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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아이콘] 이상한 대한민국의 ‘형이상이상학’

파타피직스 서설

‘파타피직스’(pataphysics).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학문으로, 이 용어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1873~1907)다. 예민한 어감의 소유자라면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metaphysics)의 패러디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메타피직스를 흔히 ‘형이상학’(形以上學)으로 옮기나, 사실 ‘메타’(meta)는 ‘이후’라는 뜻. 그리스어에서 ‘이상’을 가리키는 것은 ‘파타’(pata)다. 따라서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파타피직스야말로 진짜(?) 형이상학인 셈이다.

‘형이상학’은 감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탐구한다. 즉 그것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감각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들의 위에 서 있다. 학문들 중의 학문을 자처하는 이 메타 학문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것을 굽어보는 최고의 학문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파타피직스다. 한마디로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 위의 학문, 즉 형이상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메타피직스가 과학적 증명의 의무에서 자유롭다면,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을 구속하는 논리학마저 초월한다. 대체 무슨 학문일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파타피직스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혹은 과학)을 가리킨다. 파타피직스는 1948년 프랑스에서 ‘파타피직스 학회’가 만들어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후안 미로와 마르셀 뒤샹, 외젠 이오네스코와 장 주네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학회의 초기 멤버였으며,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도 인생의 한동안 자신을 파타피지션(pataphysicain)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소설에 사이비인용을 이용하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대표적인 파타피지션 중 한 사람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파타피직스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예술적 유희에 가깝다. 미로와 뒤샹의 참여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다다이즘이 연출하던 부조리와 무의미 미학을 닮았다. 그것은 어쩌면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다다이스트 퍼포먼스인지도 모른다. 우리 일상에서도 파타피직스에 근접한 예를 볼 수 있다. 가령 인터넷 유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생각해보라. 이 유머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자기만의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먼저 전산학의 방법.

“‘코끼리’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킨다. 그럼 ‘고기리’가 나온다. ‘고기리’에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한다. 그럼 ‘리고기’가 된다. ‘리고기’를 증폭비 5인 Non-invert OP-Amp 회로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5·리고기’가 된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이어 양자역학의 방법. “코끼리가 자신을 이루는 입자를 두개씩 짝짓는다. 스핀이 1/2의 정수배인 페르미온은 한 공간에 둘씩밖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스핀이 정수배인 보존은 한 공간에 무한히 들어갈 수 있다. 즉, 모든 페르미온을 둘씩 짝지어 정수배 스핀으로 만든 뒤 한 장소로 모아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이 농담에 ‘진중권 버전’도 있다. 코끼리를 향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외친다나? 잘못 알려진 것이다. 내 방법은 따로 있다. 코끼리에 대해 “네 몸매는 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도 없다”며 고약한 수사학을 동원해 악평을 한다. 그럼 수치심을 느낀 코끼리가 제 발로 냉장고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논증은 수치심을 느끼면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심리학적 사실, 그리고 냉장고의 체적은 쥐구멍의 체적보다 현저히 크다는 수학적 사실의 뒷받침을 받는다.

파타피직스는 물론 이 가벼운 농담보다는 훨씬 더 진지하다. 하지만 심령학이나 UFO학과 같은 ‘파라사이언스’(parascience)보다는 덜 진지하다. 가령 심령학이나 UFO 연구자들은 유령이나 UFO의 존재를 믿거나, 혹은 적어도 남에게 믿게 하려 애쓴다. 하지만 파타피지션은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믿지도 않고, 남이 자기의 이론을 믿어주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연구하는 태도나 논증하는 방식만큼은 정상 과학의 그것만큼이나 진지하고 엄밀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파타피직스의 몇 가지 분야가 있다. 가령 히말라야의 설인(雪人) 예티와 북아메리카의 유인원 빅풋 사이의 유전적 상관관계, 엔젤 헤어에 대한 화학적 분석을 통해 진단해본 UFO 연료의 그린 에너지로서 가능성, 영매의 입에서 나온 액토플라즘에 대한 화학적 분석 등. 영매가 엑스터시에 도달하는 순간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하얀 액체는 그가 불러내는 죽은 사람의 형상을 취한다. 그렇다면 이 액토플라즘의 DNA는 영매의 것인가, 아니면 죽은 사람의 것인가?

영화 <스타트렉>에는 인간이 공간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양자전송(Quantum Transportation)을 이용한 이 장치가 실현되려면 몇 가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령 인간을 스캔한다는 것은 곧 그의 신체를 미립자 수준으로 분해하는 것. 이는 사실 핵분열과 다름없다. 듣자 하니 사람을 하나 전송하려면 핵폭탄 열개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한다. 이 에너지를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 역시 파타피직스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초현실의 대한민국에서 파타피직스를

우리나라에서 파타피직스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파타피직스에 대한 무지다. 꽤 배웠다는 사람들도 ‘파타피직스’를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대부분 그것을 하릴없는 장난으로 간주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메타피직스보다 높은 추상의 수준이 있는 학문이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파타피직스가 존재한다. 가령 얼마 전에 있었던 한명숙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사안은 간단하다. 곽영욱은 봉투를 의자 위에 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갖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봉투는 한명숙에게 갔다. 이 현상은 정상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그러니 당연히 패소할 수밖에. 만약에 검찰이 파타피직스를 알았다면 법정에서 다른 전략을 구사했을 것이다. 가령 문제의 돈 봉투에 동력장치와 자동항법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었잖은가. 검찰이 패소한 것도 결국은 파타피직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어떤 곳인가? 현실 자체가 초현실이 아닌가. 가령 얼마 전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본인은 분명히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문제의 발언을 들었다. 정상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다. ‘A≠A’라는 동일률 자체를 거부하는 이 현상 앞에선 형이상학도 무력해진다. 하지만 파타피지션은 외려 여기서 중요한 학적 발견을 끌어낼 것이다. 가령 성대를 통해 야기된 공기의 진동없이 소리를 전달하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매질이 존재할 가능성이라든지.

파타피직스는 인류의 진화가 낳은 최상의 정신 능력으로 정상 과학과 형이상학이 좌절하는 그 지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한국처럼 ‘현실이 곧 초현실’인 나라는 파타피직스의 발전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파타피직스 연구의 중요한 주제가 될 만한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지 않는가. 가령 우리쪽 영해를 제 방 드나들듯 해도 도저히 탐지할 수 없는 북한의 최첨단 스텔스 잠수함이 <스타워스>의 광선검으로 초계함을 매끈하게 두 동강낸 사건이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