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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단추눈의 공포
고경태 2009-06-12

아이들과 함께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본 것은 지난 5월23일 오후였다. 아홉살짜리 딸이 일주일 내내 노래를 부르던 3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비슷한 또래 소녀가 주인공이라서 그랬나보다. 영화에서 코렐라인은 집 안의 작은 문을 발견하고 비밀 통로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그곳엔 실제 엄마 아빠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엄마 아빠’가 산다. 그들은 실제 엄마 아빠보다 시간도 많고 친절하며 맛있는 요리도 맘껏 먹게 해준다. 집과 정원도 환상적이다. 한데 또 다른 엄마와 아빠의 생김새가 좀 이상하다. 두눈이 단추로 돼 있다. 그들은 코렐라인에게 눈을 단추로 바꿔 단 뒤 평생 함께 살자는 요구를 한다. 여기서부터 악몽의 반전이 시작된다. ‘또 다른 세계’에서 탈출하려는 코렐라인의 사투가 격렬해지면서 영화가 힘을 받을 때쯤,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이 부르르 떨렸다. 문자메시지였다. 발신인은 김혜리 기자. “유시민 인터뷰 어떻게 할까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인터뷰는 일주일 뒤인 5월30일로 잡혀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답신을 보냈다. “뭐 문제 생겼나요?” 다시 문자가 왔다. “소식 못 들으셨어요?” 음, 뭔가 사건이 터졌구나. 검찰이 또 스캔들을 만들어냈나? 혹시 유시민도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선단 말인가? 불편한 상념에 휘말려들어 스크린에 눈이 가지 않았다.

오후 3시쯤 극장을 나와서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알았다. 그날 아침부터 희한하게도 뉴스를 요리조리 피해서 다녔던 모양이다. TV를 켜니 부산대병원에서 오열하는 유시민 전 장관이 잡혔다. 인터뷰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이번호 ‘김혜리가 만난 사람’에 무사히 그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코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실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친분이 있는 봉하마을의 비서관을 통해 의사를 타진한 것은 석달 전이었다. 그 비서관은 <씨네21> 독자였고, 무엇보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의 팬이기도 했다. 반응은 호의적이었으나, 곧 검찰수사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뒤숭숭해졌다. 인터뷰를 조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한번도 그 어떤 언론과 공식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씨네21>에 그의 진심과 인간적 향기를 담을 기회가 주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다시 <코렐라인…>으로 돌아가보자. 딸아이는 그날 밤 공포에 떨었다. “아빠눈이 단추눈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장난치면 경기를 일으켰다. 꿈에 ‘또 다른 엄마 아빠’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상관않고 ‘단추눈’이야기로 계속 아이를 놀렸다. 그러다 갑자기 코믹한 설정이 뇌리를 스쳤다. 노무현을 포근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명박은 ‘이상한 세계의 대통령’이다. 그들이 <코렐라인…>을 감상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눈이 ‘단추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