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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채] 샬롯 갱스부르처럼 늙을 수만 있다면…

<플레이> 정은채

“은채를 만났는데 시나리오 속 인물과 너무 똑같아서 주저하지 않고 캐스팅했다.” <플레이>를 만든 남다정 감독의 말이다. 남다정 감독은 정은채가 출연한 음료 광고(키스를 하려다 남자친구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가버린다)를 눈여겨봤고, 정은채는 <씨네21>의 <플레이> 관련 기사를 눈여겨봤다. 우연이 여러 번 이어졌다. 어쩌면 <플레이>와 정은채의 만남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밴드 메이트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음악영화 <플레이>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본명을 사용한다. 정은채 역시 자신의 예명을 따 은채라는 영국 유학생으로 출연한다. 우연히, 아니 운명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만난 정은채는 영화에서 진솔한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극중에서 다시 한다. 신인이지만 정은채의 얼굴은 많은 것을 담아내는 매력이 있다. “은채는 묘한 매력이 있는, 친해지고 싶은 타입”이라는 남다정 감독의 말이 꼭 들어맞는다.

-요즘 일일드라마 <우리집 여자들> 때문에 엄청 바쁘다고 들었다. =거의 쉬는 날이 없다. 대본도 실시간으로 나온다.

-KBS1 일일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주인공 고은님 역을 맡았는데 부담되지 않나. =엄청나다. (웃음) 영화는 좀더 다듬어진 모습으로 준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간이 있는데 드라마는 대본이 나오면 그 다음날 촬영하는 식이니까 부담되기는 한다. 그래도 그 안에서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극중 머리 스타일이 별로인 것 같다. (웃음) =(웃음) 일단은 촌스러운 컨셉이다. 처음에는 소란스러운 캔디형 아가씨인데, 이후 여러 사건이 발생하고 출생의 비밀 등이 밝혀지면서 캐릭터의 변화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 외형적인 변화도 있을 것 같다.

-<초능력자>에서 영숙으로 출연했다. 영숙은 레이첼이라는 이름도 있는 혼혈아다. 독특한 외모라고 봤다. 배우로서 자신은 어떤 얼굴인 것 같나. = 설정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외모에 대한 자신은 없지만 이런 면이 큰 장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은 괜찮게 보이고 가끔은 추하게도 보이는 내 자신이 나쁘지 않다.

-<플레이>에서 메이트 멤버 임헌일과 주로 촬영했다. 전문 배우가 아닌데 함께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큰 걱정은 없었다. 헌일씨는 준비를 정말 많이 해왔다. 매사에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했다.

-<초능력자>에서 고수와 강동원과 함께 연기했는데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초능력자>는 데뷔작이었고 스탭들도 그렇고 다들 대선배들이어서 부담이 되고 중압감이 없지 않았는데 <플레이>는 엄청 가족적이었다. 남다정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잘 통하겠다는 느낌 말이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플레이>는 이상하게 애착이 가는 영화다.

-<플레이>에서 은채라는 캐릭터로 나온다. 영국 유학생으로 나오고 미술(실제로는 텍스타일디자인)을 전공한 인물인데 이거 다 진짜 정은채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다. =<플레이>에 두 여자 캐릭터가 있는데 감독님이 ‘어떤 캐릭터가 더 공감이 되냐’고 물었다. 주저없이 (당시에는 진송이라는 이름의) 은채 캐릭터를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나랑 너무 비슷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싶더라. <플레이>의 은채는 그냥 나다. (웃음) 연기할 때도 큰 부담없이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까, 떠올렸다. 시사회 때도 영화를 본 관계자 분들이 ‘그냥 너 같다’고 하시더라.

-의상도 수수하고 그렇던데 혹시…. =그냥 집에서 입는 내 옷들이다. 자다가 일어나서 찍고 그랬다. (웃음)

-갤러리에서 많은 촬영을 했는데 그 갤러리도 실제로 자주 갔던 공간이라고 들었다. =홍대에 있던 대안공간 루프라는 갤러리인데 데뷔하기 전에 곧잘 다녔던 곳이다. 그런데 마침 거기서 촬영을 한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우연의 일치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갤러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남다정 감독이 노래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던데. =남다정 감독님이 좋아한다는 박주연의 <음악은 너>라는 노래였다. 연습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헌일씨가 많이 도와줬다.

