고 그만큼 즐거워한 진구군. 얄팍하고 예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던 진구군은 시골 동네 양아치 혹은 백수 같은 이미지에다 못된 듯 의리있고, 야박한 듯 정 깊은 진태가 되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

2. 감독과 배우가 혼을 교류하는 시간

2008년 10월18일 경남 고성 화장터_화장터 장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함께 바라보는 것일까. 작고 여린 몸속에 화산 같은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평생 배우 김혜자 선생님, 그 엄청난 폭발력을 활화산으로 분출하게 한 젊은 감독 봉준호. 두 사람의 거대한 에너지와 기의 상호작용은 우리 일생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로 나타났다. 다만, 감독과 배우가 혼을 교류하는 이 시간만큼은 촬영감독인 나에게도 불가침 영역이다. 그저 궁금함을 품고 두 사람의 뒷모습에 조용히 카메라를 들이댈 뿐.

3. ‘통곡의 벽’ 찾아 전국 누빈 그 분

2008년 12월13일 전북 군산_방뇨 벽 장면

선생님이 기대고 계신 벽의 색깔은 영화에선 검정과 회색 사이 시멘트빛으로만 보일 거다. 그러나 스탭 입장에서 이 벽은 눈물없이 이야기할 수 없는 ‘통곡의 벽’이다. 엄마는 아들을 붙잡아 이 벽 앞에서 약을 먹인다. 이 엄마가 아들을 어떤 식으로 챙기고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 헌팅 때부터 정말 무수히 많은 벽을 찾아야 했다. 어렵게 찾은 벽이 촬영을 얼마 안 남기고 베이지색 페인트로 칠해진 경우도 있다. 홀로 전국을 누비면서 벽을 찾은 친구도 있었다. 그는 영화 속 설정과 비슷하게 벽을 보고 선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의 자동 타이머 기능을 이용해서 말이다. 우리는 벽 앞에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을 수천장 정도 봤다. 앞모습은 한번도 못 봤다. 그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더불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다시 애초의 벽으로 돌아오고야 말았으니까.

4. 내리는 비에 조명팀 어깨는 무거워지고…

2008년 10월31일 부산 문현동_사건발생일 밤 장면

나이트신인데다 비까지 내린다. 이 말은 곧 조명팀의 노동량이 배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일단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동네에 지은 오픈 세트이다 보니 길이 온통 비탈이었다. 조명팀은 그 무거운 조명기들을 짊어지고 올렸다가 다시 지고 내려와야 했다. 그러잖아도 촬영, 조명팀은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세팅해야 하고, 가장 늦게까지 장비 정리를 해야 돼 수면량이 다른 팀보다 평균 2~3시간은 부족한데 말이다. 게다가 비가 내리면 조명 일 자체도 더 바빠진다. 비는 굳이 색깔로 치면 흰색이니까 반사가 되지 않게 잘라줘야 한다. 결국 조명기의 양이 많아질 수밖에. 또 조명이 사방을 부드럽게 감싸듯 앰비언스를 깔아주기 위해서는 디퓨저 같은 장비도 사용해야 해 작업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비는 보일 듯 말 듯한데, 그 비가 인물을 가리지 않도록 세심함까지 발휘해야 한다.

5. 연인처럼 애틋하게

2009년 1월20일 파주 세트장_혜자와 도준의 자는 장면

엄마에게 아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일가친척도 없어 보이고 남편 혹은 아버지는 애당초 없는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물론 아들은 그런 엄마가 귀찮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들 또한 엄마가 늘 옆에 있는 게 너무나 익숙하다. 둘은 집에서 함께 잠들고 함께 깨어난다. 둘의 이 장면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 눈에는 러브신으로 보였다. 키스를 하거나 끌어안지 않아도 두 사람이 너무 예쁘고 또 너무 애틋해서 이 장면을 부감으로 찍던 그 순간, ‘이건 러브신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가장 지극한 사랑.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랑. 그게 엄마고 그것보다 더한 러브신이 어디 있을까.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영화 속 김혜자 선생님의 메인 컬러이기도 한 보라색 이불 위에 나란히 모로 마주 누운 둘의 느낌이 참 좋았다.

