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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고지식한 연기중독자, 김명민

“배우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김명민은 두 손으로 갈비뼈께를 자꾸 어루만졌다. 새 영화를 위해 52kg까지 감량했던 몸에 얼마나 살이 붙었는지 확인하느라 생긴 버릇이다. 회복 중인 그의 몸무게는 아직 정상치를 한참 밑도는 63kg에 3주일째 머물러 있다. 몸을 재료로 일하는 직업의 딱한 일면이다. 김명민은 유난히 고되게 연기하는 배우다. 팔자와 천성이 맞물린 결과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연기자로서 묵직한 일감을 얻기까지 과정이 고됐고,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잡힌 굵직한 배역들은 하나같이 고된 수련을 요구하는 난제들이었다. 명장(名將) 이순신(<불멸의 이순신>), 명의 장준혁(<하얀 거탑>), 명지휘자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미덥게 보여주는 데는 샛길이나 우회로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김명민에겐 배역이 요구하는 데 스스로 한술 더 얹어 감당하는 습관이 있다. 갈채가 돌아왔고 신뢰가 쌓였다. 능숙히 집도하고, <합창교향곡>을 외워 지휘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가였다. 최고의 전문가이자 원칙주의자라는 점 외에 이순신은 혁신을 꿈꾸는 햄릿형 인간이었고, 강마에는 엘리트주의자였으며 장준혁은 지독한 실리주의자였다. 그런 면모들을 놓쳤다면 김명민에 대한 평가는 묘기를 향한 찬탄에 그쳤을 것이다.

그의 신작은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이 연출하는 멜로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다. 지금껏 김명민은 사랑보다 힘을 구하는 인물, 이미 가진 힘을 더 키우고 싶어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다. 그를 눈물겨운 멜로드라마에 불러들인 연유를 묻자 박진표 감독이 지적했다. “눈과 목소리가 굉장히 로맨틱할 수 있다고 봤어요. 몸에 마비가 오면서 눈으로 말하는 연기가 많은데 김명민씨는 아주 맑은 눈을 가졌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충혈되지 않아 놀라울 정도죠.” 눈도 눈이지만, 김명민의 목소리가 지닌 설득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터다. 교통을 마비시키는 미남도 아니고, 육체적 존재감도 평범한 김명민이 비장(?藏)한 위력적인 ‘칼’은 중후하고 입자가 풍부한 목소리다. 그 울림은 보는 이의 감각을 소스라쳐 일어나게 하고 드라마의 폐부로 즉각 끌어들인다. 멜로드라마에는 억눌린 고통을, 스릴러에는 긴장을, 코미디에서는 태연자약함을 대뜸 넘쳐흐르게 한다. 특히 권위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 스스로 충전해가며 말하는 듯한 김명민의 화법은, 단호한 영역표시의 액션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 멋진 페르소나와 좋은 연기는 혼동되기 쉽다. 그러나 김명민이 문소리, 황정민 등에 이어 한국의 탁월한 캐릭터 배우로 자리를 다졌다는 사실은 확고하다. “저는 배우에 부류가 있다고 배우지도 않았고 무조건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기술적인 것은 다른 유형의 연기에서 얻어온다 해도 임하는 자세는 메소드 연기죠. 배우의 ‘배(俳)’는 사람 인 변에 아닐 비 자가 더해졌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너 자신을 잊어야 한다, 연기하는 순간에는 김명민이 보이면 안된다고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점 의심이 섞이지 않은 그의 말이다. 애석한 노릇이다. 우리는 이미 배우 김명민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전유물이라고 확신하는, 우연의 마법조차 필연적 준비를 완수한 다음에야 일어난다고 믿는, 방심을 모르는 한 연기자에게 우리는 주의를 빼앗겼다. 돌이키려 해도 너무 늦었다.

-박진표 감독의 새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촬영이 지난 5월에 끝났습니다.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를 연기하느라 감량했던 체중도 회복 중인 걸로 압니다. 백종우라는 인물에게서 좀 벗어나셨나요? =아직, 뭐라 말씀 못 드리겠어요. 후반 촬영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몸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는데 뒤로 갈수록 극도의 집중이 필요한 연기가 요구돼서, 그 둘 사이 격차가 벌어졌어요.

-촬영 말미의 기억이 혼미한 거군요. =스탭들 이야기로는 사람을 잘 못 알아보고 방향감각도 잃어서 위태위태해 보였다는데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 생각엔 괜찮은데 감독님이 느닷없이 40분 쉬었다 하자고 제안하셔서 의아해했던 일도 있었어요. 앉았다 일어날 때는 조심스러웠어요. 갑자기 일어나면 저혈당증 때문에 쓰러지는데 넘어지면 회복하기 힘들잖아요. 최소한 촬영하는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만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숙소에서 한두번 기절 비슷한 것은 했지만 촬영장에선 버텨보려고 했죠. 그래도 침대에 누워 있는 신이 많다 보니 잠깐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 같긴 해요.

