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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획기적인 소년 [2]
김혜리 사진 손홍주 2010-11-29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유아인

-데뷔작인 드라마 <반올림>에서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불특정 다수의 호의가 쏟아지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6년 뒤 <성균관 스캔들>로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맞았어요. 현상은 비슷해도 본인 느낌은 다를 텐데요. =<반올림> 때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내 것 같지 않았어요. 지금은 소화할 수는 있어요. <반올림> 이후 내게 밀려드는 어떤 현상에 몸둘 바 몰라 하고 휘청거리다 무너지면 안된다, 내가 앞서 나가 단단히 발을 딛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성균관 스캔들>의 결과는 내가 준비하고 기다렸던 만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문재신 역을 원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짐작해요. 일단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캐릭터라는 판단, 그리고 너무 전형적인 역이라 도리어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점. 그동안 걸오처럼 전형적인 인물을 제안받아본 적 없지 않나요? =시놉시스에 아예 ‘조선판 짐승남’이란 말이 써 있었어요. (좌중 웃음) 몸 좋은 ‘짐승남’들 많은데 이 역이 왜 하필 내게 왔을까? 그 점이 재밌었어요. 그런데 기획 단계에서 저를 캐스팅한 감독님이 현재의 김원석 감독님으로 교체되었어요. 전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에서는 “왜 이 애를 캐스팅했지?” 의아하셨을 거예요. 첫 리딩 뒤 개운치 않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말씀드렸어요. “걸오가 어떤 목소리로, 어떤 호흡으로, 어떤 표정으로 연기할지는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문재신이란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표정이나 호흡은 자연히 나올 거예요.” 걸오를 선 굵은 배우들 다 두고 하필 여리여리한 제가 맡았을 때 만들어져야 할 숙명적인 그림이 있지 않을까라고요.

-보통의 싸움 잘하는 반항아 캐릭터와 달리 재신은 움직임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지 않고 느리게 휘적휘적 움직입니다. 액션보다 자세가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몸에 힘을 풀고 있는 아이. 진짜 짐승은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요새는 애완짐승들이 너무 많이 보여요. 예쁘게 만들어진 짐승남들요. 걸오는 집에서 예쁘게 키워지는 강아지가 아니라 길에 버려진 유기견 같은 아이죠. 그래서 날이 설 때는 확 서지만 평소에는 힘이 없는 짐승.

준비하고 기다렸던,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에요

-반항하는 젊은 남자 캐릭터의 또 다른 상투성은, 매섭게 뜨거나 절절히 호소하는 눈빛인데 재신은 특이했어요. 시선을 약간 내리깔고 앞머리와 속눈썹 틈으로 가만히 던지는 눈빛이죠. 눈을 가리자 눈에 더 주목하게 됐달까요. =제가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싶었는데, 재신을 만나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눈빛이에요. 근데 여기엔 딜레마가 있어요. 그 눈빛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눈인데 그런 눈빛을 카메라 앞에서 짓는 거잖아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짓는 표정이 아무것도 아닐 순 없으니까….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 진실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불편한가요? =아직이 아니라, 원래 저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불편해졌어요. 요즘은 카메라, 조명, 스탭 한명 한명이 더 보이는 단계예요. 그래도 이제는 잘게 나누어 찍는 드라마 연기를 할 때 콘티가 머릿속에 있어요. 많이 영리해진 거죠. 사실 영리해지고 싶진 않았어요. 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내가 그걸 의식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다시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시험해봐야 할 것 같아요.

-눈빛에 주목한 데엔 <성균관 스캔들>의 조명과 촬영도 작용했을 거예요. 배우의 얼굴을 최우선하는 근접숏이 많고, 눈동자에 맞춘 아이라이트와 후광도 많은, 페티시를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었어요. =특히 걸오는 이마가 잘리는 극단적 클로즈업이 유난히 많았어요. '너는 숏이 아주 타이트하니까 많이 움직이지 마.'라고도 하셨어요. 충분히 납득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배우가 온전하고 자유롭게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전제 아래 기술이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먼저 있고 그 안에 인간이 들어가는 건 오늘날 심각한 폐해잖아요. 푸하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영화가 종대가 휘청거리며 달리는 동선들을 통째로 따라가는 장면들을 보며 긴 숏을 자연스럽게 버티는, 신인에겐 드문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균관 스캔들>처럼 닫히고 잘린 양식에 대한 배우로서의 소감이 궁금했어요. =<최강칠우> 때 드라마 시스템의 어려움을 겪었다면 이번엔 제약을 인식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어요. 안 쓰던 근육이 발달한 것과 비슷해요. 근데 사람이 상박 근육이 너무 발달하면 제대로 팔을 못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정작 내가 정말 사람답게 움직여야 할 때 근육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까봐 그게 두려워요. 현장의 요구일 뿐 그런 연기가 항상 옳진 않다는 생각을 가져야 쓸데없는 근육이 안 생기겠죠. 어쨌거나 <성균관 스캔들>은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걸 보여줬단 것만으로도 중요한 작품이었어요. 매 순간 다신 내게 보여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거든요.

