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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섬세함을 옹호하다] 우울함이 불러온 초현실
김경주(시인) 2010-06-11

대만의 사진작가 장자오탕의 저서 <비영상필기>에서 발견한 무엇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독해야 한다.”-수전 손택

“새벽 네시 삼십분까지 야근을 하고 혼자 십삼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한 정신에 담배 한개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는 참 더디게도 올라왔다. 복도는 칠흑같이 깜깜했다. 그때 뭔가 부딪히는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코뿔소 한 마리가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닌가….” 1975년 12월5일, 장자오탕, <비영상필기> 중, 열화당문고 참조

장자오탕의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정한 형태의 집중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그의 사진이 갖는 우울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사진은 우울하다.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편집을 주관한 <타이완 사진가의 군상> 총서 중 세 번째 권에 실린 <비영상필기>(非影像筆記)는 그가 집중해온 주제가 뜻밖에도 특정 ‘사회’에 있지 않고 특정한 형태의 우울함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흔히 그를 다룰 때 나열하는 이력 따위를 들추는 일에는 별 흥미가 없지만 생소한 독자를 위해 조금만 팁을 제공하자면 장자오탕은 타이베이 반차오에서 태어나 대만 현대사를 관통하며 지난 50여년간 왕성한 활동을 해온 사진작가다. 사진 이력에 대해선 가타부타할 입장이 아니고 많은 비평가들의 의견을 모으면 젊은 시절 초현실주의적 성향에서부터 가혹할 정도의 면도날 같은 렌즈를 통해 대만의 근대사를 필름에 담은 중반기를 거쳐 최근엔 생명에 대한 성숙한 통찰까지, 한마디로 그는 우리에게 ‘늘 흥미롭고 예측 불가능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부조리한 긴장감이 꿈틀

우리에게 <글로 보는 사진-사진에 내포된 텍스트와 문화>의 저자로 잘 알려진 타이완 출신 사진비평가 궈리신에 의하면 장자오탕은 “궁극의 것을 형태로 드러내지 않는” 사진작가에 해당한다. 반세기 넘게 그를 옆에서 지켜본 궈리신은 장자오탕을 타이완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로 평가하는 세간의 근거를 자주 묵살해온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쯤되면 장자오탕에 대한 그의 열렬한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 예감된다. 아마도 그는 장자오탕의 세계를 사람들이 늘 역사와 사회 앞에 ‘진보’로 내세우는 태도에 반감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예술가의 업적은 자신이 발견한 섬세함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치유하게 하는 것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섬세함에 다가가려는 그 끝없는 모순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작품의 섬세함과 풍성한 출구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어떠한 진실로 이끌어낼 것인지는 당대가 어떠한 질문을 예술에 하고 있느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고. 궈리신은 장자오탕의 우울한 색채와 공간 등을 다룬 창작활동에 대해 “몸은 늘 현실세계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세속을 초탈한 상태에 두고자 했다”고 다소 포괄적이고 범박하게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장자오탕의 작품세계를 일관성있고 심도있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가 겪어온 대만의 시대적 상황, 1950년에서 1985년에 해당하는 국민당 정부의 매스컴 통제정책을 비롯한 장제스 정권의 극단적인 우익 반공사상과 군국주의적 정치탄압, 그로 인해 타이베이의 사상이 괴사된 대만 문화사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정치적 분위기와 사관적 배경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장자오탕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특기할 만한 구석이 많다. 초현실적이며 몽롱하다 못해 부조리해 보이기까지 한 촬영기법으로 제작된 ‘머리 없는 젊은 남자의 모습 <1962 반차오 타이베이>’이랄지, 초점이 흐린 아이들의 무거운 얼굴 <1963>에서, 토착의식이 거행되기 전 제물의 대상을 기묘한 각도로 담아낸 <신주>(1984) 시리즈의 여러 형태, 교외의 황폐하고 스산한 모습 사이로 얼룩처럼 흘러다니는 사람들을 닮은 사진들 <마궁, 펑후제도>(1979)를 보면서 우리는 원초적이며 순수한 공복감 같은 것을 느낀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시선이 사진과 인물들을 뒤덮고 있다. 처음에는 렌즈를 통해 사물의 초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확연히 느껴지지 않아서 당황하고(어쩌면 상상이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속의 시간이 차지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소외가 숨이 막힐 듯한 고요를 동반하는 세계에 참여하면서 이 작가의 심리적 강박에 다가서보고 싶은 제스처를 숨기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세간이 떠들어대듯이 시대적 상황에서 장자오탕이 ‘고뇌에서 벗어나고 속죄받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일그러진 현실을 영상언어로 담았다고 예단해버리는 행위는 우리를 얼마나 저 뛰어난 예술가의 심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인가, 긴장감을 확보하지 못하는 예술은 괴사하게 마련이다. 장자오탕의 사진에 담긴 집중력은 다른 예술가들이 쉽사리 흉내내지 못했던 부조리한 긴장감이 꿈틀거린다. 그건 자신이 체감하는 세계의 부조리를 우울한 긴장감으로 착색시킨 그의 수상술(手相術)에 해당한다.

