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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서바이벌 게임!

강시부터 좀비까지

<월드워Z>

<28일후…>

1980년대 후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몇달 동안 토요일마다 강시영화를 한편씩 봤다. 강시영화가 그토록 재미있었던가 하면, 아니다. 내가 다니던 보습학원 원장이 강시영화 마니아였을 뿐이다. 다른 학원이 쉬는 토요일에 ‘특별 시청각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 그는 아이들이 강시처럼 콩콩 뛰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곤 했다. 중국어 학원도 아니었는데, 그는 도대체 뭘 교육하고 싶었던 걸까.

요즘 아이들은 강시가 뭔지 아는지 모르겠다. 강시란 쉽게 말해 중국의 좀비다. 강시에게 물린 사람은 강시가 된다. 중국인들은 객사한 원혼이 떠돌지 않도록 고향으로 데려왔는데, 장거리 수송이 힘들다보니 도사를 고용해 되살아난 시체가 제 발로 뛰어오도록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죽어서도 고생, 승천하다 말고 힘들어서 원혼이 되겠다). <강시선생> <헬로강시> <영환도사>…. 내용도 출연진도 비슷했던 이 영화들을 토요일마다 보면서 나는 진짜 강시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강시 피하는 법을 숙지했다. 강시는 사람을 호흡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숨을 참으면 찾지 못하고, 강시에게 물리면 찹쌀로 독을 뺄 수 있다(독이 빠질 때까지 찹쌀 위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영환도사가 그린 부적. 동이 틀 때까지 숨을 참기 힘들거나 부적이 없다면, 꼬마 강시와 친구가 된다. 농담이 아니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겁이 많은 나는 좀비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영화를 보고 말았다. 감독이 “브래드 피트를 3D로 볼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는 <월드워Z>(그런데 정작 브래드 피트는 거지꼴). <28일후…>를 볼 때만 해도 좀비가 너무 빨라 현실감이 없었는데, <월드워Z>는 속도가 적당한 데다 한국과 북한이 나와 진짜로 진짜 같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좀비영화의 대부 조지 로메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의 좀비는 그저 자연재해다. 나는 그 재해에 바보처럼 대처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라고. 바보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좀비 대처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좀비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뇌를 파괴하거나 불에 태우면 된다. <바탈리언>이라는 찜찜한 영화를 보면 좀비를 태운 재가 퍼져나가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월드워Z>의 원작자 맥스 브룩스가 쓴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 나온다. 좀비를 만나 살아남는 법을 집대성한 책으로, 중산층 미국인이 아니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안전한 집은 수상가옥이나 토네이도에 대비한 안전가옥, 또는 계단을 부순 이층집이라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층집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서 떨어져나가 비닐하우스와 과수원 사이에 끼어 사는 비자발적 농촌 주민뿐이다. 무기도 마찬가지다. 라이플총이나 무슨 말인지도 모를 ‘22구경 림파이어탄 사용 총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톱과 손도끼를 갖추어 놓고 사는 한국인이 흔할 리가 없다. 대부분 한국인은 <월드워Z>에서 몇분 만에 무력화된 아파트나 그보다도 못한 오피스텔,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룸에 산다.

그래서 <위기 탈출 생존 교과서>를 펼쳤다. 좀비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도시 서민으로서 각종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기 때문이다. 잠긴 문을 어깨로 밀쳐서 여는 방법이나 3층에서 쓰레기통으로 뛰어내리는 방법, 시속 70km로 달리는 오토바이가 고장났을 때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로 뛰어드는 방법 등 영화 같으면서도 왠지 있을 법한 상황에서 택해야 할 지침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남기고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는 중고 서점에 내다 팔기로 결정했다. 교훈은 하나 얻었다. 좀비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기 전에 이 세상에서나 살아남자.

<강시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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