-걸오는 말을 한 줄 알았는데 한번 더 보면 실제로는 대사가 없는 장면이 많더군요. 윤희의 반응숏으로 걸오의 말없는 표현이 의미를 완성하는 경우도 많고요. =아주 중요하고 감정적인 대사를 현장 소음 때문에 한 마디씩 끊어가야 했던 게 속상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사 한 마디 없는 장면은 되레 길게 찍었어요. 논어재 장면이나 왕이 순두전강 과제를 내는 장면은 그저 서 있는 리액션을 하염없이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다들 힘들어했지만 나는 길게 갈 수 있는 게 그런 장면뿐이니까 재밌었어요.

-재신은 차별화된 시야를 가진 인물이었어요. 나무에 올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누워 있거나, 뒤편에서 남이 못 보는 것까지 넓게 보죠. 근데 본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른 인물에게 말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게 제가 재신을 하고 싶었던 깊은 이유 중 하나예요. 걔는 올라가도 산속의 나무가 아니라 명륜당 앞 나무에 올라가고 누워도 들판이 아니라 중이방 툇마루에 누워 있잖아요? 내부에 온전히 발을 못 담가서 어떻게든 멀어져 있으려고 높이 있으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나면 동떨어져 있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리는 아이. 그게 배우로서 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얇고 쉽게 떨리는 음색을 가졌어요. 같은 시대극이지만 흑산과 재신의 발성에 차이가 있더군요.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부터 목소리 내는 법이 크게 달라진 것 같고요. =흑산이는 여기서(목에 손을 대며) 나는 갇힌 소리, 재신은 거기서 좀더 내려가는 소리예요. 흔히 고음 잘내는 사람을 노래 잘한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음역이 넓고 제 목소리로 제대로 연기하고 놀 수 있는 힘, 그래서 목소리를 뽐내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날 표현하는 도구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발성은 제가 가장 모자란 부분이라, 영화를 보면 다른 배우들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음을 오가는지, 영화 전체 몇 군데에서 어떤 음역을 썼는지 자연 귀에 들어와요. <최강칠우>에서 캐릭터를 따라가기 급급했다면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소리만 준비되면 확 지를 수 있는데 그게 안되어 성큼 못 나가니 더욱 절실히 아쉬웠어요. 다들 잘했다고 하시지만 (소곤소곤) 그거 잘한 연기 아니잖아요? 오늘 DVD 코멘터리 녹음하면서 “저걸 보고 사람들이 칭찬했나?” 숨고 싶었어요. 발성은 제가 극복할 큰 과제예요. 스스로 자신의 결함을 말하기 힘들지만 나도 알고 남들도 다 알면 그 때문에라도 달라질 거잖아요? 그래서 이게 결코 눈속임할 수 없는 눈에 띄는 제 결함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처럼 배우에겐 기본기라는 영역이 존재하죠. 수업받는 건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근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는 지금보다 기교가 더 없었을 때인데도 모든 소리를 자유롭게 오갔거든요. 그래서 발성이 과연 기술인지, 아니면 나를 놓는 순간에 이뤄지는 건지 알고 싶어요.

20대 초반까지의 외로움이 나의 뿌리

-스무살 되던 해 성년의 날 아침에 눈물 흘렸다는 기억이 미니홈피에 있더군요. =지나고 보니, 귀엽게, 이런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그림을 만들고 안에 나를 집어넣고 싶은 마음. 괜히 영화주인공처럼. 크하, 좀 삼류영화겠지만.

-연예인이 되기로 결정하고 예술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한 뒤 서울로 홀로 올라와서 독립했어요. 열일곱살부터 그런 경우가 흔하진 않은데요. 그 경험이 어떻게 작용했습니까. =(생각) 아무리 힘들었대도 지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시간이고, 그 결핍에 휩싸여 나를 태우던 시간까지 이미 건너왔어요…. (생각) 저는, 가슴에 돋은 혹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게 너무 싫어 돌아버리려는 게 아니라 혹에 예쁘게 옷을 입히고 어떻게든 자산으로 만들어보자는 쪽이에요. 예쁜 흉터? 맞아요, 그런 거요. 예술가들이 “고통이 내 재산”이라고 말하는 건 참 싫지만,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외로움이 성인인 저의 뿌리가 된 건 맞아요.

-외로워서 다른 건가요? 달라서 외로운 건가요? =달라서 외로운 거죠.

