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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서지후] 힘내서 열심히 사랑했어요
장미 사진 오계옥 2009-12-18

<친구사이?>의 이제훈과 서지후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 미열이 감돌았다. 예고편을 확인한 관객이 개봉 전 팬클럽을 결성했다는 소문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친구사이?>는 ‘샤방샤방한 게이로맨스’를 표방한 영화다. 웃지 않아도 해사한 주인공들은 아름다움 역시 재능의 일종이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실감케 만든다. 그러나 ‘샤방샤방’하다 해도 <친구사이?>는 엄연히 ‘게이로맨스’요, 청년필름 대표이자 영화감독인 김조광수는 한국에서 커밍아웃한 몇 안되는 동성애자다. 석이(이제훈)는 면회신청서에 ‘애인’이라고 썼다가 누가 볼세라 뒷면에까지 볼펜으로 줄을 긋고, 민수(서지후)는 “무슨 관계냐”고 묻는 그의 어머니에게 “초등학교 친구”라고 답하는 석이를 저지하지 못한다. 군 입대조차 사소한 장애로 여기던 두 청년은 눈물을 삼키면서 노래 부른다. “엄마! 난 남자가 좋아요.” ‘친구 사이’라는 이들의 설명엔 주저하듯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신인배우인 이제훈과 서지후에게도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애초 석이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동성애 연기에 대한 부모의 반대로 하차하고, 광화문에서 키스신을 찍던 그들을 향해 지나가던 외국인이 “하늘이 보고 있고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호통쳤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청년은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이 출연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근심거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전 약간 무뚝뚝한 남자예요. 전형적인 공대 스타일. 민수는 상당히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밝고. 주위에서 반대를 하더라도 내 고집으로 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한테도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했어요. 첫 연기거든요.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하고 나면 어떤 배역이라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서지후) “가족들에게 알리기 전에 걱정했는데, 이참에 너의 연기력을 검증받아보라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우리 세대에도 그런 분들이 많았다면서. 그분들한테 누가 되면 안된다고, 오히려 달달 볶으시던데요.”(이제훈)

‘순도 99.9%’를 지향하는 멜로영화에서 핵심은 역시 사랑이었다. 첫 촬영 때 홍대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달음박질하는 장면을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반복해 찍은 그들은 김조광수 감독의 시범 연기에 단번에 깨달았다. “우리가 육상선수처럼 뛰었구나!” 촬영 두달 전부터 감독과 자주 만나 부쩍 가까워졌고, “애인 같다기보다 친구끼리 장난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들었다는 84년생 동갑내기 배우 중 서지후가 말했다. “이 친구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근원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항상 사랑스럽다고….” 두 배우 모두에게 첫 도전이었던 베드신을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은 이제훈은 말했다. “촬영 전날 감독님이랑 셋이서 어떻게 찍을까 논의하다가 미리 계산하는 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하는 감정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장면이잖아요. 최소한의 동선만 갖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감독님도 그게 좋겠다고 하셨고. 이것도 굉장히 여러 번 찍었어요. 할 때는 힘을 내서 열심히 사랑하고 그랬는데, 감정이 소모된다고 할까. 신체적인 변화도 생기고. 입술이 튼다든지. 몸도 울긋불긋해지고.” “나도 다음날 멍이 들어 있더라고.”(서지후) “미안하더라.”(이제훈)

아무래도 친숙한 쪽은 한예종 연극원 재학생으로, <약탈자들>과 단편 몇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올린 이제훈이다. <약탈자들>에서 호색한이자 표절가요, 친일파의 자손이자 살인무예 전승자 등 종잡을 수 없는 전력의 상태라는 인물의 아역으로 출연했는데, 미소가 천성인 듯한 이 청년의 어디에 그런 괴이함이 숨어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윤성현 감독님의 <파수꾼>에서 주연을 맡게 됐어요. 영화아카데미 독립장편이예요. 내년 1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요. 저 친구가 나왔더니 굉장히 설득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잘 소화하고 싶어요.” 유난히 크고 까만 눈동자가 인상적인 서지후는 큰 키에 걸맞게 모델 출신이라고 했다. “의장대에 있다 보니 운동하시는 분들도 많고. 모델의 세계도 그때 알았어요.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서 2년 정도 활동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연기는 정말 행복을 느끼면서 하는 그런 일이에요. 강하면서 잔인하면서 또 웃긴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묘하게 대조적인 두 청년의 대답이 훌륭한 화음으로 메아리쳤다. 맞다,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더없이 즐겁다는 이들의 미래엔 물음표가 아니라 확실히 느낌표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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