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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된 딸이 유괴됐다. <파괴된 사나이>
김용언 2010-06-30

신실한 목사 주영수(김명민)의 5살 된 딸 혜린이 유괴됐다. 영수와 아내 민경(박주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혜린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 8년이 지났다. 영수는 목사직을 그만두고 의료기 판매를 하며 타락한 삶을 살고, 민경은 일상을 포기한 채 여전히 혜린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뒤이어 유괴범 병철(엄기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거래를 제안한다.

2000년대 한국 스릴러와 누아르물에서 유독 어린이 학대와 ‘파괴된 사나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민호 감독의 데뷔작 <파괴된 사나이>가 제목에서부터 아예 직접적으로 그 현상을 드러낸 것은, 그같은 경향의 극한을 보여주겠노라는 결심처럼 느껴진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스릴러 혹은 누아르의 기원이 20세기 초반 격변기 사회적 컨텍스트에서 비롯된 ‘어두움’에 대한 매혹과 거부의 양가적 감정과 관계맺고 있다고 할 때, 한국영화에서 2000년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스릴러와 누아르는 어떤 면에서 한국적 변형을 거친 걸까. 그것은 대개 어린이(성인 여성의 경우도 여기서는 철저하게 남성에 비해 약자이고 희생자이다)에 대한 과도한 폭력(불필요할 만큼 빈번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이미지화되는 성적 학대의 조짐)으로 촉발되고,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지 못했다는 남성들의 과도한 죄책감이 되풀이하여 등장한다. 가부장제의 관습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요즘, 영화 속에선 거꾸로 해결사이자 순교자로서의 남성의 모습이 여전히 강렬하게 반복 변주된다.

그러나 <파괴된 사나이>는 성공적인 변주를 해내지 못했다.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인 티는 역력하지만, 그것이 한꺼번에 붙었을 때 유기적인 상호보완이 작동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육체는 망가져가지만 영혼은 점점 고양되는 영수, 그리고 완벽한 평온과 냉정을 유지하지만 악마의 영혼에 사로잡힌 병철. 두 사람의 대조되는 행로를 교차시키면서 새로운 누아르의 면모를 보이기에는, <파괴된 사나이>는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안이한 이야기를 택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찰스 로튼 감독의 <사냥꾼의 밤>이 보여준 독보적 아우라를 겨냥한 인상은 남아 있지만, 극적 재미와 깊이 양쪽 모두에서 그만큼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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