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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전염된다

칸에서 만난 동시대 아시아영화의 거장 3인: <천주정> 지아장커 감독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관하여 질문받을 때 피로함을 호소하거나 난감해하기도 한다. 지아장커는 정확히 그와는 반대의 경우다. 그는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늘 대답을 내놓는 종류의 감독이다. 칸에서 발표된 그의 신작 <천주정>은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현지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사건과 폭력에 연루된 네명의 주인공이 서로 스치고 또 이어지며, 그들의 이야기로 현대 중국의 어떤 면모를 드러낸다. 오전 9시30분, 아침 일찍 지아장커를 만났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아장커는 인터뷰 내내 긴장을 놓지 않았고 마치 이것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자리인 것처럼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폭력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더 정신을 집중하여 말하곤 했다(영화 내용에 바탕해야 이해가 가는 답들이 많다. 영화에 관한 설명은 67쪽 참조).

-영화를 만들게 된 원동력에 대해 듣고 싶다. 당신은 이번 영화를 한 트위터의 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네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됐다. 어떻게 해서 여기에 도달했는지 궁금하다. =영화 속 네 가지 이야기는 모두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Weibo)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웨이보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나는 특히 세 번째 이야기, 한 손님이 호텔 리셉셔니스트를 강간하려는 과정에서 돈다발로 수차례 그 여자를 채찍질한 사건에 강한 영감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처음 전해졌을 때 중국 전역은 충격에 빠졌다. 그때 나는 우리 사회의 강한 폭력적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고 그 정체를 우리가 직시하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네 가지 이야기는 폭력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로 묶이지만 각각 다른 양상 의 폭력 또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일화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는 부패와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 같은 사회적 폭력이 어떻게 한 개인을 극단까지 몰아붙이는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일화는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고독도 폭력이 유발하는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도시화 과정에서 중국의 농촌은 소외되고 잊혀지면서 일종의 정신적, 심리적 폭력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일화는 폭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또다시 폭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일화는 자기 자신을 향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가족, 공장 소음 등 많은 요소들에 억압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이 내가 네 가지 일화를 통해 하려 했던 이야기다. 이들은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현재 중국의 초상이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우리는 트럭에 실려 있던 엄청난 양의 토마토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 강렬한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트럭이 도로에서 쓰러지는 사고로 시작한다. 나는 폭력도 이런 사고와 같이 일순간에 그 자체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장면은 또한 중국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가다가 난 사고가 더 심각하고 더 큰 위기를 부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이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자각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 장면에서 트럭은 인적이 드문 지역의 고속도로에서 뒤집어지는데 나는 여기서 토마토들을 가능한 한 충분히 보여주고 싶었다. 토마토의 붉은색이 주는 임팩트가 영화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나올 붉은색의 이미지를 전조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 가령 현재 중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국은 지난 몇 십년간 빠른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빈부의 격차, 자원의 독점 등 많은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되었다. 그것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쌓여왔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은 기회를 잃었고 우리는 더이상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내가 생각하는 폭력의 근원이다.

-영화에는 말, 소, 뱀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이 동물들이 의미하는 바는. =소셜 네트워크의 세상이다. 나는 지금의 사람들이 전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네개의 이야기를 택한 것도 사람들 사이의 일종의 연결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이것은 또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에는 하나씩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인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동물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인간이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연과 동물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중국 문화에서 동물은 예부터 아주 중요한 존재였고, 종종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왔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모두 태어난 해에 해당하는 동물의 띠를 지니고 그 동물은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상징하게 된다. 그래서 말이나 뱀 등을 등장시킨 것인데 특히 영화에서 뱀의 이미지는 중국 민담을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 영화 속 동물의 사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섬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당신이 보기에 중국이 지금 총체적 폭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 폭력을 우리가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폭력은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좌시하지 않고 계속 맞서고 그 폭력의 속성을 이해하려 한다면 적어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천주정>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A Touch of Sin’이다. 호금전의 무협영화 <협녀>(A Touch of Zen)에서 영향받아 그렇게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달라. =나에게 폭력이라는 문제는 사실 생소한 화두였다. 나는 지난 3~4년 동안 이번 영화에 등장한 사건들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왔고 많은 자료를 수집했으며 거의 모든 디테일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 폭력을 비주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개의 이야기 속 폭력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다루면 좋을지 그 마법의 언어를 찾지 못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전 무협영화 한편, 즉 <협녀>가 생각났다. 내 생각에 대개의 무협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내가 다루고자 하는 네개의 이야기 속 인물들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내 영화도 그런 무협영화 속 사건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호금전은 영화에서 사회적, 경제적 상황 속의 억압과 불평등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에 반응하는지를 폭력이라는 언어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방식을 내 영화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현재 중국에 대한 ‘영화적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는가. =영화 속 중국이 중국 전체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폭력적인 양상에 초점을 두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고 최근 몇년간 폭력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고조되었다.

-조금 전 당신이 말했던 영화적 언어라는 주제로 돌아가고 싶다. 당신은 폭력을 그리기 위해 무협영화라는 영화적 언어를 차용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톤은 사실적으로 진행되다가 폭력적인 장면에서는 장르영화인 것처럼 변했다가 다시 폭력이 사라지면 사실적인 톤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현실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속 각각의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두개의 다른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돌연 폭력이 발생하면 그 폭력이 사람들을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시키며 그들로 하여금 규칙성과 자연스러움을 잃게 만들지 않던가. 이러한 상황이 주는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네 주인공 역에 (아마추어 배우가 아닌) 전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도 완전한 폭력 상태에 놓이게 되진 않는다. 그 속에서도 먹고 말하며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상의 평화가 공존한다. 한편, 나는 폭력이 때로는 초현실적이라고도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뉴스에서 폭력을 볼 때 그런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밤에 걷는 장면에서 그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

-영화 속 네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다. =네개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때 장소 설정은 매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의 무대인 산시는 중국 북부에 있는 개발되지 않은 인적 드문 지역이다. 두 번째 이야기 속 남서부에 있는 충칭은 양자강이 옆에 흐르고 삼협댐과 가깝다. 세 번째 이야기 속 중부에 위치한 후베이는 산과 절벽이 많은데 그건 전형적인 무협영화 배경이다. 네 번째인 남부의 광저우 지방은 도시화와 현대화가 많이 진행되어 공장이 많은 곳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장소의 이동은 하나의 방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협영화 속 주인공이 항상 여러 장소를 종횡무진하듯 말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는 경험 역시 중국의 각기 다른 지역들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랑에 가까웠다.

-영화의 라스트신에는 중국의 전통 경극 무대가 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경극은 몇 세기에 걸쳐 전해내려온 중국의 전통예술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세편의 경극을 삽입했는데 이유는 그 경극들이 모두 매우 대중적이고 오늘날의 현실에도 주된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경극에는 ‘동일한 운명의 반복’이라는 모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세 번째 경극은 판사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은 한 여자의 이야기다. 판사가 여주인공에게 일종의 폭력을 행사한 셈이다. 어려서 이 경극을 처음 보았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세상에는 우리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는 다양한 양상의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는 희생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에도 종종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는 물론이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청조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 <재청조>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계획은 어떻게 되었나. 바뀌었는가 아니면 잠시 미뤄둔 것인가. =그건 계속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잠시 미뤄둔 상태다. 이 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진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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