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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잊을 수 없는 경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김용언 2009-08-05

synopsis 루시(밀레느 잠파노이)는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학대를 가하는 이들로부터 극적으로 탈출한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참혹한 경험을 털어놓지 못한 채 매일 악몽을 꾸는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다정한 친구 안나(모르자나 아나위)뿐이다. 그리고 15년이 흐른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루시는 깊은 숲속 외딴집에 사는 일가족에게 총을 겨눈다. 끔찍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뒤늦게 달려온 안나는 경악한다. 루시는 이들이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들이라 주장하지만, 안나는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루시의 악몽이 빚어낸 광기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러닝타임이 103분밖에 안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의 관람은 인내심의 극단을 요하는 경험인데, 그럼에도 기꺼이 감내하게 되는 것은 어찌되었든 소녀들의 끔찍한 고통을 관객에게도 전이시켜버리는 감독의 능란한 손놀림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이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듯, 우리도 이 영화를 겪으면서 견뎌낼 수밖에 없다.

<마터스>는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과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장 클로드 브릿소의 <모험>, 베르니니의 조각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공포영화다. 이상하게 들린다고? 그건 <마터스>의 특이한 구조 때문이다. 영화 전반부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희생자의 복수극이다. 살인장면이 담보하는 시각적 충격의 여진이 크긴 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잔다르크의 수난>이라든가 <모험>을 연상케 한다. 심지어 후반부에는 대사도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고문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속되고, 제대로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는 소녀의 표정이 변해가는 과정만이 클로즈업된다. 가해자들의 얼굴은 자주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얼굴 없는 괴물처럼. 그들은 입도 거의 열지 않은 채 이유와 목적이 감춰진, 순수하기까지 한 고문을 가한다. 푸른 수염의 저택처럼, 외딴집에 흘러들어온 소녀들은 결코 열어선 안되는 문을 열어본 대가로, 또 다른 문을 열어야만 한다. 과연 ‘그 너머’를 보고도 견딜 수 있겠는가? ‘마터스’의 그리스어 어원에는 ‘목격자’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공포 영화를 사고하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날렵하게 뛰어넘는 <마터스>의 시선은, 어떤 의미로든 올해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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