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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평론가나 프로그래머 하겠다고?

현실에 둔감한 대학과 영화과 학생들에게 고한다

2011년 2월24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개최된 토론회 현장.

종종 후배들이 영화 공부를 하러 대학원을 가겠다며 상담을 해올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을 던졌겠지만, 요즘은 대놓고 묻는다. 나와서 뭐 해먹고 살려고? 그러면 “평론이나 하죠”라거나 “영화제 프로그래머 하려고요”라고 답하는 답답한 친구들이 상당수다. 참 미안하게도 한국 영화계에 평론가나,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온전한 직업으로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 월간지는 모두 폐간되었고, 일간지의 영화 칼럼들도 없어진 지 오래이다. 그외 다양한 사보들은 평론가보다 기자의 글을 더 선호한다. 결국 평론가가 자기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은 <씨네21>과 <무비위크> 두 영화잡지의 외고가 전부다. 이를 원고료로 환산하면 전체적으로도 월 1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만 수십명에 이르고, 그중에서도 이름 알려진 평론가들이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하므로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수십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화제도 사정은 마찬가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말단 스탭들은 여전히 1년 미만의 계약직에 100만~200만원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고 있다. 그보다 예산이 적은 전주, 제천, 부천영화제 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가장 나은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내년에도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일부 뜻있는 친구들이 영화 단체의 활동가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영화 단체에서 10년을 일한 상근 사무국장의 월급이 100만원이 약간 넘는다. 낮밤도, 주말도 없이 일하는 활동가들의 노동강도를 감안하면, 1년을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실제로 대개는 1년을 못 채우고 떠난다.

결국 대학에서 영화만을 공부한 최고급 인력들이 막상 졸업하고 나면, 먹고살기는 제일 어려운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장에 들어가기에는 나이도, 경력도 오버사이즈다. 사실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일하고 싶어도 현장에서 쓸모있는 지식은 거의 안 갖추고 있으니, 여느 신입사원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일을 가르치며 일해야 하는 사정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실에 대해 정작 이해당사자들은 매우 둔감하다는 것이다. 대학은 대학대로 등록금만 받으면 그만이고(덕분에 영화과 등록금은 한 학기 600만원이 넘는다), 학생은 학생대로 타협하지 않는 고상함을 유지하고(그래서 대중영화, 산업, 정책 등에 대한 공부는 하찮게 여긴다), 기성세대들은 그들대로 자기 앞가림하기에만 바쁘다(그래서 영화계의 각종 위원장이나 교수 자리에 목을 맨다). 이렇게 이해당사자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변화된 지형을 생각하기도 어렵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스탭 처우 개선 문제가 지금처럼 이슈가 된 것은 스탭들이 10여년 동안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연대하고, 세력을 규합하고,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과 투쟁해왔기에 미흡하나마 지금의 지형을 만들어냈다. 영화와 관련된 담론들을 풍부히 만들어내고, 영화와 관련된 의제에 대중이 다시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판을 되살려야 할 책임도 그렇게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당신과 나, 우리에게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 때문인지 대학 영화과의 취업률은 최하위권이다. 2012년 각 대학의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연극영화 전공 졸업생의 취업률은 36.2%에 불과해, 다른 계열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또 일반적으로 대학보다 대학원의 취업률이 더 높지만, 예체능 계열과 영화과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도 주목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