루게릭 환자 연기, 살빼기 전쟁

-<내 사랑 내 곁에>의 백종우는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영화가 진행될수록 몸이 점점 굳어가는 인물입니다. 배우로서는 신체 표현의 도구를 점점 줄여가며 연기를 해야 하니 큰 부담이 아니었을까요. =그 부담 자체를 무기로 생각한 거죠. 예를 들어 외과의사 역을 할 때에는 수술하는 모습이 얼마나 리얼한가가 무기예요. 아무리 다른 연기를 잘해도 수술장면이 엉성하면 사람들은 그 인물을 의사로 보는 게 아니라, 김명민이 의사를 연기하고 있다고 인식하니까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답답했던 건 표현력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제가 뭔가를 배우면 해결되는 연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계속 몸이 말라가고 진짜 마비가 진행되는 환자처럼 보이는 것이 무기였는데, 그건 미리 준비를 해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시작은 72kg에서 했는데 과연 한달 뒤, 3개월 뒤에 몇 킬로그램이 될 것인가 하는 불안에 나 자신을 끝까지 불신했죠. 그런데, 중압감 때문인지 살이 빠지더라고요. 촬영 시작 20여일 만에 10kg이 줄었어요. 도리어 촬영 속도보다 감량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문제였죠. 나머지 2개월간 어디까지 내려가야 계속 마르는 것처럼 보일지 고민했어요. 결국 내가 기준을 정하지 말고 누군가 그만두라고 말릴 때까지 그냥 계속 내려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백종우 같은 캐릭터의 위험은 자칫하면 성격이 보이지 않고 병만 보일 수 있는 점 같습니다. 병과 별도로 종우라는 인물이 원래 어떤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정하셨습니까? =낙천적인 인물이죠. 나중에 대뇌신경에도 장애가 미쳐서 우울증이 오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증상일 뿐이고 백종우는 원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단단하고 의욕이 강한, 그래서 먼저 여성에게 프러포즈도 할 수 있었던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내 사랑 내 곁에>를 준비하면서 감독님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씨 인사이드> 등 영화 몇편을 추천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기존 영화 중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는 없었어요. 루게릭병에 대한 영화는 단 한편도 없더라고요. 야구선수 루 게릭의 다큐멘터리를 보긴 했지만, 병명의 유래에 대한 정보를 얻은 정도예요. 한양대병원에서 준 자료 정도를 제외하면 데이터가 너무나 부족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구할 수 있는 건 전부 파킨슨병과 뇌졸중에 관련된 자료뿐이었죠. 실제 환자분들을 만나서 얻은 도움이 가장 컸지만, 그 또한 원하는 만큼 제가 취재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거든요. 환우분 가족들로선 거부감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왜 루게릭병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왜죠? =마지막에는 손목이 7, 8살 아이들보다 더 가늘어지는데 CG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배우도 어차피 사람인데 이 역할 끝나고 다른 작품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몸이 도구인 직업이니 더욱 위험한 것 같았어요.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다그치고 채찍질해주는 연출자가 좋다

-김명민씨는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이고, 촬영에 들어가면 병을 얻을 정도로 힘들게 연기하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심적으로 고생을 덜한 작품은 결과가 별로 안 좋았다. 내가 힘들고 괴로웠던 만큼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요. 혹시, 자신을 호되게 혹사하지 않으면 일을 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유형인가요? =혹사하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아요. 무식한 스타일인 거죠. (웃음) 연출자가 저를 믿고 의지하는 건 싫어요. 내가 부족하다고 자꾸 다그치고 채찍질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어땠어요?” 여쭤봤을 때 “어, 너무 좋아” 그러면 뭔가 불안해요. 그렇다고 전체를 보는 감독 앞에서 배우가 매번 욕심부리며 한번 더 가자고 떼쓸 수도 없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이러저러하게 바꿔서 달리 한번 해보자”고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긴장하지 않고 연기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스타일의 동료들이 부럽기도 하겠습니다. =엄청 부럽죠. 민망하기도 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쉬는 시간에 말도 안 하고 책 들이파다가 시험 보면 점수가 별로잖아요. (웃음) 전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걸 어쩌겠어요.