-(다른 질문을 했으나 유아인은 계속 앞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에도, 난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람인 것 같아. 사람들은 절 되게 부정적이라고 여기지만. 부정을 안고도 살아가는 힘을 갖는 거야말로 강력한 긍정이잖아요? 난, 여간 긍정을 가져서는 안되는 거야. 푸하하!

-얼굴만 보면 해맑은데 방금 말한 시기를 겪기 전인 <반올림>에서도 실연이 예정된 사랑을 하는 소년을 연기했거든요. ‘아인 오빠’가 등장한 첫회부터 옥림(고아라)의 마음이 결국 소꿉친구 욱이에게 갈 거라는 게 뻔히 보이는 이야기였잖아요. =<반올림> 끝나고 배역의 운명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작품의 캐릭터에겐 삶의 흐름과 무관하게 결정지워진 운명이 있다는 걸요. 그런데 그렇게 처음과 마지막이 정해진 코스가 저한텐 재미없는 과정인 거에요. 나대로 나가지 못하고, 극의 결말이 정한 범위 안에서 이 지점에 해당되는 것만 할 수 있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성균관 스캔들>은 끝을 알고 있었지만 <반올림> 때만 해도 옥림이가 혹시라도 나랑 이어지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죠. (웃음) 하지만 80%는 예감했어요. 재신이처럼 아인 오빠는 내부에 포함된 이방인, 중학생 틈에 낀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걸오와 <최강칠우>의 흑산, 그리고 현대물 출연작 일부에서 액션과 싸움이 포함될 경우, 화려하게 남을 다치게 하는 모습보다 자기가 다치는 광경이 훨씬 스펙터클합니다. 우연인가요, 아니면 본인도 그런 표현에 관심이 있나요? =우연 아니에요. “내가 슬퍼, 나 아픈 애야”라고 표현하는 연기에 대해 아직 욕구를 다 풀지 못했어요. 촌스러운 짓임을 알면서도, 마치 남들 보는 앞에서 우울증약 먹는 것처럼. 한때 건강한 역만 일부러 찾아다닌 적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연기하는 편이 수월해요.

-의견을 드리자면 화살이 잘 어울립니다. (웃음) 종교화를 보면 기독교 성인 중 화살로 처형당한 세바스찬이 아주 젊고 아름다운 남자로 묘사되거든요. =크하하. <최강칠우>에서도 화살 맞고 피 철철 흘리며 대사하는 장면이 큰 호응을 얻었어요.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 주는 어떤 흥분이 있겠죠.

글쓰기는 나의 또 다른 일

-청춘이라는 단어와 자주 나란히 이름이 불리고 스스로도 그 말을 많이 쓰면서 이러다 ‘청춘’이 죽은 말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한 적은 없어요? =내 혼란과 치기, 패기 모든 것을 한번에 평가하고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간편하게 쓰는 단어 같아요. 그러니까, 청춘은 결국 내가 나를 세상에 다 잘 설명 못했기 때문에 선택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최근 미니홈피 글이 뜸해졌지만, 연기와 비슷할 정도로 글쓰기에 꾸준히 에너지를 기울여왔습니다. 마치 다른 배우들이 몸 관리하듯 정신을 관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예전 같으면 글쓰기가 인간으로서 나를 관리하고 배우의 기본소양 중 하나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또 하나의 일이라고 여겨요. 좋은 연기를 위해, 팬 관리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일인데 다만 연기는 대가를 받는 프로고, 글은 돈을 받지 않으니 아마추어인 것뿐이죠.

-표현이란 누군가 읽거나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무엇을 목적으로 한 표현이냐에 따라 다르죠. 예를 들어, 딴따라나 광대라는 말에서는 보는 이와 듣는 이가 주체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트위터는 직접 소통이 첫째고 미니홈피는 누가 미친놈이라고 욕하고 못 알아들어도 나를 표현하는 게 우선이에요. 하지만 내가 연기를 했는데 무슨 연기인지 못 알아들으면 문제겠죠. 요즘엔 블로그, 미니홈피, 트위터 등등 매체가 많아져서 내 안의 여러 나를 거기 맞게 드러낼 수 있으니 편해요. ‘허세’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예전엔 보이지 않던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소가 생겨서인 것 같아요. 진짜 허세도 있겠지만 다들 조금 더 멋진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면서 그런 마음을 굳이 왜 허세라고 할까요? 외출할 때 옷 입고 나오는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요? 알맹이가 전혀 없는 포장지가 아니라면 포장도 필요해요. 그렇게 치면 연기도 글쓰기도 모든 게 허세가 되잖아요.