-중학교 1학년 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춘기를 영국에서 보냈는데 한국에서만 자라온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감수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영국에 가게 되면서 성격이나 취향이 많이 변했다. 너무 낯선 환경이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화도 전혀 안됐다. 소외감도 느꼈고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사색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점도 그때 생겼다.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계 여자 기숙학교를 5년 정도 다녔는데 기숙사에 있으면 크게 할 게 없다.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영화 보고 책 보고 음악 듣는 게 다다. 연애도 할 수 없고…. (웃음) 혼자서 노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굳이 어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칭찬 받을 수 있는 게 그림이었다. 자연스럽게 미술 계통의 대학에 가게 됐다.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관심은 항상 두고 있었다.

-센트럴세인트마틴이라는 런던의 유명 아트스쿨을 다녔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학교생활은 너무너무 재밌었다. 몇년을 기숙사에 있다가 나오니 갑자기 별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주위의 친구들이 매우 특이하고 자유분방했다. 한국에서 막 배낭 메고 유학 온 청바지에 티셔츠 입은 친구들이 오히려 튀는 차림이었을 정도로 개성 강한 친구가 많았다. 딱히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학교 가는 게 즐거웠다.

-영국에 있을 때 체험한 문화적인 자양분이 연기에 도움이 되는 편인가. =그렇다! 학교가 런던 중심부에 있었는데 다양한 공연과 그림을 보러 갈 기회가 많았고 너무나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예술적 영감을 항상 받으려고 노력했다. 학교 공부도 그런 쪽이었으니까.

-배우가 돼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했나.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과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관심은 줄곧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모니터 속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모니터 안에 살면 여러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동경이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 넌지시 배우가 되겠다고 했는데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정도의 반응을 들었다. ‘그런가’ 하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데 이상하게 미련이 남더라. 결국 한국에 가서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플레이>의 대사 중에 “자기 짐은 자기가 들어야지”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말이 실제 정은채의 모습이 아닐까 싶더라. =그 대사 얘기할 줄 알았다. (웃음) 여태껏 그런 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주위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편이다. 이게 맞다고 하면 밀어붙이고 그게 잘못된 결과나 좋지 않은 결과로 나온다고 해도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게 속 편하지 않나. 연애도 그렇고 평소에도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서운해하는 면도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보니 2월에 방송된 KBS 설날 특집드라마 <영도다리를 건너다>에서 주인공 백설 역할로 출연했더라. 꽤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무리해서 교복을 입고(웃음) 출연했다. 대본이 무척 재밌었다. 정진영, 방은희 선배님들도 바쁜 스케줄을 빼가면서 출연할 정도였다. 그런 에너지가 현장에 있었다. 단막극이라서 영화처럼 촬영했다. 지금의 일일드라마와는 전혀 달랐다.

-<플레이>에서 고향이 부산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투리 연기를 잘하더라. =부산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다. (웃음) 그게 캐스팅 단계에서 장점이 됐다. 선배들에게 연기에 대해 조언을 구했었는데 선배들은 나에게 사투리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럴 때는 왠지 뿌듯했다.

-샬롯 갱스부르를 좋아한다는 인터뷰를 봤다. 약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력적인 배우가 또 어디 있나. 샬롯 갱스부르처럼 늙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웃음)

-진지한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하아~. 최근 몇달간 드라마 촬영 때문에 극장에 못 갔다. (한참 생각하다가) 다큐멘터리였는데 제목이…. 아,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봤다. 그걸 보고 나서 춤이 너무 추고 싶었다. 심야시간에 봤는데 거기가 밤 되면 사람이 없지 않나. 나오면서 막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웃음)

-<씨네21>을 오래 봤다고 하던데…. =인터뷰하게 된 소감 이런 게 궁금한 건가? 1쪽짜리 후아유에 나왔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뭔가 했구나’ 싶었다. 월요일마다 집에 <씨네21>이 오는데 딱 펼치자 내가 있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것도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정말 <씨네21> 애독자라는 느낌이 든다. =가끔 늦게 배송되면 성질나서 전화한다. 몇번 전화했다. 그렇게 전화한 이후에는 봉투에 ‘빠른 배송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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