-학창 시절에도 숙제부터 해치우고 노는 편이었나요? 해야 할 일들이 있으면 가장 힘든 과제부터 해결한다거나 식탁에서 맛없는 음식부터 먹는 습관이 있진 않았고요? (웃음) =왜요.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죠. 금방 없어지잖아요. 방학숙제는 모 아니면 도였어요. 방학식 날 해치우거나 개학 전날 몰아서 했어요. 방학식 날 <탐구생활> 다 해버리고, 나가서 곤충 다 잡아오고 일기도 한달치를 몽땅 써놓았어요. (좌중 폭소) 경험을 통해 보면 방학이란 것이 굉장히 짧단 말이죠. (웃음)

-교회 연극, 그러니까 성극이 최초의 연기 경험인가요? =유치원 다닐 때 꼭두각시 연극을 하면서 무대란 곳에 처음 섰다가 큰 호응을 얻었어요. 교회 연극에서는 예수님, 베드로, 요한 역 등 두루 해봤고 목사님 가운 뒤집어쓰고 사탄 연기도 해봤어요.

-어린 나이에 무대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는 앵글이 낯설진 않았나요? 한 사람이 다수 시선 속에 있는 상황이 처음부터 편안했습니까? =오히려 앞에 사람이 없으면 공연하기가 싫었어요. 제가 춤을 잘 춰서 친척 모임부터 교회 수련회, 학교 소풍 등 사람 모이는 자리면 무조건 불려 나갔어요. 마이클 잭슨 춤을 잘 추는 다른 친구 한명과, 막춤 추는 제가 항상 듀엣으로 나섰던 기억이 나요. 그 인기로 반장도 되고 ‘뭐가 빛나는 밤’류의 학교 행사마다 연극을 했어요. 연극 연습하느라 밤 11시, 12시에 귀가하곤 했어요. 지구별 성극대회 출전 준비도 하고요.

-세상을 바라볼 때 기독교 신앙이 여전히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나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면 반대로 나아가기도 쉽잖아요.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과 많은 분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반항의 시기는 있었죠. 모태신앙이라 왜 내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을까 불만도 있었고요. 가족이 이른바 8학군 지역에 살았는데, 교회가 멀다는 한 가지 이유로 제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 수색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교육이나 부동산 투자에는 부모님이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거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나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참으로 어이없이 당했다는(?) 생각을 했죠. (폭소)

-일찍부터 관객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 셈인데, 남을 설득하는 데 얼마간 자신감이 있었겠어요. =제 어린 시절은 딱 반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골목대장 노릇을 6년쯤 즐겁게 하다가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진 중3, 고1부터 고통스러운 시기로 접어들었어요. 신학대 가라는 아버지, 공대 가라는 어머니 말씀을 들으며 이과 학생으로 생활하다가, 진로 선택할 때가 닥치니 더 감추지 못하고 제 의사를 밝혔죠.

-서울예대와 극단을 거치면서 다양한 연기수업을 거쳤을 텐데, 어떤 훈련이 가장 유용했는지 기억할 수 있나요? =내가 고양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하고, 별의별 훈련을 다 하죠. 내 몸을 이완하는 신체훈련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몸의 모든 근육이 긴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 부분이라도 불편하면 절대로 연기가 나오지 않아요. 연기는 완전히 편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이완되기 위해선 몰입해야 해요. 몰입하면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못 느끼거든요. 몰입에 실패하면 어깨부터 자세가 불편하고 손 하나 올리는 것도 어떻게 올려야 할지 모르고 다 계산을 해야 하죠.

-하긴 전문 연기자와 비전문 연기자의 가장 큰 차이가 손 처리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손은 가장 큰 장애예요. 풀숏(전신이 잡히는 숏) 연기가 몹시 힘들거든요. 솔직히 바스트숏은 진실성을 갖고 눈빛으로 표현하면 전달되는데, 풀숏은 눈빛이 안 보이잖아요? 몸에 힘이 들어가면 안되고 손끝에서도 감정이 나오니까 풀숏을 보면 다 들통나요. 저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어요. 어떨 때는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니까요! 주머니에 손 넣은 연기, 정말 보기 싫은 연기 중 하나인데 본인이 알아도 손을 처리할 방도를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연기자가 풀숏에서 주머니에 손을 몇번 넣다빼는지 세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배우는 진열돼 있는 상품”

-SBS 6기 공채 탤런트가 되기 전에는 연극을 하셨지요? 술도 마시지 않고 연습만 했을 것 같은데요.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드려야 했어요.열심히 공부했고 4학기 동안 80% 정도 장학금을 받았어요. 저처럼 학교와 도서관에만 매달리는 건 드문 경우였는데 선배들한테 “그런다고 졸업하고 할 게 있는 줄 아냐? 선배들 잘 쫓아다니는 게 남는 거야”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한귀로 흘렸어요. 당시 저는 연극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무슨 출세를 빨리 하겠다고 돌아다니며 술 마시고 어울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 학교에 탤런트 형들이 오면 후광이 비쳤어요. 잘생기기도 했지만 공채 기수 탤런트라는 사실 하나가 성공의 기준이었거든요.“애들아, 안녕” 하면 다들 쓰러졌지만 저는 무덤덤했죠. 그러다가 극단 생활을 하면서 조금 이해가 됐어요. 코러스와 단역만 계속하다 보니 이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내가 극단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가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리겠다는 걸 절감하겠더라고요.