-트위터는 얼마나 공적이고 사적인 공간인지 각자 혼돈을 겪는 시기 같아요. 예컨대 둘이 문자를 주고받아도 될 내용을 굳이 남들이 보는 걸 의식하면서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가 뭐냐는 반문도 있고요. 다만 A와 B를 모두 팔로하는 C가 A와 B의 대화에 끼어들어 얘기가 확장될 수 있는 건데…. =굳이 왜 대화를 남에게 보여주느냐는 건데, 전 거꾸로 말해서 보여주는 걸 그렇게 꺼릴 필요가 있나 묻고 싶어요. 어차피 우리는 상대와 부딪히고 거기 또 다른 사람이 우연히 부딪히며 사회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요?

-쓴 글을 읽어보면 액체 상태의 물질이 자기 안에 들어왔다가 체액이나 구토로 빠져나가는 이미지가 반복돼요.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안의 이물질을 토해내서 깨끗하고 말짱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보여요. 실제로도 자주 토하나요. =술 마시면요. 미니홈피에 제가 쓰는 글은, 간밤에 마신 술을 다 토하지 못했을 때 글로 구토하는 거라고 해도 좋아요. 거칠게 말하면 똥 싸는 거죠. 비워내고 싶어요. 제 글로는 지혜나 깨우침이 아니라 미술관의 그림 앞에 섰을 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요. 배설로서의 글쓰기에도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통로가 되는 거잖아요. 여기 내가 집어삼킨 세상이 있고 이쪽에는 내가 뱉은 세상이 있는 거예요. 내가 잘 정제하는 통로 역할을 하면 토사물이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들어 내놓을 수도 있어요.

-전체 공개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어떻게 구분해요? =선정성이라든가, 아주 심하게 충격적이라거나, 흐하하! 내 또 다른 영역인 배우활동을 저해할 수 있는 글은 공개하지 않아요. 그러니 글과 연기가 다른 일이라 해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이 있는 거죠.

대중예술가이기도하니까 문화를 주도해야죠

-유아인씨는 대중과 팬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본인이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변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보는 스타 같아요. 술을 마신다거나 욕을 쓴다거나 같은 연예인의 금기라고 여겨졌던 행동을 그때 그때 개인매체로 노출하고 견해를 밝히면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수용하도록 하는 인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능력 밖의 사랑을 얻어서, 전전긍긍 그 사랑에 끝없이 목말라하고 사랑을 달라고 갈구하는 입장이 아니라, 마땅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서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해요. 일단 얻은 사랑을 유지하는 방식도 예쁘게 웃고 “여러분 저도 사랑해요”하는 게 아니라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연기자인 동시에 가장 영향력있는 대중예술가이기도 하잖아요? 그럼 문화를 주도해야 맞는데 현실은 문화에 편승하는 존재에 머물고 있지 않나 답답했어요. 좀 오버스러워도 자기에 집중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의 팬’을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일 거라는 구체적 상이 있나요? =섞이지 못한 아웃사이더들, 그런데 내가 누리는 편의는 갖지 않은 사람들이요. 저를 향한 대표적인 욕망은 공감인 것 같아요. 주류에 대한 반발심이 사회문화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팬들에게 우정이 있어요.

-마이너리티 배우로 계속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본 적 있어요? =있어요. 근데 실제로 마이너리티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꼭 마이너를 선택해야 할 조건은 아니에요. 하하. 이만큼은, 생겼다는 거죠. 외모는 사람에게 편의를 주잖아요.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그 여자애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예뻐서 누린 편의가 있듯이. 저는 주연을 하는 데에 무리가 있는 외모를 가진 배우는 아닌데 그럼에도 채워야 하는 다른 결핍이 있으니 현실적으로는 주류와 비주류를 오가거나 마이너 성향을 메이저에서 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스물다섯이 다가오면서 조바심이 없었나요? =스물다섯 즈음에는 내 진짜 모습을, 내 특별함을 나 혼자만 알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연기력이건 무엇이건 인정을 원한 거죠. 사실은 (미소) 스물다섯보다 좀 일찍 그러고 싶었어요. 절 따라다니는 평가에는 항상 “나이에 비해”라는 전제가 따라다녔거든요. 스물다섯에 혹은 서른에 저 정도를 가졌구나 하는 평가보다 그걸 20대 초반에 보여준다면 더 놀라운 일이 되는 거니까. 하하.

-이제 그 기다림이 이뤄졌나요? =요사이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주니까 전에 없는 소중한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들이 정말 냉정하게 날 보고 있는 걸까, 내 말에 속아 넘어가 별 커리어도 없는 나를 희소하고 대단한 애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과연 내가 정말 특별한 걸 가진 걸까 도리어 의심하게 돼요. 냉정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부족해요. 그냥 피곤해서 쉬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갖고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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