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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궤뚫어보라!
진중권(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3-03-22

리히터의 블러링과 독일의 외상적 실재

“망원경으로 초점이 나간 장면을 본다고 해서 덜 보는 건 아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을 회화에 도입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회화라는 매체로 사진을 그린 최초의 화가들 중 한명이다. 하지만 리히터를 수많은 포토리얼리스트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은 이른바 ‘리히터의 블러’(Richter’s blur)라 불리는 효과다. 사진을 그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는 하나같이 초점이 나가 흐릿해 보인다. 미술평론가 할 포스터는 이 블러가 리히터의 작품의 ‘푼크툼’을 이룬다고 말한다. 왜 그는 사진을 흐리는 걸까?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넘어

‘리히터의 블러’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매체에 대한 반성이다. 리히터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 매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즉 잭슨 폴록에서 출발한 미국의 추상운동이 사실상 종말을 고한 상태였다. 모더니즘의 추상이 결국 사진이 던져준 충격에 대한 회화의 반응이었다면, 추상의 운동이 생명력을 다한 이상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리히터는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넘어 그 둘을 하위범주로 포괄하는 ‘형상’(picture)으로 나아간다.

‘블러링’(blurring)은 사진에 회화적 특징을 부여한다. 가령, 불러가 없는 포토리얼리즘의 작품은 거의 사진처럼 보이지만, 리히터의 작품은 사진을 베낀 것임에도 불구하고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블러링이- 뵐플린 르네상스 회화의 선적 효과에 대비시켜 바로크 회화의 특징으로 제시한- ‘회화적’(malerisch)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 결과 리히터의 작품에서는 사진과 회화가 상위의 개념인 ‘형상’(picture)으로 종합되거나, 아니면 사진과 회화가 상호 부정하여, 사진도 아니고 회화도 아닌 상태가 된다.

“관습적으로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이 칠해진 표면에 관한 한 내 그림들은 원래의 사진과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회화다. 다른 한편, 그것들은 너무나 사진 같아서 사진을 다른 모든 이미지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특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추상이 종말을 고한 1960년대 초에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추상과 구상 사이의 전통적 대립을 극복하는 문제였다. 블러링은 이 대립을 극복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리히터의 작품 중의 몇몇은 구상인지 추상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블러링을 보여준다.

한편, ‘의미’의 측면에서 블러링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히터는 ‘블러링’과 관련하여 앤디 워홀의 영향을 인정한다.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이는 워홀의 실크 스크린에서 블러링으로 사진을 베끼는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초점이 빗나간 것과 인쇄의 핀트가 빗나간 것 사이에는 모종의 평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에 대해 갖는 함의이리라. “나는 다소 기계적인 방법을 얻은 것이 기뻤다. 그것은 사물을 제거하는, 정상적인 작업의 상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물을 제거”한다는 표현이다. 이는 그의 ‘형상’이 현실과 별로 관계가 없음을 시사한다.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이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말했으나, 리히터의 푼크툼인 ‘블러링’은 외려 그 디테일을 지워버린다. “나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동등하게 중요하고 동등하게 안 중요하게 만들기 위해 블러링을 한다.” 이렇게 블러링은 개인적 특징을 지워버림으로써 인물을 비인격화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무차별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1964년 이래로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들로 이른바 ‘아틀라스’라는 거대한 앨범을 만들어, 자신이 제작하는 회화의 밑그림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창작의‘ 재료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아틀라스 속 사진들이 주제별로 분류된 것이 아니라, 명암이나 색채와 같은 형식적 특질에 따라 분류되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는 아주 잔혹한 사진 바로 옆에 포르노그래픽한 사진이 놓이기도 한다. 여기서 현실의 사건들은 의미론적으로 무차별하게 다루어진다.

현실의 불가해성

블러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포스트구조주의자라면, 거기서 ‘의미작용’의 포기를 볼 것이다. 현실의 사물과 흐려진 영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는 데리다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현실에 대한 해석일 뿐, 현실 자체는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현실이 이해가 될 수 없다면, 현실의 가장 적합한 그림은 의미론적 약속을 가장 적게 하는 그림일 것이다”. 사물에 대한 명확한 파악을 거부하는 블러링은 “의미론적 약속을 가장 적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어떤 이는 정신분석학을 원용하여 리히터의 블러링을 ‘접촉공포’(haphephobia)로 해석한다. 왜 리히터는 현실에 접촉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어쩌면 그 ‘현실’을 라캉이 말한 ‘실재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블러 처리된 희미한 이미지는 기억의 영상을 닮았다. 그것은 끝없이 표상되려 하나 끝내 명확히 표상되지는 못한다. 무의식은 반복적으로 억압된 기억으로 돌아가나, 의식은 그 기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그리하여 외상적 기억을 반복적으로 표상하나, 동시에 그것을 블러링을 통해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 외상적 기억은 리히터 가족의 사적인 기억일 수도 있다. 가령 그의 대표작 속에서 나치 장교의 군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루디 삼촌’(1965)은 1944년에 전사한다. 열두살 소녀의 모습으로 아기 리히터를 품에 안고 있는 ‘숙모 마리안네’(1965)는 정신병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훗날 그녀는 나치의 우생학적 정책에 따라 정신병원에 갇혀 강제로 단종 수술을 받은 뒤 결국 안락사의 대상이 되어 사망한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리히터의 장인이 그 시절 SS 군의관으로 나치 안락사 프로그램의 실행자였다는 사실이다.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그 외상적 기억은 동시에 공적인 기억, 즉 독일의 역사적 기억일 수도 있다. 나치에 협력하고도 그 기억을 덮어버리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항은 결국 테러리즘으로 이어졌다. 이 극단적 상황은 젊은 세대나 기성세대 모두에게 떠올리기 괴로운 사건이었다. 리히터는 <바더 마인호프 연작>(1977)을 통해 과감하게 이 기억을 그러잡는다. 이 연작 속에서도 자살한 테러리스트의 모습은 알아보기 힘들게 블러 처리되어 있다. 그저 목에 난 줄 모양의 상처만이 그 죽음의 방식을 암시할 뿐이다.

“그들이 주는 공포는 대답하거나, 설명하거나, 의견을 내는 것을 견디기 힘들게 거부하는 공포다.” 그 공포는 집요하게 자신을 주장하나, 살기 위해서는 무정하게 외면해야 하는 역사의 불편한 기억을 대면하는 데에서 나온다. 리히터의 작품에서 사진을 통해 복귀하는 것은 독일 역사의 외상적 기억이고, 블러링을 통해 가려지는 것은 독일사회의 외상적 실재다. 반복적으로 사진을 그대로 복사한 뒤 그것을 블러 처리하는 하는 것은 ‘오토마톤’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상적 실재는 ‘투케’처럼 그 블러링을 뚫고 우리를 찌른다. 리히터의 ‘푼크툼’이 블러링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