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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늑대가 아니라니…

<붉은 가족> 속 간첩을 보고 안보의 위협을 느끼다?

<붉은 가족>

내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는 노인이 많다. 패스트푸드점에도 노인이 한가득인데(여사님들이랑 사장님들이랑 햄버거 먹으면서 막 2 대 2로 미팅하신다), 이런 시절에 이런 동네에서 만둣국을 먹으러 가다니, 내가 배려가 부족했다, 나에 대한 배려가.

만두에 막걸리를 마시던 옆자리 노인들은 몹쓸 세상을 한탄했다. 그래, 세상이 정말 못쓰게 됐지, 고개를 끄덕이며 왕만두의 고기를 안 빠뜨리고 알뜰하게 먹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갑자기 목청을 높여 부르짖었다. “그러니까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한번 깨끗하게 쓸어버려야지!” “이건 뭐, 온 세상이 빨갱이야!” 지금 이 양반들이 벌건 대낮에 국가 전복을 논하고 계신 건가. 안보의 위협을 느낀 나는 당장 신고하고 싶었지만 신고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냥 나 혼자 살겠다며 그 자리에서 빨리 대피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느라고 다섯개 들어 있던 왕만두를 두개나 남기고 말았으니…. 지금 이 순간, 그 만두 두개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런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봤던 영화가 <붉은 가족>이었다. 제목만 보고 <간큰가족>처럼 분단을 빙자하여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하는 영화라고 믿었는데, 엄청나게 진지한 데다가 그 어르신들이 보았다면 분개하여 국가 전복을 실제로 시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벌건 대낮에 장어집에서 암약하는 간첩들이라니, 그중 한명은 남한에서 20년이나 살았다니. 그 장어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살며 장어를 엄청 좋아하는 나는 앞으로 자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비싸서 못 먹지만.

나는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다. 수업 시간에 수업은 받지 못하고 강당에 모여 북한군은 (진짜) 늑대고 간첩은 (진짜) 여우라는 만화영화 <똘이장군>을 보면서 박수를 치는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간첩을 신고하면 상금이 3천만원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 돈이 된다는 생각에서 간첩의 특징을 자발적으로 달달 외웠던 기특한 어린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보다 한 십 몇년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그걸 극장에서 보고는 북한에선 늑대가 말도 하고 사람인 척도 한다며 벌벌 떨었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 황석영이 북한에 갔다가 쓴 책의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나 보다, 늑대 아니라고.

<월드워Z>

<007 어나더데이>

사실 북한에 누가 사는지는 1970년대 어린이들에게만 미스터리는 아니었다. 영화 <월드워Z>의 원작 소설에 나오는 북한은 유일하게 좀비를 피했지만 그러기 위해 모든 주민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불가사의한 국가이다. <007 어나더데이>에 나오는 북한군 암살자는 거의 인조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람을 보면 핵무기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탈북자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사는 지금도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50대들이 밥 먹는 자리에 억지로 끌려간 적이 있다.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싫어하는 시래기국을 시켜버려서 더욱 미웠던 대장 50대가 “김대중이 간첩이었잖아”라면서 그런 인물이 노벨상을 받은 한국의 앞날을 근심했다. 노벨상 위원회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의형제> <용의자> <이중간첩> <베를린> 등을 아무리 탈탈 털어도 북한이 노벨상 위원회까지 포섭했다는 배포 큰 영화는 없었는데, 그는 영화보다 스펙터클하고 미스터리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부러웠다,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하면 심심할 일은 없겠다.

그나저나 빨갱이들 때문에 무섭다는 그 노인들에게는 마음에 평화를 주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권하고 싶었다. 역시 노인 관객이 점령한 동네 극장에서 <어바웃 타임> 상영을 기다리는데 단체 관람 수준의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그 영화를 보고 나온 할머니가 말했다. “시간을 거스르려고 해봐야 말짱 헛일이야.” 1960년대로 시간을 거스르려고 해봐야 말짱 헛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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