-극단의 길이 끝이 안 보여서 방송사로 눈을 돌리신 건가요? =생각이 없었는데 매형이 원서를 갔다줬어요. 그냥 잊고 있었는데 마감 하루 전날, 매형이 SBS 근처에 갈 일이 있으니 접수하겠다며 사진을 갖고 오라는 거예요. 집 장롱 앞에서 찍은 사진을 붙여 냈죠. (좌중 폭소) 나중에 합격한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스튜디오에서 100만원, 50만원 주고 찍었더라고요. 붙은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심사하신 분들이 조신 건지, 풀을 많이 칠해서 서류가 딸려간 건지. (웃음) 면접 땐 정장 차림을 요구했는데 양복이 한벌도 없었어요. 전날 밤 시장에서 유일하게 문 연 양복점에 들어가 사이즈 맞는 옷을 샀는데 시골 아저씨들도 안 입을 촌스러운 양복이었어요. 거기다 베스트까지 맞춰 입고 주황색 넥타이 매고. (웃음) 본의 아니게 코믹한 사람이 된 거죠. 주변은 모두 F4 같은 꽃미남뿐이었는데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내가 할 것 하고 왔는데 붙었어요. 믿기지 않았죠.

-배우의 길을 일찍 선택해 한눈팔지 않고 걸어왔는데 오랜 시간 방송사에서 단역만 하게 되니 나는 어떤 부류의 배우일까,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생각이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이러실 거면서 저를 왜 뽑은 거예요?” 물으면 “넌 어디 가져다놓아도 쓰기가 좋아서”라는 말을 들었어요. 쓸모가 많아서라는 거죠. 애초부터 주인공 외모는 아니고 단역으로 쓸 의도였다는 거죠. 잘생긴 친구들은 단역으로 불러다놓으면 너무 튀어요. 웨이터가 주연보다 잘생기면 주의를 끌잖아요. 그런데 전 웨이터 옷 입혀놓으면 웨이터, 의사 가운 입히면 의사, <임꺽정>에서 산적 분장하고 가면 “쟤, 정말 산적이냐” 하는 소리 들었거든요. 친구들이 전화해서 늘 촬영하느라 바쁘다는데 대체 어디 나오는 거냐 물었어요. 적어주기도 했죠. 50분짜리 드라마의 45분에서 50분 사이에 나오니 그때는 화장실 가지 마라, 나 지나갈 거다. (웃음) 영화 오디션 볼 때는 제가 나온 짧은 장면을 편집해서 비디오를 제출했고요. 내가 어떤 배우냐, 무슨 길을 갈 거냐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냥 그게 제 길이었어요. 배우는 진열돼 있는 상품이에요. 복숭아 몇개가 있는데 손님이 집으면 팔리는 거고, 아무도 집어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썩어가는 거예요. 그저 매일같이 방송국에 출퇴근하면서 인사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드라마 제작국이란 곳이 좀 편해지긴 했어요. 조감독 형들이 반겨주고 그분들의 SBS 패스 가지고 공짜로 밥 먹고 그런 맛에 간 거죠. 아는 조감독 형이 “나 이번에 단막극 하나 하는데 너 하나 해라” 하거든요. 대본 달라고 하면 대사 없다고 안 줘도 된대요. (웃음) “그래도 미리 분위기 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괜찮대요. 가보면 정말 분위기 파악할 것도 없이 뒤에서 왔다갔다만 해요. 야외촬영 한번 나가면 야외비 10만원에 출연료 바우처를 받아요. 동기들끼리 따먹기하고 한명 몰아주기해서 밥먹고 술마신 추억들이 있죠.

인물의 본질에 들어가는 요소를 찾아서

-<소름>이 최초의 영화입니다. 주인공 직업을 익히느라 강동구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한달 하셨다면서요. =28일 정도 한 거 같아요. 제가 맡은 인물이 약간 이상 성격이기도 하고 다른 요소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미리 준비할 수는 없는 부분이니까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경험해보려고 했죠. 손님을 태우는 신, 회사에서 동료와 있는 모습이 영화에 나왔으니까요.