6. 표정까지 닮아가는 두 사람

2008년 10월4일 봉준호 감독과 김혜자 선생님

‘연기의 신’ 김혜자 선생님을 모신 첫 촬영은 2008년 10월4일 진행됐다. 아니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꿋꿋하게 18테이크나 촬영을 했다. 선생님이 자기 연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선생님이 아니면 이 영화는 없는 것’이라며 4년을 매달려 꼬이더니 첫날부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날부터 촬영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기차가 달리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레일의 두축처럼 나란히 달렸다. 기차의 경로가 바뀌려면 레일이 한점으로 모여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영혼을 깊숙이 들여다보았을 두 사람. 디렉션을 주고받는 사이 체격과 나이, 성별, 그 모든 차이에도 닮은 표정과 비슷한 동작을 보이는 두 사람이 자주 내 눈에 들어왔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느 순간에 해줘야 하는지를 아는 좋은 선장이다(한마디로 말하면 장난 아니게 까다롭다는 말이다). 김혜자 선생님은 직업란에 ‘배우’라고 쓰는 사람들이 좀 이해가 안 간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연기 자체가 곧 삶이고 자기 자신인, 자존심과 프로근성으로 가득 찬 분이다(한마디로 말하면 장난 아니게 까다롭다는 말이다). 나를 포함한 스탭들은 이들의 멋진 협연과 전쟁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7.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김혜자의 얼굴

2009년 1월30일 파주 세트_혜자 면회실 방문 장면

찍고 나서 가장 뿌듯했던 사진이다. ‘건졌다’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의 얼굴은 순간순간 풍향이 바뀌고 해가 뜨고 지는 양지와 음지다. 천국의 희열과 지옥의 고통이 1초의 몇 콤마 단위로 바뀌는 대서사극이다. 이 세상 어떤 촬영감독이 그 얼굴을 찍고 싶지 않으랴. 이날 촬영 분량은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조차 도준이 범인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직접 범인을 찾겠다는 각오를 다잡은 엄마가 아들을 면회 온 장면이었다. 폭주기관차로 변하기 직전의 엄마. 홀로 달려야 할 그녀가 아들을 찾아왔다. 아들에게 말을 건네는 표정이 또 한번의 스펙터클이다. 면회실 창을 짚은 손가락이 흡사 유리를 뚫을 것 같고 물기 어린 눈빛 또한 뭐든 태우는 불꽃처럼 강렬하다.

8. 그 집중력, 놀라웠다

2009년 1월28일 파주 세트_도준의 독방 장면

빈이는 다른 배우들보다 찍기 편하다. 그가 나온 영화를 내가 많이 찍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그는 ‘한류스타’라는 겉포장과는 많이 다른 친구다. 캐스팅 전 봉 감독에게도 빈이가 시골(강원도 정선)에서 자라 강아지를 좋아하고 화려한 것은 어색해하고 도시도 불편하게 여긴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빈이의 그런 모습은 <마더>를 찍으면서 100% 나온 것 같다. 예고편에도 보이지만, 체포될 때 엄마에게 수갑을 자랑하듯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빈이와 3편째 찍고 있는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독방과 면회실 장면이 몰려 있었던 막바지 촬영 때는 놀라움이 더 커졌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하루하루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애초 ‘선생님과 감독님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겸손한 각오를 밝힌 빈이였는데 어느새 훌쩍 자란 것 같았다.

9. 모두 다 잊지 않을게요

2009년 2월14일 파주 세트_마지막 촬영날

밸런타인데이라고? 우리에게 그날은 밸런타인데이라는 사실보다는 <마더>의 마지막 촬영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밸런타인데이야말로 <마더>의 마지막 날로 적당해 보였다. 엄마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는 감정의 형태 중 가장 깊고, 징하고, 독하고, 세지 않던가. 촬영이 끝난 뒤 원빈이 김혜자 선생님께 전달한 꽃은 영화 내내 자신이 받았던 그 어마어마한 사랑에 대한 소박한 답례였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유일한 가족은 빈이뿐이었지만, 선생님은 몇달 동안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던 모든 스탭들까지 한식구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헤어짐이 아쉬우셨던 것 같기도 하다. “부족한 저를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잠자고 있는 제 몸의 세포를 다 깨워주셨어요.” 감정을 고르고 단어를 선택하느라 사이사이에 쉼표를 품고 있는 선생님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게 기억할 거예요. 잊지 않을 거예요. 다 제 마음속에 담겨 있어요.” 하지만 핵심을 찌르고 반전을 내포한 선생님의 예측불허 화법은 어디 가지 않았다. “뭐 제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기억해봐야 또 얼마나 하겠어요? 하지만 제가 살아 있는 한은 반드시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도준이가 아들이어서 그게 정말 좋았어요. 다른 엄마한테 너무 정주고 그러지 마~”라는 당부와 함께 그녀, 우리의 ‘마더’ 김혜자는 5개월에 가까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 또한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마더>를 찍었다. 열병처럼, 한여름의 태풍처럼 그렇게 <마더>는 삶의 한 페이지를 엄청난 강도로 훑고 지나갔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불에 달궈진 인두가 제 몸을 깊은 흔적으로 남기듯, <마더>는 내 뇌리와 심장에 새겨졌다. 행복했고, 힘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마더>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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