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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 <내가 살인범이다>

형사 최형구(정재영)는 연쇄살인범을 쫓아 필사의 추격전을 벌이지만 범인은 그의 입을 찢어 큰 상처를 내고 도망친다. 17년 뒤 공소시효는 끝나고 이두석(박시후)은 자신을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히며 범행 행적을 기록한 자서전 <내가 살인범이다>를 출간한다.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두석은 팬층까지 형성하며 스타가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 살인자가 스타가 되는 이러한 상황이 용납될 리 만무하다. 이에 유가족은 이두석을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의 전면에 흐르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고발과 풍자다. 연쇄살인범이 공소시효가 끝나고 법의 효력이 사라지자 책을 출간해 엄청난 돈을 벌고 고급 호텔에서 경호원까지 두고 생활하며 스타가 된다는 비윤리적인 설정 위에 영화는 언론과 십대의 문화, 여성, 계급 등 다양하게 현상과 문화들을 비판한다. 기자회견장에서 남성 기자는 여성 기자에게는 발언권을 주지 말라는 식의 얘기를 하며, 공정성을 말하는 PD에게 방송국 국장은 이게 얼마짜리 방송인지 아냐며 방송을 진행시킨다. 경찰서 서장도 최형구에게 보고를 하라며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이러한 비판들을 통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에 의해 가려지고 은폐된 진실에 대한 문제다.

가면의 모티브는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주인공들은 다 가면을 쓰고 있다. 십대들은 살인자의 화려한 가면에 열광하며 최형구는 흉터를 가지고 있다. 범인은 가면을 벗고 진실을 드러내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도 언론의 영역 안에 있다. 그 순간은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순간이고, 우리는 살해 현장도 카메라를 통해서 보며, 진실을 증명하는 것도 비디오테이프다. 법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최형구의 흉터가 있는 곳은 입이다. 최형구는 법을 집행하는 형사고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만 법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가족은 피해자에서 범법자가 되고 형사는 살인자를 구출해야 한다. 최형구는 그 무능을 극복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고 방송국 안에서 다시 총을 든다. 하지만 절대악을 처벌하는 것은 총이 아닌 화살과 뱀의 독이고 법이 아닌 한 인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발이나 풍자는 잘 버무려지지 않는다. 십대들은 너무 외모 지상주의로만 그려지고 언급한 언론이나 위계질서의 캐릭터들은 극단적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억지로 자아내려는 웃음이나 행동들도 보인다. 이 영화의 서사를 한마디로 줄이면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같은 연쇄살인범을 다루지만 <쎄븐>처럼 나약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악의 영역을 강조하거나 <살인의 추억>처럼 맞서 싸우려는 인간의 끈질기지만 나약한 의지와 힘을 그려내는 데 이 영화는 힘의 무게를 다 싣지 않는다. 영화가 그려내는 것은 가족과 연인과의 사랑이고, 사랑하는 딸의 어머니와 연인을 잃은 사람의 슬픔이다. 이 영화에서 복수의 서사는 그곳에서 비롯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최형구와 유가족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영화의 액션 신은 매혹적이지만 액션에 대한 강박과 언급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들은 불협화음을 만들고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해 전체적인 서사의 유기성과 몰입을 방해한다. 복수의 서사를 지탱하는 힘인 최형구의 사랑은 갑작스럽고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정병길 감독은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낼 줄 안다. 이 영화의 힘은 그러한 인간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보편성에서 나온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바라볼 때, 고통과 울부짖음을 짓누르는 정재영의 충혈된 눈빛은 상쇄된 많은 부분들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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