-배우마다 캐릭터에 진입하는 입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말투부터 마스터하는 배우도 있고 걸음걸이에서 감을 잡는 배우도 있고요. 김명민씨는 직업인가요? =인물마다 다르죠. 그 본질에 들어가는 첫 번째 요소를 찾죠. 천재 외과의사고 매회 수술장면이 나온다면 그게 최우선이죠. 수술을 자유자재로 못하면 성격을 표현하려고 해도 액션이 방해해요. 대본은 임박해서 나오는데 수술하면서 대사하고 감정 표현하고 상대배우와 톤 맞추고 감독 디렉션까지 반영하려면 더블액션은 다 어긋나고 엉망되는 거예요. 요컨대,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밥 먹듯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소름> 당시 TV연기자로서 처음 영화를 하면서 서운한 경험이나 적응하기 힘든 상황은 없었습니까? =지금도 그런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는 영화배우는 배우고 TV연기자는 탤런트로 딱 구분짓는 분들이 많았어요. 영화인들만의 자부심이 강했죠. 감독님이 말씀하실 때도 “진영이(상대역 장진영)는 영화를 많이 해봐서 알겠지만” 하고 서두를 꺼내시곤 했어요. 나중엔 제가 먼저 “감독님, 전 영화를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하면서 말문을 열었죠.

-촬영하거나 출연을 결정했던 몇몇 영화의 제작이 중단됐습니다. <선수 가라사대>와 <빅하우스 닷컴>, 그리고 부상까지 당했던 <스턴트맨>이 있었죠. 그런 사태가 반복되면 배우로서 내가 그 원인 중 일부인가 고민하기도 할 것 같은데요. =일부가 아니라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턴트맨>은 예산이 60억원이 좀 넘는데 85%나 찍고 중단된 것은 진짜 말이 안되거든요. 15%가 투자되지 않아 완성을 못한다는 건 배우가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거예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제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고 비슷한 소문도 들었어요. 당시 앞서 나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가 줄줄이 실패하면서 투자자들이 발을 빼기도 했지만, 배우가 톱 클래스여서 아깝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을 거예요.

칭찬과 불신 모두 연기에 탄력을 준다

-<불멸의 이순신>를 촬영할 때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늘 지니고 다니면서 읽으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인물의 내면적인 톤을 다잡기 위해서였나요? 지금도 기억하는 문장이 있습니까?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심리가 아주 잘 표현돼서 인물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예컨대 ‘왜군들이 눈보라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표현은 상황 묘사이지만 바라보는 장군의 감정이 들어 있는 거죠. 악몽을 꾸는 장면 같은 건 지금도 기억이 나요.

-<불멸의 이순신>은 무려 104회에 이르는 대작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순신은 한결같은 인물이잖아요? 긴 시간 이순신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고통이나 즐거움도 인물의 그것과 궤를 같이했나요? =50회 즈음 제가 몸에 익은 매너를 겉으로만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가장 깊은 슬럼프에 빠졌어요. 어느 정도 기교가 생기니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불필요한 보통 장면에서는 그냥 암기한 대로 읊는 제 모습이 느껴졌거든요. 토·일요일에 두권의 대본이 나오는데, 저는 월요일 아침 7시부터 새벽까지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서 화요일부터는 배 타는 장면, 야외 장면을 다 찍는 거예요. 월요일에 스케줄을 보면 소화할 분량이 너무 많아 메슥거릴 정도로 온통 순신의 출연분이었어요. 저는 줄곧 앉아 있고, 상대 배역들만 계속 바뀌어 들어오는 거죠. 제 분량이 80% 이상이니까 제가 NG를 내면 하루에 스튜디오 촬영분이 끝나지 않아요. 그때 식도염이 생겼어요. 그런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니 관성이 생긴 거죠. 어떤 감정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고, 정말 연기 못한다고 생각해서 무척 괴로웠는데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야, 이젠 너 완전 이순신이야!” 하고 칭찬하는 거예요. 하하. 그러니까 자기가 느끼는 연기의 만족도와 남들의 눈은 완전 다른 거예요.

-<불멸의 이순신> 당시 한 인터뷰에서 ‘갑옷의 무게’라는 말 대신 ‘갑옷의 깊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중에서 제가 계급에 맞춰 여러 종류의 옷을 입었는데 옷마다 실제 무게가 달랐어요. 마침내 수군통제사의 옷을 입었을 때 무게도 가장 무거웠지만 그 이상의 깊이를 느꼈어요. 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의 심적 깊이겠죠. 임진왜란 발발 이후 모든 전투와 거기 따르는 장군의 갈등과 불안이 담겨 있었을 거예요.

