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죽고 나면 안다, 착하게 살았는지 아닌지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10-07-06

주호민의 <신과 함께>

착하게 살아야겠다. 웹툰 <신과 함께>를 보고 있노라면 딱 이 생각이 든다. <신과 함께>는 죽음 이후, 저승세계에서 49일 동안 펼쳐지는 7번의 재판을 그린다. 그와 함께 이승에서 겪은 한을 주체 못하는 어느 원귀의 이야기가 평행으로 놓여 있다.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신들이 죄를 묻는 태도는 저인망식이다. 부모님께 불효를 하지는 않았는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못 본 체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걸면 걸릴 수밖에 없는 죄들을 심판해 얼음감옥과 칼로 채워진 숲, 펄펄 끓는 무쇠솥에 넣어버린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세계라면 웃고 넘기겠으나, <신과 함께>의 근간은 한국의 전통신화다. 민담과 탱화를 통해 남겨진 저승세계에 대한 상상의 기록들을 기반으로 한 터라, 그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군대 내 의문사 사건을 다루는 원귀의 이야기는 죽을 때도 잘 죽어야겠다는 감상을 남긴다. 언뜻 스릴러적인 복수극을 그리는 듯하나,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한을 남긴 죽음의 괴로움이다. 다른 성격의 두 스토리가 공존하는 <신과 함께>는 궁극적으로 지금의 삶이 가진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염라대왕의 검색 사이트는 주글(joogle)

죄와 죽음, 그리고 한국의 전통신화. 자칫 무겁고 지루한 이야기로 오해하기 쉬운 요소들이지만, <신과 함께>는 장르적인 긴장감과 유머가 넘치는 만화다. 군생활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과 무한동력기관을 연구하는 남자를 중심으로 20대 청춘의 군상을 담아낸 <무한동력> 등을 그렸던 주호민 작가는 저승세계에 현대적인 상상력을 가미했다.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이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깔려 있고, 염라대왕이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의 이름은 ‘주글’(joogle)이다. 무엇보다 주인공 진기한 변호사가 재판마다 뛰어난 재치로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은 만화적인 유머와 법정영화의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건 위기의 국면에 찾는 해결책까지도 모두 저승과 관련한 민담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4화에서 업관을 통과한 뒤 손과 발이 잘린 김자홍을 뼈살이, 살살이, 피살이 꽃으로 구해낸 부분의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미리 이야기를 써놓지 않고, 문제를 던져놓은 뒤 해결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일단 업관을 통과하게 했는데, 아차 싶더라. 이후에 자홍을 그릴 때는 계속 손과 발을 없애야 하나 걱정스러웠다. 다시 신화를 살펴봤다. 사천꽃밭 이야기가 있었는데, 갖다가 끼워 맞추면 되겠더라. 덕분에 이야기 속에 사천꽃밭도 소개할 수 있었다. (웃음)”

<>과 <무한동력> 등 주호민 작가의 전작과 비교할 때, <신과 함께>는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힘이 큰 작품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의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이야기를 찾고 싶었던 작가는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등의 다큐멘터리를 본 뒤, 무속인에 관한 만화를 그리려 했다. 하지만 자료조사를 하던 도중, 무속인의 강렬한 인생을 얄팍하게 다룰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다. “좀더 쉬운 이야기가 없을까 했다. 그런데 취재 도중 한국의 전통신화를 읽게 됐는데, 너무 재밌더라. 무엇보다 모두 처음 보는 신이라는 점에 끌렸다.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신화는 모르고 있지 않나.” 처음 목표는 소박했다. 저승사자 3명이 함께 다니고 그들의 이름이 강림, 해원맥, 덕춘이라는 것. 저승에는 염라대왕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9명의 신도 있다는 것 정도만 알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품 속 저승의 풍경이 실제로 어떤 민담에 있는지를 물어오는 독자들이 많다(주호민 작가가 참조한 대표적인 책은 <우리가 꼭 알아야할 우리 신화> <우리 신 이야기> <지옥도> 등 3권이다). 진기한 변호사는 신화에 등장하는 지장보살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다. “저승에 있는 모든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했던 보살이다. <지옥도> 같은 걸 보면 고통받는 죄인들 곁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죄인들은 위로를 받고 벌을 주던 이들은 멈칫 하는 거다.” 군 의문사고의 피해자인 원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부분이다. “나중에 다시 등장시키면 이야기의 레이어가 두터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탈출시킨 거였다. (웃음)” 군 시절의 추억을 따뜻하게 그렸던 <>에서 그는 군대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신과 함께> 속 원귀의 이야기는 그런 비판에 대한 반사작용이거나, 여전히 군대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해 주호민 작가는 “가장 원통한 죽음을 생각해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군대를 좋아하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의 추억이 좋을 뿐, 군대의 시스템은 굉장히 싫어한다. 그 부분을 그릴 때가 마침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였는데, 군대에서 죽는 것만큼 억울한 게 없을 것 같았다.” 현재 이 원귀의 사연은 호러와 미스터리, 그리고 울컥한 정서가 함께 있는 이야기로 진행 중이다. 주호민 작가는 이 두 이야기가 한데 모아지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음 작품은 이승과 신화의 야이기

주호민 작가는 <신과 함께>가 그저 재미있는 ‘뻥’ 이라고 말한다. 저승세계를 밀도있게 그리고 있지만, 그는 사실 무신론자에 가깝고,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만화를 그리는 동안 사후세계를 믿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좋아하던 것도, 그래서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세계 속에서 찾아낸 단서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만화적인 연출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연출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일 듯. <신과 함께>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자의 즐거움을 알게 된 그의 다음 작품은 <신과 함께> 의 연작인 ‘이승편’과 ‘신화편’이다. 이승편은 저승사자들과 죽은 이의 영혼을 지키려는 집안의 귀신들이 벌이는 대결을 그릴 예정. 실제 민담에서도 뒷간의 ‘측신’과 부엌의 조왕신들이 저승사자와 싸우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저승편에 등장한 해원맥, 덕천, 강림 등의 저승사자가 그대로 나온다. 신화편은 저승편과 이승편에 등장한 신들이 모두 등장하며, 이들에 대한 일종의 프리퀄을 펼쳐볼 계획이다. 주호민 작가가 누벼야 할 신화 속 세계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다행이다.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희망 감독과 배우 캐스팅은. =감독은 정말 떠오르지 않는다. 진기한 변호사는 가수 장기하.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웃음) 저승사자 강림은 장근석, 노련한 해원맥은 박희순이 어울릴 것 같다. 덕춘은 글쎄… 고아성?

-좋아하는 웹툰이나 만화, 만화가를 꼽는다면. =양영순 작가의 <덴마>. 준비를 많이 했을 것 같은 티가 팍팍 나는 작품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택배를 하는 설정인데, 단순하게 시작했다가 액션과 이야기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깔끔한 그림이 일품이다.

-내 인생의 영화 한편을 고르라면. =최근에 10번 이상 본 영화가 <아마데우스>다. 살리에리의 ‘열폭’(열등감 폭발)에 완전 몰입하고 있다. 워낙 천재들이 많은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나 역시 열폭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까지 주셨어야죠!”란 대사에 마음이 심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