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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이곳에 있지 않을 그들의 연주는 그 자체가 역사 <브라보! 재즈 라이프>
강병진 2010-12-15

한국에서 처음 재즈를 연주했던 재즈 1세대 가운데 알려진 이름은 많지 않다. 패티김의 <이별>을 작곡한 길옥윤과 드라마 <수사반장>의 오프닝 음악을 연주한 류복성 정도일까.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이들을 기리려는 젊은 재즈 음악가들이 헌정음반을 제작하고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좇아가는 한편, 1세대 연주자들의 증언을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어느 한 부분과 또 다른 이름들이다. 트럼펫의 대가 강대관, 한국의 유일한 남성 재즈보컬 김준,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 한국 재즈의 대모로 불리는 박성연.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무대에서만큼은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며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재즈와 만났던 추억과 전성기 시절의 기억은 <브라보! 재즈 라이프>가 다큐멘터리로서 담아낸 기록이다. 그리고 그들이 음악을 대해온 태도는 이 다큐멘터리가 지닌 감동의 코드일 것이다. 한국에서 재즈이론을 최초로 설파한 이판근 선생은 철거를 앞둔 연구실에서 지금도 민요를 재즈에 접목시키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재즈를 통해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해온 강태환 선생은 손녀딸의 등굣길을 보살피는 평범한 할아버지인 동시에, “색소폰으로 드럼 솔로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는 연주자다. 치아가 빠질 때까지 클라리넷을 연주해온 이동기 선생의 고백은 평생 음악을 해온 이들의 심정을 대변할 것이다. “음악을 해야 사람이 될 것 같았어. 아직도 안된 거 같아. 앞으로도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이들이 지금까지 음악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류복성 선생의 이야기로 요약된다. “재즈는 항상 새롭잖아. 재즈는 늙지 않아.”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동시에 그들이 품고 있는 선언에 가까운 문구로 보인다.

무엇보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의 연주를 대하는 카메라와 연출의 태도는 철저히 음악의 결을 따르고 있다. 각각 다른 음악의 성격에 맞게 연주의 무대를 디자인하고 편집한 영상은 뮤직비디오와 흡사하다. 그런가 하면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술상 앞에서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는 애틋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속 한 재즈칼럼니스트는 “영원히 이곳에 있지 않을 그들의 연주는 그 자체가 역사”라고 말한다. 한국 음악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들의 음악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한국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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