-<불멸의 이순신> 제작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테이크 사이에서 NG 때문에 우스운 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김명민씨는 활짝 얼굴을 풀지 않더군요. =으하하 웃고 나서 금세 다시 (무게 잡은 목소리로)“여봐라”가 안되잖아요. 되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연출자가 시간을 충분히 주고 “다 웃으셨어요? 그럼 촬영 들어갑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요. (웃음) 바로 어디서 큐 사인이 나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경망스럽게 웃다가 톤을 놓쳐서 전 테이크와 어긋나면 큰일이니까요. 그런 여유가 있는 배우가 부럽긴 한데 전 그게 무조건 안돼요.

-앞서 연기의 성패에 자신감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연기자의 자신감은 시청자와 관객의 칭찬에 크게 힘입는 거라고 짐작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기력을 처음 널리 인정받은 <불멸의 이순신> 이후에 연기 자체가 탄력을 받은 면은 없나요? =칭찬과 불신, 두 가지 모두 연기에 탄력을 줘요. 남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때에도 그 나름대로 에너지를 받아요. <불멸의 이순신> 하기 전에 말 엄청 많았어요. 인터넷 용어로 뭐라더라, ‘웬 듣보잡이 갑자기 나타나 이순신을 한다니 안습이다’라는 말 진짜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무조건 칭찬받는다고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나를 불끈하게 하는 뭔가가 필요하기도 해요. 그래서 전 ‘땜빵’에 신경 안 써요. ‘땜빵’이란 어느 배우가 이 역을 한다고 기사까지 난 다음에 그 사람 대신 제가 연기하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요. 보통 배우들이 자신이 1순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걸 꺼리거든요. 저는 거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불멸의 이순신> 초기에는 기대가 너무 없어서 외려 편했어요. 더 잃을 게 없잖아요. <불멸의 이순신> 이후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그 다음에도 걱정이 많았어요. 얼마 전만 해도 현대극 조연하던 연기자라 사극이 안 어울리다던 분들이, 이제 쟤는 사극만 어울리니 다음 작품이 큰일이라고 염려했어요. 주변은 언제나 걱정투성이예요. 거기 신경쓰다 보면 아무것도 안돼요.

장준혁은 많은 공감받은 캐릭터

-<불멸의 이순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씨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단한 선동가이고 연설가예요. 웅변, 즉 전형적인 억양의 비현실적이리만큼 잘 짜인 대사는 생경하게 들리잖아요. 그런 대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일단 호소력있는 목소리 덕이 좀 있어요. 둘째는 아무리 마이크 성능이 뛰어나서 조그만 소리까지 잡아낸다 해도 배우가 내 앞에 100명이 있느냐 1천명이 있느냐에 맞춰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 물어봐요. 이 장면에서 제 앞에 군사를 몇명이나 배치하실 건가요? “지금 조합 배우가 한 500명 왔는데 CG로 1천명을 만들 거다.” 그러면 단상에 올라가서 1천명을 기준으로 발성해요. 지금처럼 기자님 한분한테 말하는 제 톤과 서너명을 상대로 말하는 톤도 다르거든요. 거리도 변수가 되고요. 1천명의 병사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니까 호흡도 더 깊이 발성도 더 최대한 뿜어내겠죠? 맨 뒷줄 병사한테까지 내 목소리가 독려하는 힘이 되어야 하니까요. 뒷줄 병사가 안 들려서 “아, 장군이 지금 뭐래? ”그러면 안되잖아요. (좌중 폭소) 마이크 볼륨도 알아서 조정하겠지만 배우가 마이크에 의존해서 속삭이듯 연설하면 시청자한테도 고스란히 전달돼요.

-지휘자, 단체의 리더 역할을 유난히 자주 맡으십니다. 심지어 드라마 <불량가족>에서 건달인 오달건으로 분했을 때조차 사람들을 모아서 계획을 지시하고 지휘하는 역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에게 처음 각인된 역할이 리더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순신을 한 여파가 있는 것 같아요. 타고난 제 성격도 조금은 영향이 있고요. 가령 여럿이 모여서 뭘 먹으러 갈까 의논하는 상황이 되면, 두루 물어본 다음에 결국 내 의견대로 하게 돼요. 독단을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통 ‘아무거나’라는 답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결정은 제가 하게 될 때가 많아요.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막판에 담관암에 걸립니다. 그 설정이 없었더라도, 그가 무너지기를 우리가 실은 바라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만큼 큰 동정은 안 했겠지만 솔직히 병이 아니었더라도 장준혁에게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부교수 시절부터 장준혁 편을 드는 시청자가 많았어요. 외과 과장이 됐을 때 많이들 좋아하셨고 축하 전화며 꽃다발도 받았어요. (웃음) 시청자가 장준혁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싶어서 매우 기뻤죠. 장 과장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를 연기한 전 더더욱 그렇게 생각해요. 답답한 건 그에 반대하는 쪽 사람들이죠.