사진 속 머리 없는 남자는 자신의 초상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진 속의 우울함과 긴장감이 서로의 내부- 적확하게 말하면 치부에 해당할 것이다- 를 드러내놓고 대화를 나눈다. 우울과 긴장은 서로 친화력을 형성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서로의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존중해주고 그 영역 안으로 작가의 눈을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의 인격, 한 인간의 고유한 울림’을 발견해간다. 장자오탕의 그러한 집중력은 자신의 시적밀도에 걸맞은 형식을 찾기 위해 렌즈 속에서 몸부림친 사고의 흔적에 해당한다. 예술가가 하나의 형식에 집중할 때는 자신의 삶에서 떼어낸 특정 현실을 특정한 영감으로 보수하기 위해 감정과 시선을 독창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전달받는 분위기는 작가가 발붙였던 창작 속의 영역, 즉 특정한 형태의 영감이라기보다는 작품에서 독자인 자신이 발견해가는 어떤 ‘벽’에 해당한다. 작품이 갖고 있는,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금기를 깨고 들어가 다른 차원을 체험하는 것이다. 한번도 발붙여본 적 없는 미지의 곳곳에서 우리는 기분 좋은 피로 뒤에 생기는 동력, 즉 ‘자아’라는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는다.

베냐민은 자신의 우울한 기질을 토성의 영향 아래서 태어났다고 기술하고 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의 작품을 떠돌며 내면의 청중이었던 우울함을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로 집중하며 자신의 글쓰기적 기질로 환원시켰다. 베냐민에 의하면 예술작품이 가진 긴장감의 끝에 선 역사는 배경 속으로 흡수되고(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유년시절>) 모든 사물에서 모호성이 확실성을 대체한다(<벤야민-일방통행로>). 초현실은 기억에서 출발하는 ‘둔함’이 특정 순간을 향한 고통스러운 ‘헌정’을 거쳐 새로운 관찰을 예언하는 파노라마적 여정이다. 우울함이 일으키는 이 여과는 종종 현실을 벗어나 있게 마련인데, 여기서 ‘벗어난 현실’은 현실을 외면하는 비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려는 초현실에 닿아 있다. 장자오탕의 작품에서 불쑥 드러나는 이미지- 비평가들이 초현실적인 특징이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는 때로 알레고리적 성격을 띤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내에 의해 작품들은 작가에게 조금씩 ‘우회’(迂回) 길들여져간다. 반차오 타이베이에서 1962년 찍힌 머리 없는 남자의 초상은 어느 황혼녘 건물 옥상에 서 있는 남자가 자신의 뒤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풍경이다. 장자오탕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것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