-법정장면이 기억나는군요. 후배 의사 염동일이 증언을 번복하는 순간 장준혁의 표정은 충격이나 반성의 빛을 띠는 게 아니라 ‘뭐 저런 어리석은 것이!’ 하는 투였어요. (웃음) =(진지하게) 아마 염동일이나 최도영처럼 살라면 답답해서 죽을 거예요. 가족들도 고생할 거고요.

-확고하시네요. (웃음) 전문가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까 광역수사대 형사들과 수사권 문제도 이야기하고 의사들과 새로 나온 수술법을 논한 경험도 있다고 읽었습니다. 전문가 세계에 잠깐 발목까지 담그고 나오는 기분이 어떤가요? =배우의 굉장한 특권이죠. 공부와 독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상식과 지식이 늘고 조금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우습지만, 예컨대 의료분쟁 생기면 의사 편에 마음이 가요. 누가 병원엘 갔는데 3시간 기다려서 몇분 진찰 못 받았다고 불평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돌팔이한테 가. 명의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한명한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너한테 필요한 게 위로야, 완치야?”라고 막 흥분해서 말했죠. (웃음)

인위적이라는 반대 무릅쓰고 강마에 외모 설정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김명민씨의 연기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연기를 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한국에 없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본을 받아들고는 당황했어요. 다른 캐릭터는 현실적인데 강마에 대사는 전부 다 아주 비현실적이고 만화에 나오는 말들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외화 생각이 났어요. 특히 <아마데우스> <불멸의 연인> 같은 음악영화,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를 그린 서양 역사극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강마에랑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솔직히 답습했어요. 외화는 다른 문화권 캐릭터니까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강마에는 한국 캐릭터니 거부감은 있을 수 있겠다 각오했죠.

-전작인 <하얀 거탑>의 장준혁 같은 카리스마형 캐릭터인 만큼 차별화도 고민이 되셨겠죠. 눈썹, 헤어스타일, 더블 버튼 정장 등 분장과 의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신 건가요? =남자배우는 외모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아요. 헤어스타일이 고작이죠. 그런데 제가 본 고집스러운 지휘자들은 눈썹이 다 올라갔더라고요? 그래서 인위적이라는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작위적으로 만드는 것,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라고 했죠. 아이로니컬하게도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니 음악하시는 분들이 “우리 지휘자 선생님하고 아주 똑같아요.” 그러는 거예요. (웃음)

-정말 강마에는 외화 더빙하듯 대사를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톤이 성우들의 외화 더빙과 비슷했다면 발성은 입천장을 혀 뒤쪽으로 막은 듯한 소리였는데요. 드라마 내내 그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작위적 느낌을 극복할 자신이 있었나요? =<베토벤 바이러스>를 어쩌다 한번 보시는 분들은“지금 뭐하는 거야? 어색하게 왜 저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보통 지휘자들이 악기를 공부한 분도 있고 성악을 한 분도 있어요. 강마에는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한 사람이지만 전 거기 성악을 접목했어요. 성악을 한 사람은 말을 해도 조금 ‘오버스러운’ 게 있거든요. 장준혁이 지금 저와 같은 톤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하는 분은 일상적인 말도 항상 배에 힘을 주고 말해요. (별안간 강마에 음성으로) “아, 그러세요? 그럼 제가 내일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죠. (좌중 경탄) 또 하나는 대사 스피드예요. 미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대사가 빨라서예요. 같은 길이의 한국 드라마보다 대본이 훨씬 두껍죠. 저는 대사를 지나치게 여유롭게 내뱉는 방식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 빠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는 대본은 늦게 나오고 긴 대사는 꼬여서 설정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캐릭터를 바꿀 순 없었죠. (웃음)

-강마에라는 인물은 포디엄에 올라가 단원들을 내려다보면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부작용이 있어요. 언젠가 100여명의 팬이 촬영장을 방문했는데 제가 자연스럽게 단상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좌중 폭소)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서 다시 내려왔어요. 사실 그런 장면은 배우들이 부담을 가져요. 다들 앉아 있고 혼자 떠드니 NG가 났을 때 몹시 창피하거든요.

배우는 아는 것이 많아야

-어려서부터 연기했지만, 그래도 배우로서 결정적인 문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남의 눈을 의식하기를 그만두고 몰입할 수 있게 됐습니까? =자신감이 생겨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내가 하려는 것, 내 안에 있는 것만 생각나요. 반면 불안하면 온갖 것이 보이고 신경이 쓰이죠. 그게 보는 사람 눈에 바로 티가 나요. 내 귀에 내 대사가 들리면 잘못된 거예요. 내 입으로 말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몰라야 제대로 된 거예요. 내 귀엔 상대방 대사만 들려야 해요.

-분류한다면 역할 속에 들어가 자기를 지워버리는 유형의 배우입니다.그러나 카멜레온이 되는 것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잖아요? 내가 지닌 몸의 육체적 한계가 있고, 내 안에 역할과 공명할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한계 지점이 있을 테고요. =한계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죠. 대본을 보면 어미도 이상하고 내 입에 너무나 안 맞을 때가 있는데 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그대로 해요. 만약 그 대사를 제 입에 맞게 바꾸면 김명민이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미 제가 해왔던 것이란 뜻이니까요. 작가가 대사를 썼을 때는 어미 하나나 조사 하나에 의도가 있는 거예요. 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다 외워요. 그러다 보면 김명민이 아닌 그 인물의 성격이 어느새 만들어져요.

-메소드 연기는 캐릭터에 부합하는 정서적 기억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자기 안에서 역할과 연관된 감정을 찾는 작업과 역할을 자기가 아는 감정에 맞추는 건 다르겠지요? =완전히 다르죠. 솔직히 저도 얼마 전까지는 눈물 흘리는 신이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일을 상상한다거나 예전의 슬펐던 일을 상기한다거나 하면서 눈물을 만들어냈는데, 그렇게 하니까 제가 어떤 역을 하건 우는 신은 눈물의 질감이 똑같아져요. 그게 아니라 강마에가 운다면 어떻게 울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죠. 눈물이 고일까, 티내지 않으려고 애쓸까 상황에 맞추니까 예전보다 쉬워졌어요.

-좋아하는 배우로 로버트 드 니로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드 니로의 연기가 항상 최고는 아닌데, 어느 시기 드 니로를 말씀하신 건가요? =<성난 황소> <택시 드라이버>의 드 니로죠. 뭐, <히트>도 좋았어요. 드 니로는 가진 역량이 넘치는 배우인데 사생활은 좀 복잡하죠. 명배우들이 그런 것이 좀 있어요. 훌륭한 배우는 마치 반드시 사생활이 복잡해야 하는 것처럼. 근데, 전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삶을 방기하면서까지 연기의 에너지를 얻고 싶진 않다는 말씀이군요. =예전에 “넌 너무 고지식해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연예인들끼리 어울려 술 마시는 시간이 솔직히 참 아까워요. 그저 술, 남는 건 속쓰림인데 그 시간에 책 한자, 영화를 한편 더 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도움이 안되는 걸 알지만 즐거워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웃음) =물론 저도 그럴 때가 없진 않아요. 그런데 그런 생활이야말로 마치 진짜 배우의 삶인 양 보는 시선엔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 중학생 때 저는 나대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 몰고 다니며 놀기를 즐겼거든요. 오프라인(무대 밖)의 끼였죠. 그런데 학교 연극반에 너무나 조용하고 침착하고 항상 책 보고 글을 쓰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애와 같이 연극을 하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그 애 안의 에너지는 장난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 충격을 받고 지금껏 명심하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의 끼와 온라인(무대 위)의 끼는 다르다는 거예요. 잘 놀고 말재간 있으면서 연기 잘하는 이도 있지만 놀기만 잘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거든요. 그리고 배우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追伸 비대칭으로 일그러지는 입술, 날카로운 삼백안, 눈을 치뜨면 11자를 그리는 이맛살. 김명민의 얼굴에는 냉소가 썩 잘 어울린다. 선뜻 기뻐하지도 쉽게 낙망하지도 않을 사람 같다고 짐작하자, 김명민이 끄덕인다.“ 매니저들이 즐거운 일이 있어서 좋아하면 진정하라고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예상했던 거 아니냐고 해요. 시니컬하다고 소문이 났죠.”방영 중인 드라마가 호의적 반응을 얻는 경우라 해도 작업하는 동안은 행복을 느끼는 일이 드물다는 이 배우가 느끼는 충족감은 “걱정한 것보다는 괜찮다”가 고작이다. 그는 좋은 연기를 위해 무척 안달하면서도 실패의 상상에 진저리치지 않는다.“항상 저라고 잘되란 법 있나요?” 단역 연기가 일의 전부였던 지루했던 시기를 “달걀로 바위 치는 시간”이었다고 묘사하면서 당시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하여 깨지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잘라 말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색을 들여다보았지만 비꼬는 기색은 없었다. 거기에는, 결국 인생은 대단히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더분한 냉소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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